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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의 시선] 한미 FTA와 지난 정부의 거짓말이상길 논설위원, 한국농어민경제연구소장
   
 

노무현 정부때인 2007년 타결되고 이명박 정부때인 2011년 국회 비준, 2012년 발효된 한미 FTA가 미국 트럼프의 요구와 문재인 정부의 수용에 의해 개정협상의 길로 들어섰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농업은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고 하지만, 곧이 곧 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동안 허다한 통상협상에서 농업을 희생시켜 수출대기업에 이익을 줘온 역대 정부의 행태가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기존 농업예산 끌어다 붙여
FTA지원예산 ‘21조’ 부풀리기
피해보전직불·폐업지원금 등
농가에 대한 직접 피해보전은
1조2200억, 전체 6% 불과


한미 FTA에서 농업분야가 레드라인이라는 정부의 언급이 나온 데는 참담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지난 협상에서 다 내주는 바람에 더 이상 양보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는 “쌀을 제외한 모든 농축산물의 관세는 단계적으로 철폐하거나 수입쿼터를 통해 관세철폐나 다름없게 된 전대미문의 협정이고, 이는 전 세계의 어떤 FTA보다 불리한 협정”이라며 “더 내 줄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협상을 하려면 우리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을 바로잡거나 아니면 폐기를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10년 동안 달라지지 않은 통상관료들의 행태다. 국민들이나 피해계층의 의견을 무시하고 비밀리에 협상하고 일방통행 하는 구태가 반복된다. 공청회를 요식행위로 넘어가려다 지난 10일 농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것은 그 사례다. 정부가 오는 1일 2차 공청회를 열기로 하고, 22일 농업계와 간담회를 열어 ‘농업은 레드라인’이라는 입장을 다시 밝히긴 했지만, 농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 농업피해는 크다. 우선 미국과의 농산물 무역적자가 연간 65억 달러, 우리 돈으로 7조원에 달한다. 2013년~2017년 사이 미국산 수입으로 인해 피해보전 직불금이나 폐업지원제도가 발동된 품목은 한우, 수수, 감자, 대두, 고구마, 체리, 멜론, 시설포도, 닭고기, 당근, 블루베리, 심지어 도라지를 망라한다. 2011년 8월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한미 FTA로 인한 경제적 영향으로 농업분야는 협정 발효 5년차에 연간 6785억원, 10년차에 9912억원, 15년차에 1조2354억원 등 1년에 평균 8150억원의 생산액이 감소, 15년 동안 총 12조2252억원의 피해를 입게 된다.

그렇다면 정부가 2008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농업에 21조~23조원을 지원한다는 한미 FTA 국내보완대책 예산은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하다. 정부는 ‘농업생산 감소액이 12조원이지만, 피해규모를 크게 초과하는 21조원 대책으로 피해는 충분히 보전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FTA 예산은 기존예산과 별도로 더 만든 것이 아니라 농업예산의 다른 부분에서 끌어다 붙여 중복되고 부풀려졌다. 그 중 8조원은 2008년~2013년까지 기존 119조 투융자계획에 들어있던 예산을 가져온 것이고, 2조원 이상이 농협 자금이다. 정부 말대로 23조원을 더 늘렸다면 농업예산 총액이 그만큼 증가했어야 하지만 대부분 기존 농림 예산을 FTA 예산으로 재분류했을 뿐이다. 61개 FTA 대책사업 중 기존사업이 36개 신규사업은 25개에 불과했다. 국가 예산 대비 농업예산의 증가율과 비중이 줄어드는 게 그 증거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시설현대화, 첨단온실, 규모화, 골든시드 프로젝트 같이 경쟁력 주의, 생산주의 농정을 담은 사업부터 수리시설개보수, 농촌용수개발, 배수개선 같이 FTA와 직접 관계없는 생산기반 사업까지 들어있다. 본연의 농림예산으로 해야 할 사업을 FTA 사업에 끼워 넣고,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FTA 예산을 기업농, 대기업에게 준 것이 많다. FTA 예산을 동부한농의 유리온실에 87억원이나 지원했다가 공분을 샀던 일이 대표적이다.

또한 23조원은 투자와 융자, 이차보전 예산을 구분하지 않고 끌어 모은, 조삼모사의 전형이다. 실제 농민에게 직접 주는 피해보전 예산은 피해보전직불과 폐업지원금을 합쳐 1조2200억원으로, 전체의 6%에 불과하다. 그나마 피해보전직불금은 수입기여도 같은 제한 장치를 넣어 보상을 줄이고 있고, 농민들에게 농토를 떠나라는 폐업지원은 결코 대책이라고 할 수 없다. 대책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융자금은 정부에 갚아야 하는 농가부채다.

놀라운 것은 한미 FTA 비준 당시 공표한 ‘농가단위 소득안정직불제도를 2013년부터 시행 예정’이라는 약속은 어느 날 증발됐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농업의 가치와 농가소득을 위한 직불제로 대개편하는 논의는 매우 더디다.

한미 FTA로 인한 농업피해는 파괴적이다. 게다가 한미 FTA 대책 예산은 규모도 부풀려지고, 내용도 의심스럽다. 그나마도 올해 10년으로 종료된다. 정부는 미국과의 개정협상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지난 10년의 농업피해, 대책을 먼저 제대로 분석하고 지속가능한 농업,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살리는 농업으로 농정을 재구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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