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개정 간담회

2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한·미FTA 개정 관련 농축산업계 간담회에서 농축산 단체들은 한·미FTA 폐기 요구와 더불어 불가피한 개정 협상 시 현재 발효 중인 한·미FTA 내용 중 국내 농업 분야의 독소조항을 보완하는 부분이 반영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농업 분야의 추가 개방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수차례 피력하며 농축산 업계의 여론 수렴에 공을 들였다.

농축산업계 주장은
폐기 각오 공세적 협상자세 필요
TRQ 조정·세이프가드 개선 등
농업 분야 독소조항 보완해야

정부 입장은
관계 부처간 긴밀하게 협의 
농업계 이익 지킬 수 있게 대응  


▲폐기 요구 ‘봇물’=“폐기도 할 수 있는 겁니까? 분명히 밝힐 수는 없습니까?” 주제발표와 지정토론에 이어 이날 간담회가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청중에선 한·미FTA 폐기 가능성 여부를 묻는 질문이 튀어 나왔다. 앞서 지정토론에 나선 농축산 단체 관계자들도 한·미FTA 폐기 요구를 몇 차례씩 언급하며 한·미FTA 발효 이후 농업 분야의 피해 상황을 강조했다.

김홍길 전국한우협회 회장은 지정토론에서 “한·미FTA 발효 이후 쇠고기 수입은 5만톤에서 15만톤까지 올라갔고, 농가 호수도 반으로 줄었다. 자급률도 32.8%까지 떨어졌다. 관세율도 40%에서 출발해 지금은 24%로 떨어졌다”면서 “한·미FTA 발효 5년 만에 이 정도인데, 이 협상을 폐기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라고 따져 물었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도 “한·미FTA 발효 5년 동안 농업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관세를 유지하자는 것이 개정 협상”이라며 “개정 협상 논의가 아니라 폐기 논의를 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한석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모형정책실장이 주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미FTA는 기체결된 15개 FTA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농축산물 시장 개방 협상으로, 한·미FTA 발효 이후 양국간 농산물 교역은 모두 증가 추세이지만 농축산물 대미 무역수지는 7억5000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석진 낙농정책연구소 소장은 “이 자리가 하나의 요식행위가 아니고 실질적인 개정 협상에 반영될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농업계에서 폐기 요구가 많다”면서 “한·미FTA가 양국간 무역수지에 있어서 긍정적인 효과를 도출했을지도 모르지만, 농업 분야를 놓고 본다면 일방적인 피해를 낳게 됐기 때문에 농축산 단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정부가 잘 새겨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농축산 업계의 요구사항은=농축산 단체들은 불가피하게 개정 협상이 진행될 경우 협상 대상에 농업 분야를 완전히 제외하거나 오히려 기존 한·미FTA 내용 중 농업 분야의 독소조항을 보완하는 쪽으로 우리 정부가 공세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석진 소장은 “분유의 경우 대체품목인 혼합분유의 저율관세(36%)가 철폐되기 때문에 TRQ 제도의 목적 달성이 어려운 실정이며, 이런 가운데 분유에 대한 TRQ가 기간제한 없이 복리로 증량됨에 따라 사실상 관세철폐의 효과와 다를 바 없다”며 “낙농품 TRQ 제도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 소장은 이어 “필수식품인 낙농품을 농산물세이프가드(ASG) 적용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홍길 회장도 “미국산 쇠고기 ASG는 2016년 기준 29.4만톤으로 우리나라 전체 쇠고기 소비량인 58만톤의 절반 이상인데, 현재 ASG 발동기준은 사실상 수입 물량에 제한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현재 미국산 쇠고기 15만톤이 들어와도 한우 산업이 이처럼 난리다. 세이프가드 발동기준이 명확하게 정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또 폐업보전직불금의 지급 조건에 대해서도 “폐업보전직불금으로 소 한 마리에 1만3500원을 줬다. 이것이 대책인가”라며 “폐업직불금을 받고 농가들은 취직하러 삼성에 가야 되는 건가. 그래서 배추농사, 쌀농사로 몰려서 농업 전체에 도미노 현상을 주며 피해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한민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한·미FTA 협상 결과 대표적인 피해 산업이었던 농업 분야는 개정협상의 대상에서 완전 제외해야 한다”며 “만약 미국의 압력으로 농업 분야가 협상 대상에 포함되는 경우라도, 쇠고기·돼지고기·낙농품 등의 ASG 발동 기준 개선은 물론 무관세쿼터 배정 등의 부당한 조건을 삭제하는 등의 실질적인 개선 조치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임정빈 서울대 교수는 “만일 미국 측이 농업 분야까지 포함해 개정작업을 요구할 경우 우리 정부는 한·미FTA 발효 이후 농업부문 이행 효과에 대해 양측이 공동으로 객관적인 조사·연구·평가를 선행해야 한다는 입장 표명과 함께 오히려 농업 부문의 이익균형 차원에서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표적 무역적자 산업인 농업에 대한 양허수준 재조정 등을 통한 이해의 균형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두봉 고려대 교수(한국농업경제학회장)는 “한·미FTA 국내 보완대책으로 추진된 투융자 정책의 성과가 작지 않지만 미국산 농축산물의 관세감축이 계속 진행되는 상황 하에서 투융자 계획의 종료로 인한 농업인들의 우려가 큰 실정”이라며 “한·미FTA 보완대책에 대한 성과평가를 통해 성과가 높았던 정책들은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성과가 낮은 사업은 즉각 철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정부의 입장은=정부는 개정 협상 과정에서 농업의 추가 개방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거듭 피력했다. 그러면서 농축산 업계가 제안한 의견들을 협상 전략 차원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관계 부처 간 긴밀한 협의를 펼쳐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명희 산자부 통상정책국장은 “통상교섭본부장 입으로 ‘농업은 레드라인’이라고 얘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정부의 의지와 각오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세이프가드 발동 기준을 바꾸거나 TRQ 조정 등의 의견은 협상 전략 차원에서 농식품부와 긴밀히 협의하면서 농업계의 이익을 지킬 수 있도록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유명희 국장은 또 한·미FTA 폐기 요구에 대해 “미국이 개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시작도 안 해보고 그동안의 양국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됐던 FTA를 폐기하는 것보다 그 틀 안에서 이익균형을 모색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며 “미국 측의 일방적인 주장에 끌려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폐기는 미국만 가진 옵션이 아니라 우리도 가진 옵션”이라고 설명했다.

정일정 농식품부 국제협력국장은 “정부가 진정성 있게 농업계의 의견을 듣고 반영해 나가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간담회를 열었고, 12월 1일 공청회도 이런 맥락에서 열린다는 점을 말씀 드린다”며 “정부가 농업 부문에 대해 개방이 불가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개정협상 등에서 볼 때 농업 부문을 손대지 않겠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나. 이 부분에 대해 정부에선 상당히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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