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밀 업계의 ‘재고 대란’ 사태가 뾰족한 방안 없이 몇 달째 표류해오면서 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천익출 우리밀농협 조합장은 현 사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추석 전에 내려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구곡 재고에 돈 묶인 데다
생산량 늘면서 사태 악화
수매대금 28억원 지급 못해
일부 주정용 처리 논의 중
정부, 밀 생산만 독려 말고 
유통·소비대책도 세워야


“하루속히 재고 처리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추석 전이라도 자금이 나오면 미지급한 수매 대금을 농가들에게 줄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추석을 한 달여 앞둔 이달 6일 만난 천익출 우리밀농협 조합장의 말엔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 우리밀농협이 올해 신곡을 수매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40억원. 이중 12억원은 수매 대금으로 일부 농가에 지급했지만, 나머지 28억원은 자금 확보가 어려워 농가에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구곡 재고에 돈이 묶여 있는데, 재고 물량이 소진되지 않은 데다 구곡을 담보로 한 수매자금 대출도 끝내 불발됐다. 올해 여름은 우리밀농협을 궁지로 몰아넣은 ‘잔인한 계절’이었다.

자금 흐름이 멈추게 된 이유는 구곡 물량의 소비가 업계의 예상보다 훨씬 저조해서다. 여기에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사태가 더 악화됐다. ‘생산자조직’인 우리밀농협의 처지가 난처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계약 물량은 수매를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계약 초과 물량까지 수매를 원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웠다. 이러다보니 당초 계약 물량인 6000톤보다 2000톤을 초과한 8000톤의 신곡을 추가로 떠안게 됐다. ‘없는 살림’에 여러모로 부담이 더 커졌다.

천익출 조합장은 “다른 업체들의 경우에는 농가와 계약한 물량만 수매하면 되지만, 생산자조직인 우리밀농협의 경우엔 초과 생산된 물량을 수매해달라는 조합원들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렵다. 힘든 처지라서 기존 해남 등에서 비조합원인 개인 농가들로부터 수매해 온 물량을 올해는 수매하지 못했다. 우리밀농협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생산량 증가는 기후 여건도 있지만, 최근 흐름은 정부의 우리밀 자급률 향상 정책 기조가 밀 재배 의향을 높게 유지하는 데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지자체가 정부의 정책 흐름에 동참하면서 우리밀 재배 농가에 생산장려비를 지급해주는 등 생산을 독려하고 있어 밀 재배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생산 부분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유통과 소비 분야의 지원을 확대하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조금씩 옮길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천 조합장의 바람처럼 추석 전에 이번 사태가 해결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우리밀 업계와 정부가 재고 물량의 일부를 보리 계약 물량 대신 주정용으로 처리하는 쪽으로 해결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주정 처리를 이행하는 쪽과 이를 요청하는 우리밀 업계 간의 의견이 첨예해 조율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양 측의 의견을 조율 또는 판가름할 수 있는 정부의 역량과 의지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천 조합장은 “추석이 다가오고 있고, 추석 이후에는 파종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면서 “이번 사태의 후폭풍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당장 생산 농가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고, 근본적으론 정기적으로 물량을 소진할 수 있는 공공비축이라든지 군 급식, 기타 소비 촉진 대책 등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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