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석 농촌진흥청 농업연구사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과일소비량은 2000년 58.4kg에서 2015년 66.7kg으로 16년 동안 약 14% 증가하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과일 생산량은 242만9000톤에서 269만7000톤으로 약 11% 증가하는 데 머물렀다. 결국 소비량 증가는 과일 수입을 동반하면서 진행되었고, 그 결과 과일의 자급률이 하락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수입과일의 상당 부분은 과일소비의 다양화와 맞물려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품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내외 가격 차이를 이용하여 수입되는 품목도 적지 않다. 여기에 우리나라 소비자의 73.2%는 국산과일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경향이라는 점도 문제다. 가급적 국산과일을 구입하려는 의지를 가진 소비자는 불과 22.8%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연령층이 낮아질수록 수입산에 대한 거부감도 낮아지고 있다. 20대 소비자와 30대 소비자는 각각 13.3%와 17.5%만이 가급적 국산과일을 사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이처럼 소비자의 구매행동도 국산과일이 수입과일로 대체되기 쉬운 상황임을 예상하게 한다.

‘판매력 확보’가 경쟁력의 출발점

한편 소비자의 과일에 대한 중요도 대비 만족도가 가장 낮은 것은 가격이다. 특히 소비자는 현재의 과일가격보다 평균 23.4%는 인하된 가격이 적정한 가격이라 인식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로 비추어보면, 지금의 수입과일과 국산과일의 경쟁과 품목 간 경쟁은 더욱 격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일 농가(산지)는 단순한 생산력이 아닌 판매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경쟁력을 갖추는 출발점이 된다. 판매력이란 생산된 농산물을 농협에 판매를 의뢰하거나 도매시장에 판매를 의뢰하는 경우가 아닌, 농가 스스로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농산물을 어떻게 판매할 것인지 등을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잘 팔리는 농산물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가령 ‘경쟁자보다 더욱 저렴한 판매가격을 제공하는 능력’, ‘안전성과 위생 문제를 중시하는 소비자에게 안전성을 어필하는 능력’, ‘고당도를 실현하거나 모양이나 착색을 잘 시킨 고품질의 농산을 공급하는 능력’ 등이다. 상기와 같은 가격과 안전성, 그리고 품질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인식하고 있는 농가는 비교적 많다. 또한 이러한 세 가지 요소는 상품을 특징을 나타내는 일련의 부가가치 활동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령 유기농산물이나 GAP와 같이 안전성을 어필하는 상품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경쟁력의 종착지는 가격이 될 것이다. 또한 재배기술을 무기로 당도 15브릭스 이상의 고품질 사과가 서로 경쟁하는 상황에서도 경쟁력의 종착지는 가격이 될 것이다. 따라서 유기농이나 당도 15브릭스 이상의 고품질 사과를 통해 궁극적인 차별화를 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농산물을 그 자체의 특징을 나타내는 일련의 부가가치활동보다 상품의 가치를 증진시키기 위해 부수적으로 부가되는 서비스가 궁극적인 차별화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만의 부가가치 창출방법 필요

일반적으로 유리한 판매를 통해 높은 소득을 실현하는 농가가 반드시 재배기술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농가는 일반적으로 판매력을 바탕으로 나만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경우 목표로 하는 고객이 명확하다는 점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절대 구매할 수 없는 나에게서만 구매할 수 있는 농산물’을 만들어가는 부가가치 활동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러한 부가가치는 나의 농산물의 생산과 판매에 동반되는 이야기 거리(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포장방식의 변화를 통해 만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나만의 차별화된 품종(신품종, 토종품종 등)을 통해 만들어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일련의 부가가치 활동을 통해 궁극적인 경쟁력을 강화하는 대응이 필요하다.    

적정가격 실현해야 교섭력 발휘

1990년대 소매점의 체인화·규모화와 더불어 산지의 조직화·규모화도 동시에 진행되어 왔다. 이처럼 산지의 조직화·규모화의 목적 중의 하나는 시장교섭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산지의 시장교섭력은 소비지와 대등한 관계에서 적정가격을 실현한다는 관점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산지조직이 점유율 경쟁으로 이어지면서 가격을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그 종착지로 전국단위의 조직화(브랜드화)를 추진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종종 ‘제품은 변변치 않는데 큰소리치는 산지가 늘어나 곤란하다’라는 유통인의 이야기를 접한다. 즉 산지의 조직화·규모화를 통한 교섭력 발휘로 적정한 가격 이상으로 판매가격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종종 들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수입을 유발하거나 해당 품목의 생산과잉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시장에서 수급실세를 반영한 적정가격 이상으로 판매가격을 실현할 경우, 한계 생산비가 적정가격 이상으로 발생하는 산지에서도 해당 품목을 생산하기 시작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비가 가정 적게 발생하는 지역(적지)이 생산비 수준에서 판매가격을 설정하게 된다면, 그 이상 생산비가 발생하는 지역에서는 해당 품목을 생산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지속적인 점유율 유지와 이를 통한 교섭력 발휘가 가능하다. 이처럼 산지조직화를 통한 교섭력 발휘가 적정가격 이상의 판매가격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산지 조직화·규모화는 그 자체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목표고객으로 설정한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 등에 농산물을 경쟁력 있게 공급하기 위해 산지조직화·규모화가 필요해 질 뿐이다. 따라서 목표고객이 무엇을 어떻게 원하는가에 따라 그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자그룹의 규모와 상품화 방법 등은 당연히 다른 것이다. 이러한 순서가 잘 지켜졌을 때 비로소 시장지향적인 조직과 판매가 되는 것이다. 이 순서가 바뀌었을 때는 생산자 중심의 밀어내기 식 판매로 전락될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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