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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의 시선] 백남기 농민 1주기, 정부가 할 일은이상길 논설위원, 한국농어민경제연구소장
   
 

25일은 고 농민 백남기 선생의 1주기다. 그가 2015년 11월14일, 쌀값 폭락에 항의하고 농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져 서울대병원에서 317일 동안 투병하다 숨진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1주기 추모주간을 맞아 추념사진전, 국회토론회, 전국농민대회와 추모대회, 추모미사 등이 잇따랐다.

그가 쓰러진 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박근혜 정부의 권력기관들은 그의 죽음에 대해 사과는커녕 사인마저 조작했고, 경찰력으로 강제부검을 시도하기까지 했지만, 농민과 시민들이 이를 막아냈다. 2016년 11월5일 고인의 장례식은 박근혜 탄핵집회와 결합돼 촛불의 규모를 더욱 키웠고, 결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촛불혁명의 계기로 작용했다.

정부가 바뀌자 고인의 죽음과 관련된 과제들이 하나씩 풀려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사건을 직접 저지르진 않았지만, 고인의 1주기를 앞두고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19일 국무회의를 통해 공식 사과했다. 이 총리는 “정부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정부를 대표해 백남기 농민과 그 가족과 국민여러분께 정부의 과오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고인의 죽음은 국민의 생명과 생활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기본적 임무를 공권력이 배반한 사건이고, 다시는 이러한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공권력의 사용에 관한 제도와 문화를 쇄신하겠다는 것이다. 이 총리는 검찰과 경찰에게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엄정한 사법절차를 밟아 불법을 응징해 후일의 교훈으로 남기라고 지시했다.

정부의 사과는 고인이 경찰 물대포에 쓰러지고 676일만이다. 백남기 투쟁본부는 “너무도 당연한 사과를 듣기까지 2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며 이제라도 정부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공식 사과와 함께 사건해결을 위한 의지를 밝힌 것에 대해 환영했다. 다음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이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사과를 시작으로 정부는 당시 경찰 지휘부를 구성한 강신명 전 경찰청장,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등 7명을 신속히 수사해 책임자를 단죄하는 등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또 다른 농민의 비극이 재발되지 않으려면 국가 폭력과 인권의 문제만 아니라 농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농정대개혁이 필요하다. 사건 이후 백남기 투쟁본부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줄곧 서울대병원을 지키며 공권력과 싸워 온 손영준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은 “1주기를 계기로 그동안 국가폭력과 인권 문제 때문에 가려져 있었던 농업 문제가 재조명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 사건은 고인이 ‘쌀값 보장 공약을 지키라’ ‘밥쌀용 쌀 수입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것으로 부터 시작된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농정 대개혁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국민의 식량과 먹을거리를 책임질 의지와 정책이 없다면 또다시 수많은 백남기 농민이 아스팔트 농사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동안 수많은 농민들이 농산물 시장개방과 경쟁력 지상주의 농정으부터 생존권을 지키려다 희생돼 왔다. 2003년 이경해 열사가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대하면서 멕시코 칸쿤에서 스스로 목숨을 바친 것을 비롯해 2005년 쌀 재협상 국회 비준에 반대하다 경찰 폭력으로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숨졌다. 이 모든 비극은 정부가 농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다. 정부가 농민을 무시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니 이경해 열사가 죽음으로 문제를 알린 것이고, 백남기 선생도 대책 없는 정부로부터 농민 생존권을 지키려 거리로 나섰다가 경찰에게 희생된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은 농민의 요구를 반영한 농정대개혁에서 찾아야 한다. 농민들은 ‘국가농정의 기본틀을 바꾸겠다’고 공약한 문재인 정부가 지속가능한 농업, 농업의 가치에 대한 직불금 확대와 농가소득을 보장하는 방향의 청사진을 제시할 것을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농업계 패싱’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농업문제 해결에 미온적이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참여정부 때 한미 FTA와 쌀 재협상을 주도한 김현종씨를 통상교섭본부장에 다시 기용한데서 걱정은 더욱 짙어진다. 공약사항인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 관련 법안도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더 이상 관료와 농피아에게 농정을 맡길 게 아니라 농민을 위한 농정대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백남기 선생 1주기를 맞아 문재인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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