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률 충남연구원

세상은 무척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최근 200년의 변화는 이전의 인류가 변화·발전한 것보다 더 크고 빠르다고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지칭되는 최근의 기술변화로 인해 향후 우리는 지난 200년 보다 더 큰 변화를 빠르게 직면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와 빠른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 인류는 안전한 먹거리를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서 누가 어떠한 방법으로 생산하였는지 모르는 먹거리를 소비하고 있고, 그 먹거리의 품종이 무엇인지 심지어 유전자를 조작한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국가 전체 혹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식품유통체계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앞으로 우리의 먹거리는 더욱 획일화될 것이고, 그 품종은 더욱 단순화될 것이다. 이는 10년 전 혹은 20년 전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던 먹거리와 지금의 먹거리를 비교해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단순화·획일화 돼가는 먹거리 품종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고 싶다. 그리고 1940년 시집을 가는 딸과 어머니의 이별 장면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어머니는 시집가는 딸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이별을 해야 한다는 현실에 눈물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의 손에 소중하게 쥐어주는 주머니가 있다. 이 주머니는 대부분의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그 주머니 안에는 어머니가 작년에 재배해서 받아둔 소중한 씨앗이 들어있다. 어머니가 딸에게 씨앗을 주는 것은 딸이 시집을 가서 그 씨앗으로 농사를 짓고 잘 살라는 의미이자 소망인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씨앗은 공유되었고, 지역적으로 차별성과 다양성을 가졌다. 그렇기 때문에 오이라고 해서 다 같은 오이가 아니고, 콩이라고 해서 다 같은 콩이 아닌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씨앗에는 씨앗의 준 사람의 추억과 그 씨앗을 재배하면서 겪은 기억이 함께하고 있어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먹거리 문화와 추억도 함께 상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세계적인 종자회사에서 공급하는 씨앗으로 농사를 짓고, 생산된 먹거리는 소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모두 동일한 종자이고, 어찌 보면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종자이다. 일부 학자들에 의하면, 역사의 발전은 통합의 과정이라고 하지만 씨앗보다 더 통합화·획일화되어가고 있는 부분은 없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토종씨앗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고, 그 토종씨앗으로 재배된 우리 먹거리와 문화, 그리고 추억도 사라져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골의 할머니가 가꾸는 작은 텃밭에는 그 할머니의 어머니가 50~60년 전 주신 우리의 씨앗이 재배되고 있고, 또 그 씨앗이 또 채종되고 있다. 문제는 그 할머니 이후 더 이상 우리의 토종씨앗을 재배할 사람도 없고, 그 토종씨앗을 전해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우리의 토종씨앗을 찾아서 보존하고, 그 토종씨앗이 갖고 있는 문화와 추억을 기록해 한다.

우리 땅에서 난 우리 씨앗 보존을

우리 토종씨앗은 종자회사에서 보급하는 씨앗에 비해서 상품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토종씨앗은 매우 다양한 식감과 특성을 갖고 있다. 토종씨앗으로 재배된 우리 먹거리의 다양한 식감과 풍미는 우리의 문화와 삶을 더욱 풍성하고 다양하게 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종자회사에서 생산된 콩으로 만든 두부보다 선비콩과 같은 토종씨앗으로 만든 두부는 새로운 식감과 문화, 이야기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땅에서 길러져 온 토종씨앗을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올 겨울은 무척이나 춥다. 이 추운 겨울이 지나고 2018년 새해가 되면 우리는 또 새로운 먹거리를 재배하게 된다. 새 농사를 위해서 우리는 종묘상회에 가서 종자회사에서 생산된 종자를 사서 농사를 짓을 것이다. 그러나 2018년 새해의 농사는 이웃집 할머니 혹은 토종씨앗모임에서 나누어 주는 우리의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 되길 희망해 본다. 그 새로운 변화는 우리의 먹거리와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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