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9000㎡ 규모의 밭떼기 계약 거래를 일방적으로 파기 통보 받은 신해철 씨가 계약서를 보며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고 있다.

배추산지 계약파기 신음

계약금 지급 차일피일 미루더니
10월 중순에 일방적 계약 파기
“소송 진행할 여력도 없어”

산지 수집상 잘못 인정하지만
“이렇게 가격 떨어질 줄 몰랐다”
피해자 속출 불구 군색한 변명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계약서.’ 전남 무안에서 9900㎡ 규모의 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 귀농 2년차 농민 신해철(44) 씨가 지난 9월 초 맺은 1800만원어치 밭떼기 계약서는 계약 한 달여 만에 종잇조각으로 남게 됐다. 계약 당사자가 계약금도 주지 않은 채 출하기를 바로 앞에 두고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했기 때문. 지난해 소규모 재배를 했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배추 농사를 시작한 신 씨는 이번 일방적인 계약 파기로 인해 돈을 넘어 농촌에 대한 실망 등 돈 이상의 많은 것을 잃었다고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9월초 신해철 씨가 맺은 구겨진 밭떼기 거래 계약서.

신 씨는 “이제 귀농 2년차로 아직 초보 농사꾼이다. 이에 값을 조금 더 올리기보다는 안정적인 판로가 우선이라 판단했고, 또 농사를 더 배우고픈 마음도 있어 (9월초 계약 당시) 배춧값이 높았음에도 계약거래를 했다”며 “계약 당시 필름만 지원해주고 바로 계약금을 넣어주기로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더니 출하를 한 달여밖에 남겨두지 않은 10월 중순에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렸다”고 전했다.

계약서가 있기에 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그에겐 그럴 여력도, 시간도 없다.

신 씨는 “당장 한 달 뒤엔 출하를 해야 하는데 어디에 출하할지 막막하다. 출하처를 찾기도 버겁고 자본도 없어 소송을 진행할 여력이 없다”며 “귀농 2년 만에 농촌 현실이 이런 것인가 하는 실망을 넘어 땅은 정직하다고 믿었는데 귀농을 괜히 했나하는 후회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신 씨와 계약을 맺은 당사자들도 잘못을 인정하지만 자신들도 억울한 면이 크다고 밝히고 있다.

신 씨와 계약한 산지 수집상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솔직히 잘못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도 (신 씨에겐 아니지만) 여러 농가에 계약금까지 지불했지만 이를 포기했다”며 “지불할 자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계약을 파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계약 자체를 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 아니었느냐’는 질문엔 “작년 김장철에도 시세가 나쁘지 않았고 계약 당시에도 배춧값이 양호했기 때문에 이렇게 가격이 떨어질 줄은 몰랐다”고 답했다.

신해철 씨가 겪은 일은 비단 신 씨만의 일이 아니다. 신 씨의 밭을 포함해 당시 이 수집상과 계약한 배추 재배면적이 9만9000㎡에 이르렀기에 이 계약에 참여한 농가가 모두 피해를 입은 상황이다. 또한 김장철을 목전에 둔 올 가을, 전국의 많은 배추 농가의 계약이 파기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는 것이 도매시장 등 업계의 전언이기도 하다.

오현석 대아청과 경매차장은 “김장철 배추 전망이 너무 좋지 않다. 면적은 증가했는데 작황까지 상당히 양호해 양이 크게 늘 것 같아 큰 추위가 없을 경우 폭락 수준까지 우려되고 있다”며 “이에 현재 배추 계약을 파기한 소식이 계속 들려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계약금을 받고 계약을 진행해야 그나마 피해를 덜 볼 수 있다”며 “수집상들도 현실이 어려워지면 적어도 농가에 양해를 구해야 건전한 배추 유통 구조가 조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