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난 재배 농가들은 생산 원가도 건지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사진은 황규순 홍성난농원 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난 생육 상황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예로부터 깊은 산중에서건 지저분한 잡초 속에서건 은은한 향기로 자신을 알려 사군자(매란국죽)로 칭송된 난. 타락한 주변을 경계하며 주위 사람을 감화시킬 수 있는 군자가 되고자 했던 선비들이 본보기로 삼고 선물로도 주고받았던 난초. 그러나 세월이 흘러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2017년 현재의 대한민국엔 반칙과 특권을 경계하는데 활용됐던 난이 뇌물로 인식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난 생산·유통 현장의 붕괴 속에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난 산업을 되살려야 한다는 간절한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난 생산 현장은 지금/충남 홍성
"정부 믿고 시설투자 했는데…한 순간에 수포"

저가의 중국·대만산 난립으로
심비디움 수출 어려워지자
호접란으로 바꾸고 '내수공략'

정부, 고품위 난 생산 유도에
시설 투자까지 단행 불구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물거품

현재 호접란 한포기 3000원
생산 원가 4000원에도 못미쳐
시설 놀릴 수 없어 농사 짓지만
불투명한 앞날에 더 불안


“정부는 고품위 생산을 하라고 유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품위로 재배하기 위해 시설투자까지 했는데 수출길에 이어 지난해부터는 내수까지 막혀 생산 원가도 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25년간 충남 홍성에서 난 재배를 하고 있는 홍성난농원의 황규순 대표에게 지난 1년은 그야말로 악몽의 날들이었다. 황 대표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호접란 한포기의 판매가가 3000원이 됐다. 생산원가가 4000원인데 계속해서 밑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적어도 평균 5000원은 나와야 원가는 건지는데 시설 투자까지 한 현장을 놀릴 수 없어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고 현실을 전했다.

심비디움 위주의 생산을 하던 황 대표는 5년 전 호접란으로 난 작목을 전환했다. 저가의 중국산 심비디움으로 인해 수출길이 막혔기 때문. 작목을 전환하며 품위를 높이기 위해 9900㎡ 부지에 최첨단으로 시설 개선도 도모했지만 청탁금지법 시행 앞에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황 대표는 “저가의 중국·대만산 꽃들에 의해 심비디움 수출이 힘들어졌다. 도저히 가격을 따라갈 수 없었다”며 “이에 호접란으로 작목을 전환하며 내수 시장을 공략했고, 고품위 물량을 생산해내기 위해 작목 전환에 맞춰 시설투자도 단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부에서 고품위 재배로 수입산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라 해놓고 청탁금지법을 시행해버렸다”며 “이에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저품위의 값싼 수입산 난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 대표가 우려하는 건 현재의 어려움이나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난 산업의 앞날도 불투명하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더욱더 불편하게 하고 있다.

황 대표는 “주변 농가들이 폐업하거나 작목을 전환하고 있다. 난뿐만 아니라 타 산업으로까지 여파가 이어질 수 있다”며 “특히 우려스러운 건 올해부터 농수산대 화훼과 학생들의 실습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젊은이들이 전공을 살리는데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조금 사업 역시 마찬가지. 난 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난 산업 종사자들이 직접 자조금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보고 있지만 이 비용 지출에도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는 농가들이 많다는 것이다.

황 대표는 “심비디움을 재배할 때 전국 심비디움 자조금 조성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난 산업을 살리기 위해선 자조금을 통해 다양한 홍보 사업을 진행하고, 행사도 해야 한다고 보지만 1~1.2% 되는 자조금조차 내지 못할 만큼 어려움에 처한 농가들이 많다”며 “무너진 산업을 성장시키지는 못할망정 걸음마는 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저품위 값싼 수입 난들만 활개…국내 시장 잠식 심각 

경매시장 거래실적 '뚝'
최근 5년새 가장 큰 폭 감소
수입 난 시장만 점점 커져

청탁금지법 시행 1년, 국내 난 산업 규모는 처참히 무너지고 있다. 모순적인 건 수입 난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청탁금지법 시행이 국내 난 산업은 무너트리고 있는 반면 수입 난 시장은 키우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내 최대 난 공영 도매시장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화훼공판장의 난류 경매실적을 보면 지난해 9월 청탁금지법 시행 전인 2016년 1~8월 경매 물량은 350만분, 거래 금액은 198억7600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인 2017년 1~8월 경매 물량은 지난해 대비 90% 수준인 313만분까지 줄어들었다. 거래 금액 하락 폭은 더 커 지난해보다 23.5% 감소한 152억400만원이 올 8월까지 거래됐다. 최근 5년간을 봐도 1~8월 기준 2013년엔 208억원의 거래가 이뤄진 것을 비롯해 2014년 205억원, 2015년 214억원, 2016년 199억원 등 올해보다 거래 규모가 줄어든 해는 없었다.

비단 수도권 시장만의 일도 아니다. 주요 난 경매시장의 거래실적이 이 기간 확연히 줄어들었다. 2016년 1~8월 대비, 2017년 1~8월에 농협부산화훼공판장의 난류 경매 실적은 거래 물량이 91%, 거래 금액은 74%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또 부산경남화훼농협은 거래 물량이 103% 늘었지만 금액은 되레 89% 선으로 줄어들었고, 한국화훼농협 공판장도 거래 물량은 106% 증가했지만 거래 금액은 86%대까지 하락했다. 광주원예농협 공판장 역시 지난해 대비 거래 물량은 89%, 거래 금액은 74%선까지 거래 규모가 감소했다.

반면 수입 난 시장은 규모가 커지고 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저품위의 값싼 난들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수입 난 거래 금액은 1~8월 기준 2014년엔 70만 9000달러, 2015년엔 74만2000달러, 2016년엔 81만2000달러였다. 그러던 것이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인 올 1~8월엔 90만7000달러까지 불어났다. 

난 시장의 한 관계자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국내는 물론 수입 난 규모까지 줄어들었다면 그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난 시장은 줄어들고 있는 반면 수입 난 시장은 늘어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청탁금지법이 얼마나 국내 난 산업을 무너트리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 난 산업 어떻게 해야 하나
"법상 허용범위 적극 홍보…소비심리 회복 급선무"

공동계산·공동선별 등
난 농가 조직화 서두르고
수출 신시장개척도 필요


청탁금지법 시행과 맞물려 난 산업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 속에 난 관련 전문가들은 크게 두 줄기에서 난 산업의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은 난 산업의 위기를 불러온 결정적인 요인인 청탁금지법에 대한 주문이다.

청탁금지법에서 화훼류를 제외해야 한다는 것은 난 산업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법에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의 난 소비는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기선 서울대 교수는 “애초에 검은 돈이 아닌 꽃을 뇌물로 인식하게 만든 법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 학생과 스승 간 꽃을 주고받는 것까지 법의 저촉을 받는다는 건 전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창피한 일”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김 교수는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건 허용되는 선임에도 소비가 안 이뤄지는 위축효과에 있다”며 “난 소비를 이렇게 위축시켰으면 적어도 정부에선 허용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홍보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강욱 한국난재배자협회 사무총장은 “어느 부분까지는 법이 허용된다고 하지만 한마디로 사족이 너무 많다. 이를 모두 없애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며 “난 자조금 조성 등 난 산업 종사자들이 해야 할 일도 있지만 적어도 산업이 일어설 수 있게는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또 다른 주문은 난을 비롯한 화훼산업의 체질 개선. 김기선 교수는 “무분별하게 거래되는 화훼 유통의 거래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화훼산업은 공동계산, 공동선별 등 조직화 부분에선 뒤쳐져 있는데 이에 대한 규모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수출 시장 개척에 대한 주문도 이어지고 있다.

박기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엔화 문제가 완화되면서 일본 시장의 수출길을 다시 타진해야 한다. 특히 난은 동양권 문화인데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도 소득이 늘고 있고 고소득자들도 많다”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신시장 개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선 난 소비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권영규 aT화훼사업센터 분화부장은 “난은 선물용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난도 절화류처럼 정기구독을 하면 좋겠다. 특히 정기구독 타깃을 연령대별로 잡아 노년층은 건강, 직장인과 청년층은 사람 관계, 젊은층은 이벤트와 꽃말 스토리 등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건강과 꽃말 등에서 연계성을 갖고 성장하고 있는 다육식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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