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삼석 농촌진흥청 배연구소장

외국을 여행할 기회가 생기면 직업병이 발동해 농산물시장이나 일반생필품시장을 매번 찾게 된다. 그럴 때마다 여러 가지 형태와 화려한 색깔을 가진 채소류나 과실을 보면서 여행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하며, 참 다양한 것들을 먹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판매되는 농산물의 종류도 많지만, 하나의 품목에서도 여러 가지의 품종을 만나면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품목마다 대부분 한품종 올인 중

반면에, 우리는 획일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단일민족으로 구성돼 있다며 자랑스러워하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모두 같은 메뉴를 선택해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모습도 보았다. 또한 ‘신고’ 배, ‘후지’ 사과, ‘켐벨얼리’ 포도, ‘부유’ 단감 등 하나의 품종이 전체 생산량의 50∼80%를 차지해 시장이나 마트에서도 똑같은 과실만 전시 및 판매되고 있다. 획일적인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나에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은 분명히 장점도 많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개최될 당시 우리가 응원문화를 통해 보여준 것처럼 하나의 일에 집중하는 결집력과 같은 사회문화는 대한민국이 가진 큰 장점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무한경쟁의 시대, 무에서 유를 창조해 세계를 선도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에서 다양성이나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또 다른 경쟁력이 될 것이다.

다양한 맛·형태 새품종 개발 필요

선택의 즐거움, 남과 다름에서 만족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을 잠재적 열성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배나 단감에서 다양한 맛과 형태를 가진 품종을 이용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이들에게 이름을 부여해 판매하도록 하자.

30여 가지가 넘는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파는 매장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소비자에게 골라먹는 재미를 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옷을 다른 사람이 입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바로 다음날부터 그 옷은 더 이상 입지 않게 되었던 기억들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일란성 쌍둥이를 제외하면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다 제각각이고, 고유의 모습과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걸 맞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각자에게 이름은 큰 의미가 있다. 우리가 배운 김춘추 시인의 ‘꽃’ 이라는 시에서도 이름의 의미와 본질을 찾아 볼 수 있다.

배를 포함한 많은 농산물들은 자신만의 이름을 가진 품종이 있다. 배의 경우 8월 한여름에 만날 수 있는 ‘한아름’과 ‘원황’, 추석에 맛있는 ‘슈퍼골드’, ‘신화’, ‘화산’, ‘만풍배’, 늦가을 찬바람과 함께 오는 새콤달콤한 ‘추황배’, ‘만황’ 등 각각의 모습과 맛에 어울리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판매되는 배는 모두 배일 뿐, 달리 이름이 붙어 있지 않다.

소비자들이 기호도 차이를 만들어 내는 품종고유의 가치를 확인하고, 각자의 취향에 맞는 농산물을 선택해 이용할 수 있게 됐을 때, 그 만족도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농산물 구입을 늘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농산물마다 각자의 이름 붙이길

이제 시장이나 마켓의 매장에서 판매를 기다리고 있는 배, 사과, 복숭아, 포도, 감, 감귤 등 과실을 포함한 모든 농산물에게 각자의 이름(품종명)을 찾아 돌려줘야할 때가 됐다.

이름을 가진 농산물이 이름값을 할수록 이것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를 소비하는 이들까지 모두 더욱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름을 가진 당당한 농산물들을 시장에서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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