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쌀 과잉 문제의 구조적 해법

▲ 쌀 생산조정을 위해서는 타작물 전환에 따른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관련법을 만들고 예산도 법에 따라 집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고 있는 장면.

농업현장에서의 최대 화두 자리는 항상 쌀이 차지해 왔다. 지난해 쌀값이 폭락하면서 농업생산액 1위 자리를 돼지품목에 내주긴 했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이 농업현장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는 점과 주곡작물이라는 점에서 농정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중요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소비감소로 인한 쌀 생산 과잉 기조가 이어지면서 쌀값이 하락, 농민은 농민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과잉 생산된 물량의 시장격리와 쌀값 하락에 따른 변동직불금 지급으로 정부는 정부대로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쌀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직불제의 개편 논의가 2년째 진행 중인 상황. 이런 상황에서 쌀 중심의 직불제를 논농업 전반으로 확대하고, 대체작목으로 전환이 이뤄질 경우 전환작물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관련법을 제정해 법적 예산으로 지원함으로써 전작품목이 안정적으로 시장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잉생산 쌀 재배 줄이면서
논에 다른 작물 심을 수 있게
제도적 장치 마련 목소리

쌀 생산조정제 시행한다 해놓고
정부 얼마 지나지 않아 철회
효과 발휘 못하고 농민만 어려워져

일본, 70년대부터 쌀 생산조정
사료용쌀 등 작목전환 지원 확대
자연스레 생산량 줄이는
확장적 생산조정제로 봐야



◆쌀 중심의 직불제 도마위

3년여 가까이 하락세를 지속해 오던 산지쌀값이 올 수확기 들어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달 통계청이 조사한 산지쌀값 평균치는 80kg 기준 15만1013원을 나타내면서 회복 불가능해 보였던 15만원대를 넘어섰다.

공공비축과 해외공여용 쌀 35만톤, 시장격리 37만톤 등 정부차원에서 72만톤을 시중에서 빼 내기로 했고, 농협에서도 산지쌀값 15만원 지지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내놓으면서 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올해산까지 적용되는 목표가격 18만8000원에는 여전히 못 미치는 것. 특히 수요량 대비 생산량 과잉은 올해도 지속되고 있다. 정부의 시장격리가 없었다면 가격 폭락세는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실제 시장격리는 올해를 포함해 최근 3년 이상 이뤄졌고, 쌀값이 폭락하면서 2016년산 쌀의 경우 변동직불금이 쌀 품목에 허용된 허용보조 1조4900억원을 모두 지급하고도 모자란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실제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농업관련 직불제는 쌀소득보전(고정·변동)직불제·경영이양직불제·친환경농업직불제·조건불리직불제·경관보전직불제·FTA피해보전직불 및 폐업지원·밭농업직불제 등으로 지난해 총 2조1124억원이 투입됐고, 이중 쌀소득보전직불제에 총 1조5433억원이 사용되면서 73%가 사용됐다. 특히 2016년산 쌀에 대해 올해 지급된 변동직불금의 규모가 1조49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 비중은 더 높아지는 상황.

이에 따라 현행 고정과 변동으로 구성돼 있는 쌀직불제가 쌀 생산을 부추긴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직불제 전반에 대한 개편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 따라서 수요량에 비해 과잉생산되고 있는 쌀의 재배를 줄이면서 논에 다른 작물을 심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단 정부차원에서는 쌀 생산량을 줄이기 위해 2018년과 2019년 2년간 쌀생산조정제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2018년도 5만ha를 시작으로 2019년 5만ha에서 쌀 생산조정제를 실시한다는 것.

내년에 이 같은 제도가 시행이 되면 국내에서는 세 번째로 쌀생산조정제가 실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생산조정제 도입에 앞서 재정당국은 ‘국내에서 쌀 생산조정제는 이미 실패한 사례며, 일본도 쌀 생산조정제를 폐지했다’는 논리를 개진하면서 반대입장을 견지한 바 있다. 


◆쌀 생산조정제를 둘러싼 논란

농업경제 전문가들과 RPC를 운영하고 있는 농협 조합장들의 말을 종합하면 “실패한 적도, 폐기됐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결론이다.

우선 쌀 생산조정제가 국내에서 실패했다는 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문병완 농협RPC전국협의회 회장은 지난 2003년에 추진된 첫 번째 쌀 생산조정제에 대해 “생산조정을 하겠다고 정부에서 사업을 추진해 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철회하면서 생산조정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문 회장에 따르면 정부가 쌀 생산조정제를 실시하면서 벼 대신 다른 작물을 논에 심기 위해 농민들은 논의 형상까지 바꿔야 했다. 하지만 연이은 흉작이 발생하면서 오히려 정부가 ‘논에 벼를 심지 않을 경우 정부정책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라’는 공문을 각 지자체에 발송, 정책이 유지되지 못했고 오히려 정부 정책에 따른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작물들의 자급율 향상 등과 같은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생산조정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정책이 단기적으로 실시되다보니 나타난 현상으로 정부의 재고미 소진과 단기적인 수급균형은 맞췄을지 몰라도 정책에 따랐던 농민들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쌀 생산조정제를 폐기했다는 데도 전문가들은 동의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쌀이라는 품목 중심의 수급정책이 생산기반인 논을 대상으로 전환되면서 쌀 뿐만 아니라 다른 곡물류의 생산기반 확충으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김태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시니어이코노미스트와 이정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은 ‘일본, 쌀 생산과잉과 사워 온 반세기 드라마’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생산조정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확장돼 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본이 쌀 생산조정제를 도입한 것은 지난 1971년. 1970년 당시 일본정부의 쌀 재고량이 총 수요량의 60%에 달하는 720만톤을 기록하면서 이듬해인 1971년 54만ha를 대상으로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을 경우 10a당 4만엔을 지급하는 쌀 생산조정제를 실시했다.

이어 1980년도에도 정부재고가 늘어나면서 쌀 생산조정을 강화했고, 2001년 생산조정면적이 100만ha로 늘어나자 2004년부터 면적에 대한 생산조정 대신 생산량 목표를 지역에 할당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어 아베 정부가 2018년부터 쌀생산조정제를 폐지하기로 했는데, 이를 두고 ‘일본에서도 쌀 생산조정제는 폐지되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 하지만 ‘쌀 생산조정제’라는 정책은 폐지되는 것이 맞지만 사료용 쌀 등으로 논에서 재배하는 작목을 전환할 경우 이에 대한 지원은 늘리고 있는 상황.

따라서 이전 정책이 쌀 생산여부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면 이후 정책은 생산기반인 논과 논에서 재배할 수 있는 다양한 작물에 대한 지원을 통해 자연스럽게 쌀 생산을 줄이는 일종의 확장적 생산조정제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주곡인 쌀을 제외하고 콩이나 고품질 조사료 등의 자급률이 현저히 낮다는 점에서 전반적인 곡물자급률에 대한 검토와 함께 쌀 생산과잉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진우 기자 leejw@agrinet.co.kr


#전문가 진단/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논 재배 가능한 타품목 자급률 향상 소비 안정화될 때까지 지원해 줘야”

단기적으론 수급·가격안정 기여
가격 하락 등 부작용 대응 관건
전반적 농업구조 개선 이뤄져야

최근 쌀값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내년부터 시행예정인 쌀생산조정제에 농민들이 참여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쌀값이 회복되면 굳이 손이 더 가고, 논의 형상을 전환해야 할 수도 있는 타작물로의 품목전환에 농민들이 참여하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생산조정제에 참여를 해 본 경험이 있는 농가들은 부정적인 입장이기도 하다.

왜 일까? 우선 작목을 전환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가격하락 문제가 해결과제로 지목되고 있다. 콩을 취급하고 있는 경북지역 한 엽연초조합 따르면 대체작물로 콩이 재배된 해는 필연적으로 가격 하락이 따랐다. 국내 생산기반이 부실한 것도 이유지만 생산보다는 국산 콩 소비를 일시에 늘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는 콩 뿐만 아니라 자급률이 1%대에 불과한 우리밀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연간 생산량이 3만톤에 불과하지만 매년 수급문제를 겪고 있다. 정부의 밀 자급률 확대정책에도 불구하고 소비량이 2만톤에서 2만5000톤에 머물면서 조금만 더 생산되면 과잉을 겪는 것.

이에 따라 단기적인 쌀 생산조정제도 중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논에서 재배할 수 있는 타 품목의 자급률을 향상시키고, 확고한 소비처가 마련될 때까지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논농업과 관련된 지원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해 ‘논농업구조개선을 위한 법제화 연구’를 진행한 바 있는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은 “핵심은 벼농사를 짓는 것처럼 영농이 가능하도록 소득·기술·기계화 등의 분야에서 연구개발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논에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할 경우 논의 형상을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또 작목전환에 따른 판로문제와 가격 하락 문제, 그리고 벼농사와 비슷한 노동이 투입될 수 있도록 기계화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그리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두 차례의 쌀 생산조정제가 시행됐고, 단기적으로는 사업기간 동안 쌀 수급과 가격안정에 기여했지만 전작작물의 생산기반 정비와 수확 후 관리시설 준비 부족, 가력하락 등 예상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대응이 부족했다”고 진단하면서 “이로 인해 쌀 생산조정제도 자체의 의미가 평가절하 되면서 실효성마저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는 “단기적인 관점에서의 쌀 생산조정제도 운영이 돼야 하지만, 전반적인 논농업 구조개선이 더 필요하다”면서 “또 소비시장이 정착될 때까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으로 정책이 추진되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현재와 같은 단기적인 예산편성으로는 매년 재정당국과 사업예산편성을 두고 논의를 해야 하고, 또 예산반영이 안될 경우 정책사업이 폐기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법적 예산 편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법을 새롭게 제정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해야 문재인 정부가 농정공약으로 내놓은 쌀값 21만원 약속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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