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윤 화천현장귀농학교

귀농교육을 하면서 가장 많이 요구받는 것이 돈 되는 작물에 대한 정보다. 특용작물 억대농사에 대한 환상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과 농사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부족하거니와 정부나 언론에서 왜곡된 정보를 제공해온 탓이기도 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귀농자나 귀농 희망자들 대부분이 알게 모르게 기존 농민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있다는 거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초보자조차 기존 농민들의 방식은 전근대적이라고 보고, 자신은 첨단 과학과 인터넷을 통한 정보를 활용해 특수한 작물을 특별한 방법으로 재배해 비싼 값으로 파는 농업경영인이라고 한다.

‘특용작물 억대 농부’라는 환상

이해는 한다. 언론에 늘 나오는 기사가 ‘고랭지 배추, 무 갈아엎었다는 얘기’, ‘양파가 넘쳐나서 길가에 야적해 두고 있는 얘기’ 등이니, 팔지도 못하고 돈도 못 버는 그런 농사를 왜 짓는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그런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은 한심스러울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더 생각해 보면 그 분들이 그렇게 농사를 지어서 도시에 있는 우리들 다 먹여 살렸고, 자식들 학교 보내고, 시집장가 다 보냈다. 60년대 새마을운동 시절이나 2010년대인 지금이나 우리 농업·농촌정책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책의 핵심은 농업경쟁력 강화이고 도시 서민들의 물가안정이 중심이다. 다시 말하면 싼 값의 농산물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한 것이고 대부분의 농가들은 매년 조금씩 퇴출되어 1980년대 28%에 달하던 농가인구가 2015년에는 5%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 5%의 농민들을 도시로 나가지 못한 패잔병으로 볼 것이냐, 온갖 풍파를 견뎌낸 베테랑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분들을 패잔병으로 바라보니까 그분들의 농사법, 그분들이 짓는 작목들은 모두 극복해야 할 잔재일 뿐이고, 늘 새로운 작목을 찾는 것이다. 일 덜하고 수익은 더 많은 특용작물 말이다. 그 사이 세계 각지의 온갖 작물들이 다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반면에 옆집 노인네를 60년 넘는 구조조정 과정에도 살아남은 전문가로 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이 10년 넘게 재배해 온 그 지역 농산물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두 해 실패해 내다 버리고, 파묻은 경우도 있겠지만 길게 보면 지역의 기후 풍토와 작부체계에 가장 잘 맞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그러니 옆집 어르신을 멘토로 삼고 그 지역 특산물을 재배하는 것이 지역에 적응하기도 좋거니와 처음 농사하는 사람이 망할 확률도 줄일 수 있다. 특용작물 억대농부라는 환상에 빠지지 말고 그 뒤에 숨어있는 시설 투자와 세월을 거쳐 쌓아온 노하우 등을 직시하여야 한다. 이게 우리학교에서 늘 강조하고 교육해 온 내용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시설 보조 받고, 폐원 보상 받고

아침저녁으로 지나다니는 길에 간판이 하나 서있다. 모 블루베리 농원의 입간판이다. 그런데 정작 간판 뒤 농원에는 율무가 심겨져 있다. 작년엔가 정부에서 시행한 폐원 보상금을 받고 블루베리를 뽑아낸 탓이다. 헌데 그 보다 2년 전 쯤에는 방조망과 설치기둥, 냉동냉장고 등을 지원받아 설치했었다. 작물을 기르고 농장을 확장하는 데도 보조금을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원을 하는 데도 보조금을 받았다는 말이다. 결국 열매 팔고 묘목 팔아 돈 벌고, 보조금 받아서 시설 확장하고, 뽑아 버리면서도 돈 벌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쉬운 농사가 어디에 있을까? 내가 만약 블루베리 농장을 운영했다면, 그래서 폐원 보조금을 받았다면 이제 블루베리 대체 작물로 무엇을 고를까? 우리 지역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애호박이나 오이 농사를 시작할까? 아마 나라면 또 다른 특용작물을 선택할 것이다. 그 작물 재배가 전망이 있을지 없을 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작물을 어떻게 홍보해서 지자체나 정부가 또 보조를 하게 하는가가 관심사일 뿐이다. 이러니 땀 흘려 묵묵히 일하는 선량한 농민들만 억울하다.

어떤 작물이 갑작스런 정부의 수입정책 등 외부적 요인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어 더 이상 재배가 힘들 경우 다른 작물을 통해 재기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주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순전히 자기 선택으로 국내에 희소한 작물을 재배하다가 과잉 생산 등으로 경쟁력을 잃은 부분까지 이렇게 지원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게다가 국민들의 먹을거리 정책에서나 농민들의 소득 면에서 꼭 필요한 품목도 아닌데, 묘목값이나 농자재, 시설 지원 등으로 진입장벽을 낮춰 너도 나도 뛰어들게 하고는 다시 보조금을 쏟아 부어 폐업을 유도하는 이런 방식은 정말 납득하기 힘들다.

한쪽선 뽑고, 한쪽선 다시 심고

하지만 폐업을 전제로 한 이런 지원은 그나마 낫다. 경북 상주 등 포도 주산지에서 칠레와의 FTA 대책으로 포도과원의 폐업을 유도하고 그에 보조금을 지원한 것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포도농가가 한 농가 있었다. 내가 이사 오기 전부터 포도농사를 짓고 있었으니 십여 년 넘게 포도농사를 지어온 농가였다. 그 분이 늘 아쉬워한 것이 포도농사를 짓는 농가가 서너 농가만 더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일교차가 심한 지역의 특성상 포도는 달고 맛있지만 한 농가밖에 되지 않으니 일정 생산량을 담보할 수 없고 그러니 도매시장에서 좋은 값을 받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포도 선별과 박스 제작에서 포장, 출하와 판매까지 농가에서 다 해야 하니 포도 주산지와 비교할 때 경쟁력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목반을 결성할 수 있는 정도의 농가만이라도 모였으면 했던 거다. 그런데 결국 성사되지 못했고 이런 이유로 포도과원 폐원 보조금이 나올 때 포도밭을 폐원하고 남은 포도나무를 지역 사람들에게 캐 가도록 한 게 겨우 2년여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강원도 일부 시군에서 작년부터 포도농사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포도묘목, 비가림 하우스시설 등을 50~70%까지 준다. 우리 지역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으로 보조금을 바라고 여기저기 포도시설이 들어섰다.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다. FTA 대책이라면 일개 시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포도공급을 줄여 수입포도의 공습에 대한 방안을 마련한 것일텐데 한쪽에서는 돈을 줘가면서 폐원을 유도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또 돈을 퍼주면서 포도농사를 유도한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경상도 포도는 남아도는데 강원도 포도는 문제가 없는건가? 나라 전체의 농업·농촌정책이 잘못된 것인지, 시군 단위 농업정책이 중앙과 엇박자를 내는 건지, 아니면 그런 것과 관계없이 시군 자체 예산으로 선심성 정책을 펼치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땀흘려 묵묵히 일한 농민만 피해

자, 그러면 이제 귀농교육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전처럼 지역 주민들을 선생으로, 지역주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농사를 주민들과 함께 짓는 것이 지역에 빨리 스며드는 길이며 실패하지 않는 길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 지역에서 가장 잇속이 빠른 사람, 관에 줄이 많은 사람을 따라 어떻게 하면 내 돈 들이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보조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을 지를 찾는 것이 최선이라고 해야 할까? 답은 뻔하다. 이제 또 어떤 특용작물이 보조금을 등에 업고 화려하게 나타났다 소리없이 사라질지 기대될 뿐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