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윤 화천현장귀농학교 교장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친환경을 도입한 분들은 돌아가신 강대인 선생을 비롯한 정농회원님들이었다. 일본의 애농회 분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연과 사람의 공존을 지향하는 바른 농사를 목표로 친환경, 유기농의 씨앗을 뿌렸다. 다수확이 진리이고 질소, 인산, 가리 중심의 비료만 투입하면 작물을 얼마든지 생산해 낼 수 있다는 수탈중심의 농사에서, 건강한 토양에서 건강한 농산물이 나온다는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온 분들이다. 이 분들의 각고의 노력과 이후 한살림을 비롯한 생협의 등장과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 등을 통해 현재 대형마트에서도 친환경 유기농 매장이 없는 곳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생산자 옥죄는 굴레가 된 ‘친환경’

하지만 아쉬운 점은 초기 생산자 분들 중 일부가 과정과 철학 보다 생산물 즉 결과물에 대한 차별성을 강조해 온 점이다. 물론, 친환경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당시에 관행 농산물과의 차이를 강조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내 농산물은 이러이러해서 약이 되고 다른 농산물은 좋지가 않다는 이야기인데 결국 내 농산물은 아토피에 암에 성인병에 좋은 약이고 다른 사람이 재배한 것은 그 병을 유발하는 독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농민들끼리 편을 갈라 버렸고 화학비료와 농약에 대한 과도한 비난으로 우리 농산물 전체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역효과를 발생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친환경농업이 토양과 환경을 친환경적으로 관리하는 과정이 아니라 농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는 결과 중심이 되는 데 일조를 했고, 이제는 역으로 우리 생산자들을 옥죄는 굴레가 되게 하였다.

다행이 최근 친환경인증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결과보다 과정 중심의 원래 의미에 맞도록 고치자는 의견들이 많아지고 그런 토론회나 세미나들이 SNS 상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초기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차별화 중심의 홍보방법이 끼친 영향에 대해서 돌아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내 농산물만 특별하다고 해서야’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나는 요즈음 자연재배를 하시는 분들에게서 그대로 본다. 귀농을 하시는 분들이나 준비하시는 분들 중 대부분은 자연농업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있거나 갖고 있다. 노동력의 문제로 자연농업이나 자연재배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도 있지만(예를 들면 태평농법 등), 많은 분들은 자연재배의 친자연성과 생산물의 효능에 대한 신봉으로 무장하고 있다. 무경운 무비닐멀칭의 단계부터 토양에 아무것도 넣지 않는 무투입까지 다양한 시도들이 있는데 이분들 중 일부는 유기농마저도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재배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한다.

자연재배의 과정을 소비자들과 공유하면서 이런 농업방식을 통해 자연과 환경을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 것을 홍보하고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하면 좋겠는데 자연재배가 아주 특별한 농업형태인양 과시하면서 다른 농산물들과의 차별성을 자꾸 강조하는 것은 그 농사법을 유지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 과시하는 것이며 내 농산물만이 특별하다는 것이다. 그 전략은 내 농산물을 판매하는 홍보는 되겠지만 다른 모든 농민들과 담을 쌓고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다. 결국 자연과는 소통할지 모르지만 인간과 사회와는 불통을 조장하는 길일 수도 있다는 거다.

사람에게 자연인이 있을 수 있을까? 자연에서 나오는 음식만 먹고, 자연재료로만 옷을 해 입고, 자연적인 도구만 사용하는 사람, 그런 자연인 말이다. 사람도 힘이 들면 건강식품도 먹고, 아프면 약을 먹듯이 작물도 아프면 약을 처방해 주고 영양이 부족하면 비료도 주어야 한다. 그래서 초기에 화학비료를 금비라고 불렀고 필요할 때 조금씩 넣어 주었다. 나는 비록 유기농으로만 농사를 짓지만 그것만이 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 농민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은 먹어도 아무 문제없다. 농약도 요즈음은 저독성이고 잔류기간도 짧을 뿐 아니라 잔류농약 검사를 통해 걸러내기 때문에 농약을 친 농산물이라도 몸에 해로운 것은 없다는 얘기다. 천하의 유기농 아니라 자연농이라도 수입해서 먼 거리를 이동해 온 농산물 보다는 우리 관행 농산물이 훨씬 낫다. 오죽하면 유기농산물의 최대의 적은 그 지역에서 생산한 로컬푸드라는 얘기도 있을까.

생산자-소비자 상호 이해 증진을

생산자건 소비자건 간에 생산된 결과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농부는 소비자의 건강과 자연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농사를 짓고, 소비자는 그 농부의 삶의 과정과 철학을 이해하고 함께 할 때 그것이 진정한 유기농이며 자연농이다. 최근 농어촌사회연구소에서 개최한 생협과 생협생산자 간의 관계에 대한 토론회 후기에도 있지만 그것이 생협의 정신이고 모두를 살리는 한 살림이다.

촛불을 통한 정권교체 이후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각 사안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다를 수 있고 그 과정의 지지부진함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박정희 장기집권도 하루밤새 무너졌고, 6.10항쟁의 성과를 고스란히 빼앗겨 절망 같던 시절도, 끝이 보이지 않던 최근 10여년의 세월도 결국은 지나갔고 지내왔다. 세상은 변하지 않은 듯 변해왔다. 그 과정이 오늘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며 그것이 민주주의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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