박기윤 화천현장귀농학교 교장

가끔 저녁에 집에서 안주를 준비해 두고 막걸리를 한 잔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마실만한 술이 없다는 거다. 처음 한 모금 정도는 시원한 탄산 맛에 넘기지만 그 다음부터는 어느 막걸리건 다 똑같은 맛에 한 병을 채 다 마시지도 못하고 버리게 된다.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웬만한 동네 마트를 가도 전국의 이름깨나 하는 막걸리를 다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어느 막걸리를 고르건 간에 정도의 차이지 한 가지 맛밖에 없다. 단 맛이다. 달아도 너무 달아서 도저히 못 마시겠다. 모처럼 막걸리 자리를 마련했다가 결국은 맥주나 양주를 마시게 된다. 우리 술을 마실래야 마실 수가 없는 실정인 거다.

해외에 나가 현지의 술을 사다 마실 때마다 우리나라 주당들만큼 불쌍한 사람들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지역 특산주가 발달한 나라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의 다양한 맥주, 와인, 위스키나 쿠바의 사탕수수 술인 럼처럼 각 문화별로 고유한 제조법과 풍미를 지키며 자국민은 물론 세계인에게 사랑 받는 숱한 술들이 있다.

최근 축구 열풍으로 유명한 베트남만 하더라도 쌀을 증류한 술들이 아주 훌륭하다. 특히 넷머이 같은 경우는 누룽지 향이 나는 정말 좋은 술이다. 그런데 술 좋아하고 많이 마시기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나라 주당들이 마실 술이라고는 소주, 막걸리 정도인데 문제는 이 중에 제대로 된 술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거다.

무늬만 전통주인 엉터리 막걸리들

막걸리는 수입 밀가루나 수입 쌀을 일본식 종국으로 발효 시키고 그 밋밋한 맛을 합성 감미료와 탄산을 가미해 음료수처럼 만들어 놓은 무늬만 전통주이고, 그 엉터리 막걸리를 걸렀으니 똑 같은 맛 밖에 못 내는 청주는 일본 사케의 아류 정도로 취급 받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서민의 술로 사랑 받는 소주는 사실 이름부터가 사기다. 집집마다 다른 가양주에 용수를 박아 맑은 술만 걸러낸 청주를 끓여서 그 증기를 모아 받은 증류주가 소주인데, 고농도 알코올인 주정을 회사마다 똑같이 공급받아 그 알코올 보다 더 많은 물을 타서 희석한 이 술은 사실상 소주가 아니라 인삼주, 매실주 같은 리큐르다.

알코올 특유의 쓴맛과 냄새를 없애기 위해 MSG나 다른 첨가물들을 넣은 것을 회사마다 다른 제조방법 이라도 있는 양 선전하고 있고 이 국적불명의 술이 전통주인 증류식 소주의 이름을 대신 차지하고 있으니 주정을 공급하고 주세법을 이런 식으로 유지하고 있는 정부가 우리 술 말살에 앞장서고 있는 꼴이다. 이런 엉터리 술들을 마실 때마다 꼬박꼬박 세금내면서 마시고 있는 우리나라 주당들이 얼마나 불쌍한가 이 말이다.

요즈음 수제맥주가 유행이라고 한다. 여기저기 체인점들이 문을 열고 생협 매장에도 진열되어 있는 모양이다. 우리 학교에서도 작년에 봄, 가을 두 번 맥주를 직접 만들어 보는 워크숍을 했다. 시중에 파는 맥주가 맛이 없거나 천편일률적이라, 풍부하고 다양한 맛과 오리지날 맥주의 맛을 찾으려는 요구가 많아진 탓인 것 같다. 독일까지 가서 마실 수는 없으니 직접 만들어서라도 갈증을 풀려는 시도인데 반응이 좋은 편이다.

맥주는 보리를 발효시킨 것으로 쌀을 발효시킨 막걸리와 유사한 술이다. 개인적으로는 막걸리를 영어로 소개할 때 rice wine 이라고 하는 것은 과실주가 아니니 적절하지 않고 오히려 rice beer 가 더 적합한 편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우리 막걸리를 그대로 막걸리라고 표현해도 세계인들이 알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맥주에 아스파탐이니 솔비톨 같은 합성 당분을 넣는다고 생각해 보라. 상상이 가는가? 연태고량주에 아스파탐을 넣어 달게 만들면 그 술을 마시겠는가? 술은 술 맛이 나야 하고 단 맛이나 매운 것을 좋아하면 술에다 넣지 말고 입맛에 맞게  안주를 갖추어 먹을 일인데 우리는 젊은 사람들의 입맛이 어쩌고 하면서 술에다 당분을 막 넣고 있다. 술이 탄산음료도 아닌데 막걸리를 달게 한다고 안마시던 젊은이들이 마시겠는가? 오히려 전통적인 매니아들 마저 쫓아내는 결과밖에 남는 게 없는 것 같다.

원조가 사이비에 밀려나는 형국

한때 독일에서는 맥주는 맥아와 홉 그리고 물 이 세가지 외에는 다른 것을 섞어 만들면 안 된다는 법도 있었다. ‘맥주 순수령’ 이라는 법인데 최근인 90년대에도 맥주에 설탕을 섞었다가 몇 년간 국가와 소송을 한 경우도 있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지금도 독일 맥주가 원조라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데는 그 영향도 무시못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만약 식품공전 같은 것으로 최소한의 원칙을 정하고 전통식품의 경우 원조로서의 이름은 이 원칙을 지켰을 때만 사용허가를 내 준다면 어떨까? ‘막걸리는 쌀과 누룩과 물만 사용해서 만든 것으로 한다. 된장은 콩으로 만든 메주와 물과 소금으로 한다. 간장은 된장을 가른 것이다.’ 등등.

다른 재료를 섞은 것은 음식명 앞에 재료나 특성을 나타내는 이름을 덧붙이게 해서 차별을 두거나 아예 분류를 다르게 하면 될 것이다. 밤을 넣은 것은 밤막걸리가 되고 팥으로 만든 된장은 팥된장으로 표기하면 될 것이고, 콩기름을 짜고 남은 콩단백에 일본식 종국을 접종해서 만든 공장식 된장은 개량된장이나 유사된장으로 분류를 하고 이렇게 만든 된장으로 만들거나 산 분해해서 만든 간장은 개량간장이나 유사간장으로 분류를 해서 원조가 사이비에 밀려나는 일은 좀 막았으면 좋겠다. 왜간장이 간장이 되고 우리 간장이 국간장이나 집간장이 되어 버린다든가 리큐르가 소주가 되고 우리 소주는 전통주로 불리는 이런 일 말이다.

전통주 살려 쌀소비 활성화해야

뭐니 뭐니 해도 가공식품의 꽃은 술이다. 남아도는 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통주만한 것이 어디 있을까? 술은 곡식을 가공한 것이기 때문에 싼 것이 이상한 것이다. 한 병에 1200원짜리 막걸리를 만들자니 수입 밀가루나 수입쌀을 쓸 수밖에 없다. 전통주를 아무리 많이 마셔도 우리 농가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웃기는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다. 우리 쌀로 제대로 만든 막걸리 값이 3000원, 5000원 해도 과자 한 봉지 값밖에 안 된다. 비싸서 제대로 된 막걸리를 찾지 않는 것이 아니다.

소주는 이 술을 또 가공한 것이다. 증기, 그러니까 김을 식혀서 모은 것이니 그야말로 이슬을 모은 것이다. 진짜 참이슬이다. 이 소주 한 동이를 만들자면 얼마나 많은 쌀이 들어가겠는가? 오죽 했으면 식량사정 때문에 금주령을 내려 술을 못 만들게 강력하게 단속을 했을까?

지금 세상은 오히려 쌀이 남아서 문제인 세상이다. 엉터리 소주를 찍어내는 주세법과 주정에 물을 타서 국민들의 건강을 좀 먹는 작태를 던져 버리고 진짜 소주에게 이름을 돌려주자. 그래서 전통 음식과 우리 농산물 간의 선순환이 이뤄지도록 하자.

이양주 삼양주는 얘기 할 것도 없고 단양주 중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동동주인 부의주를 한 잔 마셔보라. 찹쌀과 누룩만으로도 입에 착 감기는데 아스파탐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 산업화를 하려면 언제나 균일한 맛을 유지해야 하니 일본식 종국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데 만들 때마다 맛이 다르면 또 어떤가? ‘보졸레 누보’는 보고 베껴서 ‘막걸리 누보’ 를 하는 사람들이 만들 때 마다 맛이 다른 와인의 성격에는 왜 눈을 감는지 모르겠다. 제발 제대로 된 술 좀 마셔보자.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