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시 농산물 국내 반입 실효 의문
‘곡물 안정적 확보’ 목적과 달리
바이오작물 등 융자대상 확대도 문제 
초기 사업 준비부터 부실한 탓


정부가 해외 농업을 개발하는 기업에 자금을 제공하고 곡물 수입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식의 현행 해외 농업 개발 사업이 여러 문제점을 갖고 있어 사업 추진 방식 등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7일 발표한 ‘해외농업개발사업의 문제점과 개편 방향’이라는 제목의 자료에서 이같이 밝혔다.

▲현황은=해외 농업 개발 사업은 안정적인 곡물 수입 확보를 위한 대책의 하나로 해외 농업을 개발하는 민간 기업에게 자금과 정보를 제공하고, 곡물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부가 2009년부터 추진했다.

이 사업은 융자사업과 보조사업으로 나눠지는데, 융자사업이 핵심이다. 융자사업은 농산물 생산에 필요한 농기계 구입 및 부대시설에 필요한 비용(농장형 사업)이나 농산물 유통에 필요한 건조·저장·가공시설 등에 소요되는 비용(유통형 사업)에 대해 정부가 금리 연 2.0%, 3년 거치 7년 상환의 조건으로 자금을 지원한다. 대신 융자기업은 국내외 곡물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비상 시 정부의 반입명령이 내려지면 생산 곡물을 국내에 반입해야 한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총 36개 기업이 1552억8200만원을 융자받아 러시아(연해주), 캄보디아 등 12개국에 진출해 해외 농업 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문제점은=하지만 사업 시작 10년이 다 되가는 현재까지 저조한 국내 반입실적 등 사업 목적을 거의 이루지 못해 개선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입법조사처는 이번 자료에서 제도와 규정 등의 문제점을 집중 지적했다.

우선 비상시 농산물 국내 반입 조치가 해당 국가의 수출 조치에 따라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이 첫 손에 꼽힌다. 정부는 비상시 국내 곡물수급 안정을 위해 융자기업에 대해 생산물을 국내에 반입할 것을 명령할 수 있는데, 해당 국가의 곡물수출규제조치가 단행될 경우 현실적으로 정부의 반입명령이 실효를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반입명령 기준이 애매모호하고, 평상시 국내 반입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애초 목적과 달리 융자대상품목이 확대되는 등의 문제점도 있다. 해외 농업 개발 사업은 자급률이 낮은 곡물의 안정적인 확보가 주목적으로 밀, 옥수수, 콩이 우선 융자지원대상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사업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자 정부는 곡물 및 사료작물 위주에서 현지에 적합한 식품원료 및 바이오에너지 작물 등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2013년 융자대상품목을 바나나, 파인애플, 오렌지 등과 같은 열대과일, 메밀, 귀리, 수수, 참깨, 커피 등으로 확대했다. 융자대상 평가에 활용하는 품목별 가중치도 조정해 사료작물은 종전 80%에서 90%로, 식품원료·기타작물은 20%에서 60%로 각각 높였다. 이에 따라 융자가 밀, 옥수수, 콩과 같은 곡물보다는 카사바, 오일팜에 집중되고 있는 문제를 낳았다. 총 융자액의 약 50% 정도가 카사바와 오일팜을 재배 또는 유통하는 업체에 집중돼 있다.

▲개편 방향은=국회 입법조사처는 해외 농업 개발 사업이 갖고 있는 문제점이 결국은 사업의 추진방식과 목적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재검토가 우선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민간 기업 대상의 추진 방식에 대한 타당성 검토, 목적 역시 곡물 확보로 할 것인지 아니면 곡물 이외의 농산물 생산에 중점을 둘 것인지에 대한 검토 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융자자금으로 농지관리기금을 사용하는 것도 검토 대상 중 하나다.

배민식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해외 농업 개발 사업이 부진하게 된 데에는 초기 사업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던 점도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라며 “정부는 부진한 사업 추진에 대한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리하게 개선방안을 강구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시간을 가지고 사업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재검토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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