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민들은 ‘부락’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런 말 하는 이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농민들 사이에선 다르다. 농민들은 부락이란 말을 자주 쓴다. ‘마을’보다 ‘부락’을 더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부락’을 한자로 쓰면 部落이다. 그러나 부락은 한자에서 온 표현이 아니다. 한자는 마을을 표현할 때 마을 리(里)로 쓴다. 우리도 공식적으로 이 표현을 따르고 있다. 행정구역 구분도 리(里)로 하지 부락(部落)으로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양촌리’ ‘상리’ ‘하리’ 등으로 구분한다.

부락이란 표현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마을을 부락으로 표현했다. 그 잔재가 해방 7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일본에선 부락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아니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금기의 단어로 취급하고 있다. 왜일까. 일본에서 부락이란 천민들이 사는 마을을 뜻한다. 그리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부라쿠민(部落民)이라 부른다.

거지, 범죄자 등이 그들이다. 부라쿠민은 일본에서 개, 돼지와 동격이다.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신분제가 없어진 현재도 부라쿠민은 존재한다. 수도 동경에도, 제2의 도시 오사카에도 부라쿠민이 사는 구역이 따로 있다. 이 부라쿠민들은 제대로 취업을 못한다. 결혼도 못한다. 부라쿠민이 보통의 사람으로 살려면 출신을 속여야 한다. 그러니 ‘부라쿠민’은 숨기고 금기시해야 할 일본의 병폐가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말 뿐 아니다. 무슨 무슨 ‘부락’이라고 돌에 글자를 새겨서 마을 입구에 표지석을 세워 둔 곳도 여럿 있다. 일본사람들의 인식으로 보면 ‘여기는 천민들이 사는 곳입니다’ 하는 꼴이다.

우리 말에는 예쁜 이름이 많다. ‘마을’도 있고 ‘동네’도 있고 ‘골’도 있다. 도시 사람들은 무슨 무슨 ‘동(洞)’에 산다고 말한다. 농민들도 무슨 무슨 ‘마을’이나 ‘동네’에 산다고 하면 된다. 굳이 ‘부락’이라고 쓸 이유가 없다.

말이란 게 생활습관에서 오는 거라 바꾸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써야 한다. 이장들부터 모범을 보이고 바꿨으면 한다. 지자체에서 이런 교육을 시키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평진 충북취재본부장 leep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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