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농업계도 바쁘다

 

농업계가 헌법개정을 위한 움직임에 속도를 내고 있다. 10월 27일과 11월 1일에 개헌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면서 헌법에 담아낼 농업조항을 둘러싼 농업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경자유전의 원칙’과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당연히 헌법에 명시해야 할 조항이며, 특히 이 같은 조항을 ‘왜 신설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논리를 통해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활동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국농업법학회 추계학술대회
스위스·포르투갈·이탈리아 등
헌법에 농업조항 명시
농업예산 투입·등 명문화
협동조합 지원 통한 농업 장려
미·프랑스·독일·일본 등은
실행 가능한 농업기본법 갖춰


한국농업법학회와 농림축산식품부·홍익대학교 법학연구소가 10월 27일에 개최한 ‘2017년 한국농업법학회 추계학술대회’의 주제는 ‘미래의 농업·농촌과 헌법적 과제’. 이 같은 제목의 토론회가 진행됐는데, 이날 토론회에서는 농업조항을 담은 다양한 해외헌법들이 소개됐다. 헌법에 ‘경자유전의 원칙’을 유지하고,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관철시켜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동의와 더불어, 이들 헌법을 통해 개헌 가능성을 점쳐보기 위함이다. 이상길 본보 논설위원은 ‘새롭게 관철해야 할 조항’으로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국가의무를, ‘지키고 강화할 조항’으로 ‘경자유전 원칙과 소작제 금지’를 강조했다.

송재일 명지대 교수는 “스위스, 포르투갈, 헝가리, 그리스, 이탈리아 등이 헌법에 농업조항을 직접 갖고 있다”고 밝혔다. 스위스 헌법에서 농업조항은 제104조다. 제104조의 핵심내용은 ‘연방은 농업이 지속가능하고, 시장지향적인 생산을 통해 전 국민에 대한 안정적 식량공급, 천연자원의 보존과 전원풍경의 유지, 지역분산적인 인구 분포에 기여하고, 농민의 토지경작을 지원하며, 농업이 다원적 기능을 완수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이다. 물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특별 배정된 농업예산과 연방의 일반재원을 투자해야 한다는 명분도 헌법에 명시돼 있다.

송 교수는 “유럽에서 스위스를 제외하고 농업조항이 자세하게 규정돼 있다”고 평가, 포르투갈 헌법을 설명했다. 포르투갈 헌법의 농업조항은 제93조(농업정책의 목적)에서부터 제98조(농업정책 입안과정 참여)까지로, ‘토양 및 기타 천연자원의 합리적 사용’, ‘농지계획 및 전환과 산림개발’, ‘가족농업 단위로 통합되는 중소규모 농업 종사자 우선지원’ 등 농업조항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게 특징인데, 송 교수는 마지막 조항을 강조했다. ‘농업정책 입안 과정에서 농촌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참여는 그들을 대변하는 기관들을 통해 보장한다’는 것으로, 농어업회의소 조항이다. 이탈리아 헌법에 대해 “중소규모의 농장을 지원하고, 협동조합 방식으로 농업진흥을 도모하려는 점이 눈에 띈다”고 평가했고, 스페인 헌법과 그리스 헌법에도 협동조합 지원을 통한 농업장려를 명문화하고 있다.

송 교수는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은 실행 가능할 정도로 구체적인 농업기본법을 갖추고, 또 개별 법률로 세심하게 농업육성을 위한 원칙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미국의 농업법(Farm Bill)은 5~6년마다 새롭게 법률 명칭도 달리 제정되는 한시법으로 직불제 등 예산조치가 담겨있고, 프랑스는 1960년에 농업기본법을 제정해 국민을 위해 환경변화에 맞춰 수차례 개정해왔으며 일본도 1997년 7월에 제정된 식료농업농촌기본법에 식량자급률이 명문화돼 있다”며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들은 유럽연합의 공동농업정책(CAP)이 ‘농업헌법’의 지위에 있다”고 언급했다.

사동천 한국농업법학회장(홍익대 교수)은 스위스가 올해 9월 24일에 신설한 연방헌법 제104조a를 공개했다. 사 교수는 이 조항을 ‘세계 최초의 식량안보에 관한 헌법규정’이라고 의미를 붙였다. 제104조a는 79%의 찬성을 받아 확정됐는데, 스위스 연방의회의 설명서에는 “생산부터 가공, 마케팅을 거쳐서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의 농업·식품공급 과정 전체를 모두 아우르고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및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수출입까지 아울러서 통합헌법규정을 제정함으로써 장기적인 식량안보를 보장하기 위함”이라고 제104조a 제정 이유를 밝히고 있다.
 

▲ 국민농업포럼과 농민의길, 한국농축산연합회가 개최한 농식품분야 헌법개정 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들.

◆농림수산식품분야 헌법개정 토론회
농식품부 “농업가치 계량화·조문화 작업 주력”

소비자·국민 설득할 수 있는
농업조항 조문화작업 필요
면단위부터 헌법교육 추진을


‘2017년 한국농업법학회 추계학술대회’에 이어 국민농업포럼·농민의길·한국농축산연합회도 ‘건강한 먹거리,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한 농림수산식품분야 헌법개정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역시 ‘경자유전의 원칙’, ‘농업의 공익적 가치’ 등 농업조항에 넣어야 할 예시들이 제시된 가운데 특히 개헌이 ‘국민주도’로 진행돼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모아졌다. 

▲어떤 내용을 담을까?=곽금순 한살림연합회장은 “농업조항으로 식량자급률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주장했다. 곽 회장은 “20년 이상 학교급식을 전개해서 지금은 친환경으로 전환됐는데 식량자급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계획생산과 계획소비, 여기에 식량자급률을 높여가는 정책을 통해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영제 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하 전 차관은 “식량안보적 개념으로 접근해서 헌법에 담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자유전의 원칙’도 빠지지 않았다. 곽금순 회장은 “30년 한살림운동을 하면서 귀농인은 물론 어려운 환경에 있는 농업인들이 농사를 짓고 싶어도 땅이 없어 농사를 못짓는 경우가 많더라”며 한살림이 농지살리기 운동을 시작한 연유를 밝혔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에두른 표현이다.

한민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실장은 “경자유전의 원칙은 비농업인의 대기업 농지소유를 늘려가면서 결국 투기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면서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 국민과 농업인, 정부의 상호준수 역할도 함께 명문화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국민참여 개헌이 먼저=이 같은 내용을 헌법에 넣으려면 개헌과정에 국민이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국회가 헌법개정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농업인은 물론 여타 계층의 의견들이 수렴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서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개헌을 정치인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국민을 배제하고 있다”며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인 만큼 촛불헌법은 국민이 주도하고 국민이 끝까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기우 인하대 교수가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발안권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이 주도하는 개헌을 위한 조치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인 이 교수는 “헌법에서 소홀히 해왔던 각계각층의 요구가 헌법에 수시로 반영될 수 있고 특히 정치권이 개헌을 외면하더라도 국민이 개헌을 주도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아니겠는가”라며 “스위스 헌법은 반 이상이 국민들이 스스로 헌법을 내놓고 결정하기 때문에 ‘우리 헌법이고, 우리 국가’란 인식이 스위스 국민들에게 있다”고 설명했다.

민연태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은 “우리 농업인이 제공하는 가치만큼 대우를 받을 수 있고 먹거리가 지켜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당과 농업계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며 “대통령 시정연설에서도 ‘개헌은 국민이 바꾸는 의지’라고 했는데, 현재 국회 개헌특위는 활동자체가 활발하지 않고 답보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교육과 홍보 ‘필요’=국민이 개헌을 주체로 이끌어가려면 헌법을 알아야 한다. 때문에 류홍번 한국YMCA전국연맹 정책기획실장이 ‘교육’을 강조한 것이다. 류 실장은 “시민단체들이 모여 발족한 ‘국민주도 헌법개정 전국네트워크’(국민개헌넷)가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국민들이 헌법을 모르는 상황에서 개헌을 결정할 수 없고 헌법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국민학습모임을 만드는 것”이라며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헌법이 되려면 헌법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 실장은 “농촌지역에서도 면단위 등에서 헌법 학습모임을 진행했을 때 개헌에 농업조항을 넣을 기반이 형성되고 국민주도가 가능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사동천 교수도 “소비자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내용으로 농업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 교수는 “예를 들면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하고,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며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등 도시인들이 농업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인식을 확실히 해줘야 한다”며 ‘홍보 아이콘’으로 현재 직불금은 연간 2조4000억원 규모인데 비해 담수효과는 연간 4조~16조원이라는 점, 1인당 GNP 상승에도 불구하고 농업인의 소득이 감소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도 “농경연의 국민인식조사에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인식하면서도 세금부담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 국민 공감대를 얻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타=김기훈 농식품부 농촌정책과장은 “조문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내년 2월까지 개헌안 조문을 완성해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다는 계산에서다. 김 과장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이제는 꿰어야 한다”며 “헌법 121조와 123조로 갈지, 이를 통합해서 하나로 갈지, 그리도 무엇을 담아낼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특히 김 과장은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남은 3~4개월 동안 계량화·정량화해서 수치를 만드는 데 주력할 것임을 밝혔다. 김 과장은 “우리의 입장을 개헌특위와 개헌특위 자문위원단과 국회의원에게 홍보하고 설득하고 수치화된 자료를 바탕으로 일관된 논리로 주장해야 반영되지 않겠는가”라며 “국회와 범농업계와 정부도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좌장을 맡은 황민영 식생활교육국민네트워크 상임대표는 “토론회장을 나가면 농업계 주장들이 국민들에게 설득되기 어렵다”며 “농업계가 총연합체로서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농협 국민공감 운동
“농업 공익적가치 헌법 반영”
1000만명 서명운동 등 추진


농협도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반영하기 위한 운동에 나섰다. 농협은 지난 1일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500여명의 임직원들과 함께, ‘농업가치 헌법 반영 국민공감 운동’ 추진결의대회를 갖고, “범농업계, 학계, 시민단체 등을 아우르는 범국민적 공감대를 구축해 농업가치의 헌법 반영을 달성하겠다”고 다짐했다. 농협은 ‘농업가치 헌법 반영 국민공감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한다는 차원에서 ‘농업가치 헌법반영을 위한 1000만명 서명운동’도 전개,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 첫 번째로 서명했다.

농협 임직원들은 ‘농업가치 헌법 반영 국민공감 운동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우리의 결의’를 통해 △우리는 국민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식량안보를 굳건히 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는 농업을 통해 농촌경관과 환경을 보전함으로써 국토를 쾌적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데 적극 앞장선다 △우리는 농촌 지역사회를 유지하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발굴해 적극 추진한다 △우리는 농업의 가치가 더 많이 창출돼 국민과 농업인 모두의 행복이 증진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농업과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농업의 가치가 헌법에 반영되도록 전사적 역량을 결집한다 등을 다짐했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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