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란 젠더&공동체 대표

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바쁜 일상이 시작되었다. 농부의 손끝이 더 바빠지는 계절이다. 농사는 적시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제때 손이 가지 못하면 수확만이 아니라 판매가격에도 영향이 크다. 그래서 지금 들판은 일손을 구하기 위해 아우성이다. 이러다 보면 품삯을 더 줘도 일손을 구하기 어렵다. 아마도 농민들에게는 추석 연휴동안 멀리서 찾아온 가족들이 일손을 도왔다면 그 보다 더한 선물은 없었을 것이다.

들판은 농사일만으로 요란한 것은 아니다. 열심히 정신없이 일하는 농민들 마음엔 벌써 얼마를 받아서 어디에 써야할 지 장부가 몇 장 넘어가고 있을 것이다. 농협 빚도 갚아야 하고, 밀린 농자재 값도 갚아야 하고, 연말이면 이자도 정산해야 하고...자식들 등록금 준비...열심히 계산하다 보면 한해 농사지어 내년을 살아야 하는데 남는게 거의 없어 한숨도 요란하다. 더욱 심란한 것은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걱정이다. 벌써부터 들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한미 FTA 발효 이후 현재 관세가 남은 농산물은 소고기와 닭고기, 사과 등 500여개 품목이다. 그나마 관세가 폐지된다면 도대체 살아남을 농산물이 뭐가 있을지 걱정이 크다.

한미FTA 재협상 소식에 더 심란

그동안 한미 FTA 최대의 수혜분야는 자동차 부품으로 여겨왔다. 수출이라는 깃발아래 농업은 항상 버려지는 카드였다. 식량주권이 심각한 사회적 화두가 되고 기상이변으로 인한 식량불안정이 증대할 때 조차도 여전히 농산물은 우리나라에서는 협상포기의 대상이었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22.6%로 떨어졌다. 식탁에 올라오는 수입농산물의 안전성은 고사하고 GMO 가공품들이 식탁을 덮고 있다. 농민들은 더 이상 지을 농사가 없어 아스팔트 농사를 추가로 짓기 시작한지 30년이 넘어가고 있다. 대책없는 농업정책에 농촌의 인구는 공동화되고 마을은 경로당으로 변해가고 있다. 추석에 고향을 찾아간 사람들에게 고향이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지 궁금하다.

식탁을 덮고 있는 GMO 가공품들

오죽했으면 기러기도 GMO 콩밭을 피해가고 짐바브웨 사람들이 굶어죽더라도 GMO농산물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했을까 가슴속에 새겨볼 일이다. 검역 검사제도로 인하여 표시제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무차별적으로 GMO 농산작물과 가공식품들이 도입되고 유통 소비되고 있어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 오레곤주의 GMO 밀이 국내에 수입되었음을 미 농무성으로부터 통보받고도 검출해 내지 못하는 식약처와 농림수산식품부가 한국의 현주소이다.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도 4대 사회악으로 규정한 ‘불량식품 근절’ 대상에는 GMO 제품이 포함되지 조차 않았었다.

농산물은 국민의 건강이고 목숨이다. 식량은 주권을 지키는 일이다. 그래서 농업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가치를 지닌 기간산업이다. 농업을 기간산업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다른 이익을 위해 양보할 카드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의 무역대상은 미국보다 대 중국 의존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한미 FTA에서 무엇을 지키고 양보할지 정부는 먼 미래를 바라보고 당장의 성장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선택을 냉정하게 진단해 봐야 할 것이다.

농민의 삶이 장되는 협상 기대

농사를 아무리 잘 지어도, 풍년이 되어도 농민들에게는 풍요로운 것이 아니라 빈곤과 가난이 재생산되는 적폐가 지속되고 있다. 그나마 정부가 공공비축미 72만톤을 비축하겠다는 발표는 한미 FTA 재협상과 ‘쌀값 폭락’으로 농업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는 농민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긴 하다. 이제 우리가 다시 기다리는 까치소식은 한미 FTA 재협상이다. 농업을 포기하지 않고 농민의 삶이 보장되는 협상이길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20년째 하락의 길을 걸었던 농업 내 적폐인 쌀값폭락이 청산될 수 있을지, 농산물 시장개방 확대로 30년째 포기되어온 농업의 생존이 가능할 수 있을지 뚝심 좋은 정부협상이 이루어지는 까치 소식을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