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건강한 먹거리 전달체계 구축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전체 인구의 5% 이상은 풍족한 먹거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우리의 농업 현실은 조금만 과잉 생산되면 소비 둔화, 가격 하락의 악순환을 겪는다. 심한 경우 애써 키운 농산물이 산지에서 폐기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에서 소외된 먹거리 빈곤층까지 안정적인 먹거리 전달체계를 구축한다면 먹거리 빈곤층 해소와 농산물 수급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하기 위해서 건강한 먹거리 전달체계 구축이 왜 필요한지, 해결 과제는 무엇인지 전문가 조언과 현장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 토마토 생산농가들의 산지폐기 현장.

과잉 농산물 폐기 내몰릴때, 서울시민 50만명 ‘굶주림’
#농촌과 도시의 다른 아픔

채소류·우유 등 섭취 부족시
고혈압·우울증 위험 노출
70대 이상 1인가구 제일 취약

건강한 삶 영위하기 위해
풍부한 먹거리보장이 중요
지속가능 먹거리체계 확립을


▲현상1=2011 년 3월, 경기 안양시에서 촉망받던 32세의 영화 감독겸 시나리오 작가가 이웃에 의해 숨져 있는 것이 발견됐다. 경찰은 췌장염 등을 앓고 있는데다 심각한 굶주림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현관에 ‘며칠 째 아무것도 못 먹었다.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달라’는 쪽지가 붙여져 있을 정도로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실제 발견 당시 몸이 매우 마른 상태였다고 한다.

▲현상2=2011 년 11월 초순 농림축산식품부는 김장철을 앞두고 무·배추 등의 수급 안정을 위한 산지 폐기를 1달 동안 단행했다. 산지 폐기는 농협 계약재배 분 중 무 400ha, 배추 2000ha 등 총 2400ha 규모에서 이뤄졌다. 이는 무·배추 재배면적 증가와 소비 위축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

▲현상3=2015 년 11월 13일 한국토마토생산자자조회는 장수토마토영농조합법인과 함께 전북 장수군의 한 들판에서 농민들이 재배한 토마토를 구덩이에 파묻었다. 지속적인 기상 악화로 생산량이 감소했음에도 토마토 가격은 예년보다 40% 이상 하락했기 때문이다. 토마토 농가들은 산지 폐기를 통한 출하물량 조절, 일정 규격 이하의 시장 출하 중단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가격은 농가들의 기대만큼 회복되지 못했다.

국내 먹거리의 전달체계가 불안정하다는 사실은 위 현상들을 살펴보더라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농업 생산현장에서는 과잉생산으로 농가 스스로 농산물을 산지폐기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반면 모순적이게도 도시에서는 먹거리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 굶거나 기아에 겪어야 하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실제 도시에서 굶주림 현상의 현실은 어떨까? 지난 11월 초순 문은숙 (사)소비자와함께 대표는 ‘시민, 어떻게 먹고 있는가?-서울 먹거리 현실과 정책방향’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서울시민의 36%는 충분한 양 또는 다양한 음식이 부족하고, 5%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먹을 것이 부족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시민의 5%, 약 50만명은 심각한 굶주림을 겪고 있는 것이다.

또한 먹거리미보장가구에 대한 국민건강영양조사(2012~2014년) 결과 가구의 72%는 채소류 섭취량이 권장 횟수를 밑돌았다. 더불어 이들 가구의 64.6~81%는 우유·유제품, 비타민C, 칼슘 등에 대한 섭취 기회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영양불균형으로 인해 고혈압 유병률이 31.3%에 달했으며, 비만 및 우울증에 노출되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에 대해 문은숙 대표는 “서울시조사에서 고령자이면서 1인 가구가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받지 못했다”라며 “따라서 먹거리정책의 목적은 모든 시민의 건강먹거리, 취약시민에 맞춤건강먹거리를 보장 해 주는 것이며, 그 결과 도시와 농촌, 소비자와 생산자의 연결과 연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문 대표는 “국민의 건강, 도시와 농촌의 문제 해결을 위해라도 정부와 지방자체단체는 보다 적극적으로 지속가능한 먹거리체계 확립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박영범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 이사장은 지속가능한 농업과 먹거리체계 확립은 같은 선상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농정이 경쟁력 제고와 시장경제에 맡겨 두는 방향으로 추진되면서 오히려 전체 농업은 저성장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기업과 상인에게 이익을 주도록 설계돼 있는 유통구조를 공공급식 등으로 유도해 농촌·농업이 회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정부는 국민을 위해 공공적인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 고민하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라며 “특히 현재 시점에 도시의 지방자치단체들도 농촌과 도시가 함께하는 순환경제 정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데 그 정책의 정점이 국가푸드플랜에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박 이사장은 “국가푸드플랜 대상에는 모든 시군구를 포함해서 일반 국민부터 도시 빈곤층까지 안정적으로 먹거리 제공을 위한 공공급식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며 “이것은 도시민에 초점을 맞춘 것 같지만 가족농과 소농을 살리는 방안이어서 결국 농촌과 도시가 상생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영범 이사장은 “현재 700만명 학교급식 1끼 시장이 3조원 규모 시장인데 150만 먹거리 빈곤층에 1일 3끼를 제공하면서 2조원 규모의 농산물 시장이 새롭게 생기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농산물의 안정적인 판로로 이어지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강력한 농정을 펼쳐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 올해부터 공공급식을 시작하는 어린이집의 아이들이 맛있는 점심을 먹고 있다.

#현장/서울시, 공공급식 확대에 발 벗고 나섰다
어린이집·복지시설…30만명에 ‘공공급식’

농업 현장에서 직접 조달
건강한 식재료 공급 힘써


서울시가 초·중·고등학교의 친환경농산물 공공급식에 이어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복지시설에까지 친환경농산물 공공급식을 확대하는 사업에 적극 나섰다. 도농상생과 서울시민의 건강한 먹거리 환경 조성을 위해 건강한 식재료를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식재료 공공조달 유통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올해는 6개 자치구에서 공공급식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며, 대상은 어린이집, 복지시설 등 7338개소, 29만9000명이다.

특히 낮은 급식단가와 높은 유통비용으로 인해 영·유아 등 먹거리 취약계층의 급식 질 저하를 예방하기 위해 농업현장에서 직접 식재료를 조달 받는 방식을 채택했다. 농업인구 감소, 고령화 등 농업경쟁력 약화로 인해 쇠퇴하는 농촌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에 서울시는 2015년부터 올 3월까지 TF 구성, 전문가 및 관련부서 회의, 간담회 등을 거쳐 민관협치를 통한 도농상생 공공급식 추진 체계를 확립했다.

서울시 이보희 친환경급식과장은 “서울시는 급식을 공적영역으로 유인해 엄격한 품질관리를 통한 건강한 먹거리 가치를 마련하는데 주력해 왔다”며 “더불어 산지(기초자치단체)와 소비지(자치구)간 1:1 매칭을 통한 직거래 방식으로 운영하고자 경기, 전남북, 경남북 등 9개 광역지자체와 지난해 11월 공공급식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MOU)까지 체결했다”고 밝혔다.

성과는 5월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범사업으로 강동구와 전북 완주군이 ‘도농상생 공공급식’ 협약식을 개최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11월 들어 금천구-전남 나주군, 성북구-전남 담양군, 강북구-충남 부여군, 노원구-충남 홍성군, 도봉구-강원 원주시가 협약식을 맺고 공공급식 시범사업에 합류했다.

이보희 과장은 “식재료는 농수축산물, 가공식품 등 전 품목을 대상으로 하는데 친환경식재료 비중은 올해 40%를 시작으로 2018년 55%, 2019년 7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며 “특히 서울시의 ‘공공급식 품질·기준’에 따라 생산(지자체), 유통(자치구), 소비(소비자)의 3단계 검사체계로 안전성을 관리한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도농상생 공공급식지원사업을 내년에는 더 확대해서 추진할 계획이다. 4개 자치구는 수요 조사를 통해 선정하고, 산지 지자체는 서울시 선정위원회에서 공모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보희 과장은 “내년 사업비는 170억7400만원이며, 초기에는 서울시친환경유통센터에 공공급식센터를 설치하되 자치구에 따라 공공급식센터도 설립할 예정”이라며 “내년에는 조기에 사업을 시행해서 건강한 식재료를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도농상생 공공급식 문화를 확산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 조언
“산지-자치구 직거래로 농산물 유통 모순 개선”

공공급식 농산물 유통물류비
기초단체가 지원토록 명시
구매단가의 90% 이상 농가로

▲배옥병 서울시먹거리정책자문관=박 원순 시장의 주요 공약이 친환경 무상급식을 하겠다는 거였다. 도농상생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2010년부터 지속가능한 먹거리도시 서울을 만들겠다는 정책 방향을 가지고 먹거리마스터플랜을 마련해 추진 중이다. 공공급식 사업은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더구나 산지(지자체)와 직거래 방식으로 진행되는 공공급식은 시장을 통해 다시 산지로 내려가는 농산물 유통의 모순을 개선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농산물의 경우 구매단가의 90% 이상을 농가가 수익으로 가져가는 구조다. 공공급식이 진행될 때 기초단체가 농산물 유통물류비를 지원하도록 명시했기 때문이다. 농민과 도시민을 함께 아우르는 관관민의 협치라고 본다.

사실 농민에게 생산부터 가공, 유통을 책임지우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생산과 안전관리에만 집중하고 농민에게 적정 가격에 구입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공공급식을 통한 도농 상생의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농업과 농촌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소비지와 연계한 자연스러운 공급체계가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어린이에게 안전한 농산물을 공급하는 게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서울시는 친환경 식재료를 사용할 때 자치구에 1끼당 500원을 추가 지원하는데 친환경 무상급식에 정부 지원은 전무 하다. 그리고 급식재료를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는 농촌지역을 잘 만들어야 서울시의 공공급식도 더 잘 될 텐데 광역단체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부분이 존재한다. 정부가 정책을 세우고 적극 나서야할 부분이다.

이동광 기자 leed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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