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전면적으로 도입됐던 농협의 사후정산제가 산지쌀값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에 따라 폐기수순을 밟게 됐다. 사진은 한 농협RPC에 적재된 원료곡

RPC 경영개선 목적 도입
산지 쌀값 형성에 ‘악영향’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
“수확기 쌀값지지 위해
확정가격으로 매입” 요청


지난해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지역 농협의 쌀 사후정산제가 사실상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2016년산 신곡 매입가격 결정 당시 제기됐던 농협의 원료곡(조곡) 매입가가 수급상황과는 별개로 소비지 유통업체 납품가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실제 2016년산 쌀 판매상황에서 확인된 데다 지난 5일 전남 보성에서 열린 ‘쌀 작황점검 및 농업인간담회’에서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선급금 지급 없이 확정 가격으로 신곡을 매입한 강원도 철원의 한 농협(동송농협)의 사례를 들며 “다른 농협RPC도 쌀값 지지를 위해 높은 확정가격으로 매입하는데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전폭적인 도입, 그러나=지난해 전국의 농협RPC가 확장적으로 도입한 사후정산제는 벼를 매입하는 농협이 매입 전에 매입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지급금을 지급하고 수확기가 끝나는 12월에 최종적으로 매입가격을 확정해 차액을 정산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의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과 유사한 제도로 지난 해 농식품부는 적자가 지속됐던 지역 농협RPC의 경영지원차원에서 ‘사후정산제’ 도입을 유도했었다. ‘매입가격 사후정산제 도입 여부’를 다음연도 RPC 경영평가에 반영하겠다는 강수까지 뒀었다.

이 같은 농식품부의 판단은 수확기 과잉생산물량에 대한 시장격리가 진행되면 10~12월 수확기 산지쌀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지난 해 수확기 산지쌀값은 농식품부의 기대를 여지없이 벗어나 올 7월 초까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기대와 반대로 간 이유=사후정산제 도입을 요구했던 농협RPC관계자들도 올 초까지만 해도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올 3월을 넘어서면서 농협계통의 2016년산 쌀 재고물량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오르지 않자 산지쌀값이 오르지 않는 이유가 다른 곳에 있다는 점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북부권과 중부권, 그리고 남부권 등 세 곳의 농협통합RPC 관계자들이 밝힌 이유에 따르면 재고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오르지 않은 것은 △소비지 유통업체가 이미 각 RPC들이 사들인 원료곡 매입가격을 알고 있었고, △시장격리를 했다고 하더라도 필요한 신곡량은 시장에 남아 있는데다 △특히 정부가 2016년산 신곡 매입과정에서 농협계통을 통해 전년보다 더 많은 물량의 원료곡을 매입하도록 했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과잉물량 전량에 대한 시장격리에도 불구하고 애초부터 가격과 물량에서 ‘소비지 유통업체와는 가격협상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 수확기 농협계통에서 사들인 물량이 2015년산보다 많았다는 점에서 2016년 수확기 때부터 산지쌀값이 오를 가능성은 적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수확기 쌀 수급대책에서 정부의 정책적 판단오류가 있었던 것이라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사후정산제 폐지 수순?=이에 따라 지난 해와는 달리 올 수확기 산지 농협이 사후정산제 도입을 전면화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협중앙회에서도 전면적인 사후정산제 적용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며, 지역농협이 생산자들과의 자율적인 관계 속에서 알아서 하도록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농식품부도 지난해 RPC경영평가에 반영했던 매입가격 ‘사후정산제 도입여부’를 RPC 평가기준에서 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농협이 결정한 매입가격이 산지 쌀값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있고, 사후정산제 도입이 농협RPC의 경영개선에는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지만 산지쌀값은 오히려 떨어뜨렸다는 의견도 있다”면서 “철원지역의 동송농협처럼 매입가격을 사전에 확정하고, 결정된 매입가격이 산지쌀값에 반영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진우 기자 leejw@ag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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