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연 이용선 연구팀 조사

▲ 청탁금지법 시행 1년을 앞 둔 가운데 주요 농축산물의 소비가 둔화되고 가격도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은 지난 달 9일 농업관련 28개단체가 청와대 분수광장 앞에서 청탁금지법 개정을 요구하는 장면.

 주요 농축산 품목 가격 '뚝'
 한우 가격 15.2% 하락
 사과·배도 12~16% 떨어져
 화원 매출은 6~11% 줄어


 청탁금지법 인식·평가
 47.3%가 "서민경제에 부정적"
 47.1% "규정 완화 필요" 답해 
 식사·선물 허용액 완화 의견


 농식품 소비트렌드 변화
 농식품 수요 뚜렷하게 축소
'가성비' 좌우되는 경향 강해
 차별화·맞춤형 공급 힘써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이 시행 된지 9월 28일 1년이 된다. 농민단체와 농축수산업계는 올 추석 이전 법 개정으로 농축산물 제외 주장을 제기해 왔으나 국민권익위원회가 업종별 매출 감소 추이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 필요성을 밝히면서 무산됐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용선 연구팀이 수행한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농식품 분야 영향과 정책 패러다임 전환’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한우와 과일(사과·배), 인삼 등 주요 농축산물의 공급량이 줄어들고 가격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청탁금지법의 파급영향이 큰 분야로 제기되는 농축산업과 외식업 산업의 법 시행 이후 나타난 영향에 대해 모니터링하고 산업계와 정부의 대응방향 및 과제를 도출하는 차원에서 진행됐다.

▲연구조사 방법=거시경제의 전반적인 동향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법 시행 후의 생산, 고용, 판매 관련 통계 지표를 시행 전의 변동 추세와 비교해 영향을 분석했다.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인한 농축산물 선물 수요의 감소 정도를 추정하기 위해 백화점과 대형마트 상위 7개사를 대상으로 최근 3년 명절 선물 세트 판매액 자료를 수집해 증감률을 비교·분석했다.

도매시장의 거래 자료를 바탕으로 추정된 역수요 모형의 계수치를 이용해 법 시행에 따른 농축산물 품목별 가격하락(수요 감소) 여파 등을 알아봤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음식 접대 규모의 변화를 추정하기 위해 카드사별 법인카드 사용실적을 외식업종별로 집계하고 상대적 영향을 비교 분석했다.

또한 청탁금지법 시행 경과 평가 및 개정에 대한 의견을 묻고 선물 접대에 대한 인식 및 소비형태의 변화를 위한 설문조사를 거쳤다. 조사대상은 공직자를 포함한 직장인과 공직자 가족을 포함한 소비자가구 800명이다. 청탁금지법 도입 시행에 대한 여론 동향은 온라인뉴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소셜미디어 빅데이터로 관심도, 연관어 분석, 긍정·부정 정서에 대한 요인 등을 분석했다.

▲농축산물 거래 및 수급 영향=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경제성장이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016년 4/4분기 2.3%, 2017년 1/4분기 2.7%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0.9%, 0.2% 포인트 하락했다.

또한 2017년 설 농축산수산식품 선물세트 판매액은 전년 설 대비 14.4% 감소했으며, 이 중에서 국내산 농축산물 거래액은 1242억원으로 전년 대비 25.8% 줄었다. 지난해 설 거래액이 전년 대비 14.1% 증가했던 추세와 대조적인 현상으로 청탁금지법 시행의 영향이 뚜렷이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주요 농축산 품목인 한우, 과일(사과·배), 화훼(분화), 인삼 등의 소비가 위축돼 직접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 시행 이후 한우 가격은 15.2% 하락했고, 사과와 배도 수요 감소로 12~16% 떨어졌다. 화훼는 난 등 분화류 중심으로 수요가 줄었으며, 화원 매출은 6~1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점 법인카드 사용액은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라 3~8% 포인트 감소했고, 한식 및 일식 음식점의 영향이 가장 큰 업종으로 분석됐다.

▲직장인 및 소비자 가구 인식=청탁금지법 시행에 대한 인식과 평가조사에서는 법 시행 이후 사회적 변화에 대체로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탁금지법 시행이 공정한 사회로 변화하고 부조리 관행을 개선하는데 기여했다고 응답한 비중은 각각 80.5%, 82.1%로 높게 나타났다.

선물이나 식사 접대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 직장인과 소비자 가구의 90% 내외는 상대의 호의를 얻거나 사회적 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수단으로 인식했다. 한편, 선물이나 접대의 의미로 ‘업무상 대가 기대’ 및 ‘마음을 나누는 미풍양속’에 대해 각각 70% 내외의 응답자가 긍정적으로 답변해 선물이나 식사 접대가 금액, 종류,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반면, 법 시행이 일부 서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인식이 47.3%를 차지해 법 시행의 부정적 측면이 부각됐다. 특히 직장인은 청탁금지법 시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법 규정 완화에 대해 47.1%가 필요하다고 응답해 규정 완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한 41.5% 보다 높았다. 청탁금지법 규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는 ‘경제적 피해’와 ‘법령의 명확성 부족에 따른 혼란’이라고 응답한 직장인이 86.3%, 가구의 89.8%를 차지했다. 청탁금지법 규정 개정 방향으로는 △식사·선물 허용 가액 한도 완화 △법 적용 대상 범위의 한정 △명절 시 농축수산물 예외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정책 패러다임 전환과 과제=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농식품 소비트렌드는 많은 변화를 겪으며 새로운 특징을 나타냈다. 첫째, 법 시행의 영향으로 선물과 식사접대 수요가 감소함에 따라 농식품 수요의 크기가 축소됐다. 둘째, 농식품 소비에서 선물이나 접대를 대신해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소비가 중요해짐에 따라 농식품 소비의 다각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일상적 소비는 농식품에 대한 편리성을 추구하고, 개인적 소비는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다. 셋째, 농식품 소비는 합리적 가격과 개인 취향에 적합한 품질, 즉 ‘가성비’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따라서 농식품 분야는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단기적인 소비 위축에 대응할 뿐 아니라 중장기적인 소비트렌드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정책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이 요구된다. 과거의 일률적인 고급화 지향에서 상품·서비스의 차별화와 맞춤형 공급 지향으로의 전환 필요성이 제시된 것이다.

농식품 소비 감소를 단기적으로 완화하기 위해서는 출산장려 등 사회적 어젠다와 연계해 농식품 구매(교환) 쿠폰 발행 등 거시경제적 수요 대책이나 간소화된 선물 또는 실속형 식사 메뉴 개발·보급 등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농식품 소비트렌드 변화에 근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역이나 상황에 적합한 상품·서비스의 차별화 △연령대, 성별, 가족구성에 따른 상품·서비스의 맞춤형 공급 △품목·분야별 소비·시장의 트렌드 분석 정보 제공 등 중장기 전략수립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품목분야별 중 정책과제를 보면 한우산업의 경우 중장기적으로 해외 수요와 국내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의 중요성을 감안해 수출 확대와 학교급식 지원, 지역축제 및 관광활성화 등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더불어 유통부문 효율성 측면에서 직매장 지원 및 인증, 부분육 거래 활성화 등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조사됐다.

과일의 경우 학교 급식·간식 사업 확대와 출하분산 및 균질한 과일 공급체계 구축이 중요하게 대두됐으며, 실속형 소포장 상품개발도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훼 분야는 소비활성화 프로그램과 판매채널 확대 등이 과제로 지적됐다. 인삼은 소비촉진 캠페인 및 마케팅 확대, 수출확대를 위한 지원 강화 등이 중요하게 제기됐다.

이동광 기자 leed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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