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현 대한한돈협회 정책기획부장(농학박사, 건국대 겸임교수)

지난 7월 제주 한림지역의 석산에서 가축분뇨가 유출돼 인근 13농가를 조사한 결과 2농가가 숨골에 가축분뇨를 무단 배출한 것으로 드러나 배출시설 허가취소 처분을 받았고, 제주 도민들은 축산농가가 제주의 깨끗한 수질을 오염시키고 있다며 양돈장의 퇴출을 요구하고 있다.
한돈협회와 제주양돈조합은 긴급 사과를 하고 주민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겠다고 나섰지만 성난 민심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고의건 고의가 아니건 몇 농가의 잘못으로 제주 전체농가가 위기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모든 축산농가, 가해자 매도 ‘부당’

또 한편에서는 축산악취로 인해 민원이 매년 폭증하자 거의 모든 지자체에서 앞 다투어 가축사육제한 조례를 만들어 더 이상 축사가 늘어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다. 대부분 지자체에서 축산업을 없애야 하는 골칫거리로 여기고 있고, 심지어 일부 지자체 선거에서는 축산업을 퇴출시키는 것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우기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번 살충제 계란사태로 국민들이 느끼는 국내 축산업에 대한 신뢰는 크게 떨어졌고, 대통령까지 직접 축산업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근래 축산업의 분위기는 마치 죄인이 된 듯하다. 국내 축산업이 모든 축산농가는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가해자인 것처럼 매도되고 있다. 실제 많은 축산농가들이 지역 주민들의 눈치를 보고, 지역행사가 있으면 의례적으로 협찬금이나 돼지를 요구받고 있다. 또한 시군 환경과는 범죄자를 보듯이 축산농가를 집중 단속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왜 국내 축산업이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축산농가들은 당당히 어깨를 펴고 큰소리 치면서 가축을 키울 수는 없는 것일까? 최근의 여러 사건들은 물론 일부 축산농가의 잘못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이번 사건들을 통해 국내 축산업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고 축산농가들도 노력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우리 축산업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긍정적인 역할이 너무 낮게 평가되고 있는 것 같다.

식량안보·농촌경제 활성화 기여

우리 축산업의 긍정적인 역할은 매우 많다. 첫째, 국민들에게 신선하고 품질좋은 단백질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중요한 산업이다. 축산 생산액이 농업 전체 생산액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돼지는 쌀의 생산액을 넘어섰다. 축산물은 이미 주식이며 축산업은 식량산업이다.

둘째, 식량안보이다. 2013년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기업인 스미스필드사가 중국에 매각되었다. 즉 미국의 주식인 돼지고기를 중국 기업이 사육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선진국들이 농업강국인 이유도 자국의 식량산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식량의 품질과 안전성, 생산과 공급을 우리가 관리하지 못하고 수입국에 의존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 농촌경제의 활성화이다. 대부분 농촌지역 총 생산액의 60% 이상이 축산업 생산액이다. 농가 수는 적지만 축산농가가 없다면 농촌지역이 황폐화된다는 뜻이다. 모 축산업이 많은 시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국회의원이 연설에서 “우리 지역에서 축산농가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 말은 거짓이 아니다.

넷째, 농촌지역의 고령화를 막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 축산과 공무원 연찬회에서 어느 시군 담당자가 “우리 지역에 3대가 함께 일을 하고 있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산업은 축산업밖에 없다”며 심각한 농촌 고령화문제의 해법으로써 축산업의 가치가 높다고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다섯째, 자원순환 농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다. 농업 강국들은 모두 축산업과 경종농업이 함께 발달되어 있다. 농지에서 생산된 사료가 가축의 먹이가 되고 가축분뇨가 다시 건초나 사료의 원료가 되어 자원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화학비료 사용이 거의 없고 가축분뇨가 부족할 경우에만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서도 유기물이 외부로부터 유입되지 않고 순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여섯째, 축산업과 유통, 가공산업, 관련 사업은 30조가 넘는 거대한 기반산업이다. 많은 일자리가 있고 수많은 가족들이 축산업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큰 산업분야의 하나로써 우리 축산업이 무너지면 수많은 관련 산업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나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민 사랑받게 안전 의무 다하길

그 외에도 국내 축산업의 긍정적인 역할은 많이 있겠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우리 축산업은 충분히 지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축산업이 국민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것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 축산농가들이 스스로 지켜야 할 사항들에 대한 의무를 잘 이행하고 냄새로 주위의 피해가 없도록 농장을 운영한다면 누구보다도 국민과 사회를 위해 많이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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