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밀 산업의 재고 처리를 위한 움직임이 빠르면 이달 안으로 가시화될 예정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주류산업협회, 국산밀산업협회 등이 재고 물량 1만톤에 대해 주정원료로 처리하기로 합의를 한 이후 처리 물량의 계약 등을 시작으로 하는 후속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부 사항은 아직 조율 중으로, 조율이 끝나는 대로 정부가 공식 발표를 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상반기부터 구곡 재고 물량 1만5000톤 중 1만톤을 연중 처리한다고 하면 중소 수매업체들의 자금 흐름에도 숨통이 트일 뿐만 아니라 파종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빚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업계 관계자들도 모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아쉬움이 크다. 계약 생산을 통해 생산량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한 우리밀 산업의 재고 과잉 문제와 수매업체들의 자금난 문제는 올해 봄부터 경고음이 울렸던 사안이다. 자급률 1% 남짓 되는, 소외받고 있는 우리밀 산업이라는 여건상 그 경고가 요란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부와 우리밀 업계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했다면 지금보다 빠른 시일 내에 재고 해소 방안이 마련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물론 정부와 민간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정부로선 소요 예산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었고, 당사자인 우리밀 업계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등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인지한 올 봄 이후 계절이 2번이나 바뀌었다. 수매가 끝나고 파종 시기를 앞둔 10월이 돼서야 만들어낸 ‘재고 1만톤의 주정원료 처리’라는 결과는 적기의 ‘묘책’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고육지책’이라는 느낌이 짙다.

2016년 자급률 1.8%였던 우리밀 산업은 이번 사태의 후폭풍으로 내년 생산량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최근 몇 년간 3만톤 수준을 보였던 생산량은 내년 1만8000~2만톤 수준까지 떨어져 자급률 역시 1% 밑으로 내려앉게 됐다.

소비 수요를 감안하지 않은 채 공급에만 초점을 맞춘 우리밀 업계의 책임이 있다는 외부의 질책은 뼈아프지만 업계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2020년까지 우리밀 자급률 5.1%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사실상 생산에서 유통(수매), 판매 등 전 분야를 영세업체들이 대부분인 민간에만 맡겨 놓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경영학에선 기업의 가치평가방법 중의 하나로 ‘청산가치법’이란 것이 있다. 기업을 계속해서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곧 청산할 것이라 가정하는 것이 전제가 된다. 일반적으로 단기간 내에 보유하고 있던 자산을 처분하고자 하면,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거래되는 가격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즉 제값을 못 받고 헐값에 처분하는 상황이 발생된다는 것이다. 청산가치법이란 이런 상황을 가정해 자산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이다.

수입밀 홍수 시대에 우리밀 산업이 무너진다고 가정할 때 그 청산가치는 과연 얼마일까? 수치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라는 점을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다. 이번 위기가 향후 우리밀 산업 회생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기를 바란다.

식품팀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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