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 단국대학교 교수

직불제 개편 문제와 결부돼서 제기돼왔던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최근 헌법 개정안에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맞물리면서 농업계 내부에서 좀 더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좀 우려스러운 흐름이 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농업계 내부의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마치 모든 의견이 합일치 된 것처럼, ‘나를 따르라’는 식의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헌법 개정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시급함 때문에 장차 몇 십 년을, 두고 두고 후세들에게 이어질 농업과 농촌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그렇게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비농업분야 설득 가능한지 의문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고 있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오래 전부터 학계에서 논의돼 오던 농업의 ‘공공재’ 생산 기능에 대한 이론을 기초로 한 것이며, 선진국들이 정책적으로 논의한 것은 1980년대 후반 UR협상에서 ‘농업의 비교역적 가치’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됐다. 이후 1990년대 후반 OECD에서 이를 ‘다원적 기능(Multi-Functionality, 다기능성)’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면서 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확대됐다. 그런데, 그 논의과정에서 ‘식량안보’를 위한 생산기능과 ‘환경보전’ 기능이 상호 모순되는 논리라는 주장이 대두되면서, 이 용어를 농정방향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게 됐으며, 간혹 농업의 비농산물 생산 활동과 연계되면서 ‘다기능 농업(multifunctional agriculture)’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논의가 쇠퇴하게 됐으며, 더욱이 ‘농업의 공익적 가치’라는 용어로 논의된 적은 없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익(public interest)’의 개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주로 법학, 행정학, 사회학 등에서 사용하는 이 개념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또는 학문적으로도 합의된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논의에 대해서는 대립적인 주장이 서로 반복될 뿐이어서 다양성과 특수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래서 만약에 농업의 공익성에 대한 우리 농업계 내부의 합치된 의견이 있고 이를 활용해서 비농업계의 비판에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면, 활용 가능한 개념이겠지만 현실적인 농업계 내부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공익이라는 용어를 농업분야에서 국민들이나 비농업 분야를 설득할 수 있는 개념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농업의 ‘공익’에 대한 합의 없어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수행됐던 농업의 다원적 또는 공익적 가치에 대한 연구는 주로 그 가치에 대한 계량적 평가를 통해서 정책적 지원을 얻는 것에 초점을 둬왔고, 그 개념 자체에 대한 논의로 발전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마치 농업생산이나 농가소득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면, 공익적 가치로 제시하고 있는 식량안보, 환경보전, 농촌경관 및 활력제고, 농촌사회유지 등의 효과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익적 가치 중에서 농업계에서 주로 강조한 것은 식량안보의 기능이었고, 이는 생산성 증대를 위한 농업생산활동을 강화하는 논리로 활용되면서 자연스럽게 농촌의 환경, 경관, 문화자원의 파괴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됐다. 심지어 어느 농민단체 대표는 “70세까지 농약으로 생산한 농산물 먹은 사람들이 아무 탈이 없는데, 농약과 제초제를 사용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라는 이야기까지 거리낌 없이 하는 상황이다. 농촌 자원을 농민의 소득 증대를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후세에게 전해줘야 하는 보존가치로는 거의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공익적 가치는 그 동안 식량안보 기능의 달성과 이를 근거로 한 농민소득 보장을 지원하기 위한 구실로 사용돼 왔을 뿐 그 과정에서 파괴되는 농촌의 환경, 경관, 사회, 문화자원을 보존하기 위한 정책적 논리로 활용된 적이 거의 없다.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그저 식량안보 기능의 보완적 역할에 머물러왔다.

농업·농촌 자원 ‘보존’에 초점을

그래서 진정한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담기 위해서는 농업의 농촌자원 보존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농업의 보존적 가치(Conservational value of agriculture)’를 정립하고 대외적으로 천명해야 직불금을 비롯한 각종 농업지원 정책의 개편이나 헌법 개정안 논의에서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다. 애매하고 낡은 ‘공익성’에 관한 논의로는 국민과 비농업계를 설득시키기 어렵다. 혹자는 ‘그래도 여전히 농업의 식량안보 기능이 중요하지 않느냐’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그저 생산량만 중요하다고 한다면, 이것도 낡은 논리다. 생산량만을 강조하면, 아마도 다양한 형태의 식물공장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식량안보를 확보하는 방안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차제에 우리 농업과 농촌의 자원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국토의 파수꾼으로서의 농민의 역할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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