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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없다박기윤 화천현장귀농학교 교장
   
 

학교 프로그램으로 매년 하는 게 닭을 키우는 거다. 10마리 정도의 병아리를 구해다 학교식당의 잔밥, 텃밭 부산물, 싸래기, 등겨 등을 모아 먹인다.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찌꺼기를 처리하는 데도 그만이고, 가끔 달걀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을 직접 키운다는 의미도 있다.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에 닭을 모두 잡는데 물론 학생들이 직접 처리한다. 재미있는 것은 성인 남자 10명이 닭 세 마리 정도로 만든 백숙을 일주일이 지나도 다 먹지를 못한다는 거다. 닭이 커서 그런 것도 아니다. 보통 재래닭을 구해서 방사해서 키우는 거니 크기야 고만고만하다. 문제는 이 닭을 내가 직접 잡았다는 데 있다. 병아리 때부터 내가 먹고 남긴 음식찌꺼기를 주고 기른 놈을 내가 잡고, 뜨거운 물에 튀겨 털을 뽑고, 배를 가르고, 내장을 처리했으니 목에 넘어가지가 않는다.

공산품 소비하듯 먹어온 음식들

그간 우리가 먹은 닭은 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아니라 이미 옷을 다 벗고, 속도 비우고, 처리를 한 치킨이었다. 공장에서 생산한 공산품을 먹듯이 그렇게 처리를 한 음식을 먹어왔다. 그러다가 치킨이 사실은 살아 움직이고 나를 따르거나 피해서 도망을 가던 닭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목에 넘어가지 않는 게 당연하다. 반려견만 문제가 아니라 내가 키운 닭도, 소도, 돼지도 다 마찬가지다. 내 생명을 유지해 오는 게 사실은 다른 생명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이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생명과 생명의 순환고리 생각을

동물만 그러한가? 귀농귀촌을 꿈꾸는 분들에게 내가 권하는 것은 도시에 있을 때 텃밭농사의 경험을 쌓으라는 거다. 도시텃밭 5평 정도를 분양받아 보면 쌈채소, 풋고추 등 해서 거의 10가지에서 15가지 작목을 심게 된다. 1000평 밭에 심으나 5평 밭에 심으나 제 때 씨 뿌리고, 솎아주고, 관리하고, 수확하는 과정은 마찬가지다. 본격적인 농사를 하기 전에 기본적인 작물의 생리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그간의 대량 소비하고, 버리고, 경쟁하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생산하고, 아끼고, 돌보는 삶의 방식으로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아파트 화장실에서 페트병에 모아 담아 온 식구들 오줌으로 거름을 대신하고,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벌레를 잡아가며 그렇게 애지중지 기른 작물들이 병에 걸리거나 누가 발로 밟고 가면 비록 식물이기는 하지만 속상하기 그지없다. 내가 심고 가꾸어 다시 그것을 내가 먹다보면 순환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책을 보지 않아도 체득하게 되고 음식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각성하게 된다.

요즈음 살충제 닭이나 조류인플루엔자 사태 등은 이러한 생명과 생명의 순환고리, 연결고리에 대한 단절과 무지에서 오는 현상으로 보인다. 닭을 기르다 보면 달걀이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공장에서 과자 만들 듯이 아무 때나 쑥쑥 나오는 게 달걀이 아니다. 처음 어린 닭이 초란을 낳을 때는 껍질이 말랑말랑 한 미성숙한 알을 낳다가 점점 제대로 된 달걀의 형태를 띠게 되고, 어쩌다 요리를 하려고 껍질을 깨트렸는데 노른자가 두 개인 쌍란 이라도 발견하면 신기할 따름이다. 며칠째 보이지 않던 암탉 한 마리가 수풀 속 깊숙한 곳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알을 품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모성의 위대함에 놀라게 되고, 어느 날 거기서 노란 병아리가 깨어나 어미를 따라 닭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면 생명의 숭고함 마저 느끼게 된다. 달걀은 이렇게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매서운 추위가 지나가고 따스한 봄이 되면 점점 알을 낳는 횟수가 많아지고 가을이 지나 겨울로 접어들면 알도 거의 낳지를 않는 것은 달걀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닭의 생명 순환을 위해 존재함을 알게 된다.

이러니 애시당초 우리가 이렇게 싸게 이렇게 매일 달걀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밥솥 한구석에 그릇에 담아 밥과 함께 쪄 내서 할아버지 밥상이나 손님 밥상에나 올라가던 그 귀한 달걀이 정상이다. 소풍갈 때나 기차 여행할 때나 먹어보던 찐 달걀이 정상이라는 말이다.
그 귀한 달걀을 싸게 아무 때나 먹으려고 하다 보니 층층이 쌓인 케이지에 움직이지도 못하게 넣어두고 자판기에서 물건 빼듯이 달걀만 빼먹는 시스템이 되었고, 닭고기를 그렇게 먹으려다 보니 먼지 자욱한 닭장에 제 몸 하나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먹고 살만 찌는 기형 닭을 단기간에 사육해 내는 방식이 되었고, 소고기를 그렇게 먹으려다 보니 1미터도 안 되는 끈으로 그 큰 소를 묶어서 먹고 싸는 일만 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런 근본적인 성찰이 없이 무항생제 사료가 어떻고, 방역이 어떻고 하는 안심 먹을거리의 문제로만 단순하게 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결코 해결책을 가져올 수 없다.

정당한 값 치르겠다는 인식 필요

축산물에 대한 친환경 인증은 대부분이 무항생제 인증이다. 사료만 항생제를 넣지 않은 것이지 사육 환경이 환경 친화적이거나 생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친환경이라는 용어를 줌으로써 이번 사태가 발생하게 된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성찰보다는 친환경농업 전반에 걸친 국민들의 불신과 인증 단체에 대한 마녀사냥이 이슈가 되어버렸다. 일반 국민들이 유기축산과 무항생제 인증에 대한 구별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도매금으로 다 넘어가 버렸다. 친환경인증 제도 자체의 문제를 관피아 운운하면서 인증단체의 부도덕성 문제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귀농지를 구하러 다니다 보면 싸고 좋은 땅은 없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싼 땅은 다 싼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이란 없다. 우리가 제대로 된 댓가를 치를 때 안심하고 좋은 것을 얻게 된다. 싸고 좋은 농산물은 있을 수 없다. 정당한 값은 치를 생각이 없으면서 안전하고 깨끗한 먹을거리를 찾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깨어있는 소비자가 좋은 생산자를 만들어 낸다.

작년 가을 처음으로 기르던 닭을 잡지 못하고 살려 두었다. 개가 풀려 동료들이 모조리 물려 죽는 와중에도 꿋꿋이 살아남은 닭이기도 하지만 10월 말에 학생들과 견학을 다녀오고 하느라 제때 달걀을 수거하지 못한 와중에 이놈이 알을 품게 된 것이다. 11월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먹지도 않고 알을 품고 있는 이 놈을 보면서 도저히 잡아먹을 수 없어 겨우내 학교를 왔다 갔다 하며 어미닭과 그 와중에 부화한 병아리 한 마리를 길렀다. 나는 이 닭을 먹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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