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농업을 무시한다는 ‘농업계 패싱’이란 말을 처음 쓴 이가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이다. 주변 강대국들이 한국을 빼고 외교안보를 논하는 ‘코리아 패싱’을 막으려고 정부가 백방으로 노력하고, 다른 분야는 개혁방안을 제시하면서, 농업문제만 외면해서야 되겠냐는 뜻이다. ‘농정의 틀을 바꾸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시절 농정공약과는 달리 국정운영 5개년계획으로 발표된 과제는 이전 정부의 생산주의, 경쟁력 지상주의 농정과 차별성을 찾아볼 수 없어서다.

경제성장 지상주의에
노동자·농민 일방 희생 불구
새정부내 파워엘리트들
농업·농촌문제 외면 심각

소득주도 성장에 농민 포함 
늦어도 내년 초까지
농정개혁 로드맵 수립
농업예산 손질·제도 개혁을

“왜 농업계 패싱이 벌어질까요? 적폐 청산 개혁과제, 예를 들면 국방개혁, 검찰개혁, 노동, 언론 같은 개혁과제는 대통령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파워엘리트’들 사이에 큰 그림과 방향에서 합의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농정은 파워엘리트 내에서 그런 합의가 없는거죠. 방향이 없으니 국정과제의 전면으로 나오지 않고, 당장 과제는 내야 하니까 ‘돌아오는 농촌’ 같은 하던 말, 좋은 말, 예전 내용이 담기는 거죠.” 박진도 이사장은 “농민, 시민사회는 정부가 바뀌면 농정이 뭔가 바뀔 것으로 기대했지만, 국정과제에 농정개혁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지배담론은 경제성장 지상주의고, GDP(국내총생산)가 성장하면 낙수효과로 모든 것이 좋아질 테니, 성장을 위해 다른 것은 희생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의 파워엘리트에게 이것이 익숙하다 보니, 농업 농촌 문제가 중심의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제성장 지상주의에 노동자 농민이 희생됐지만, 노동자들은 아직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고, 농민들은 쪼그라들었죠. 그러니까 희생돼온 농민들에 대한 보상의 원칙이나 농업의 다원적 가치 같은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거죠.” 박 교수는 “한국의 파워엘리트에게 지금 농업 농촌 문제가 중심의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계획이 이전 정부의 생산주의 농정과 차별성이 없다는 예로 스마트 팜, 4차 산업혁명이 다시 대두된 것을 들었다. “역대 정부가 수출을 위해 농업을 개방하고선, 농민들에게는 경쟁력을 키우면 살아갈 수 있다며 생산성 높이는데 집중한 결과 농촌 위기가 심화됐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뉴질랜드와 네덜란드 농업, 박근혜 정부의 수출농업이 그렇습니다. 농촌의 농민은 대다수가 소농, 고령농인데, 정책은 대농, 기업농 중심이었고, 대기업이 들어오면 농민들도 잘 살 수 있다는 식의 낙수효과를 강요했습니다. 농촌이 붕괴되니까 활력을 준다며 또 지역개발사업을 하는 식이고요. 스마트 팜이니 4차산업 혁명이니 하는 건 여전히 농업문제를 기업농 중심으로 생산성 높여서 해결하자는 방식입니다. 농공단지, 농촌관광, 도농교류, 6차산업도 건강한 농업의 기반이 있어야 하고, 농민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것을 전제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농업의 다원적 가치 중심으로 농정 패러다임을 전환, 농민도 국민도 행복한 농정이 돼야 한다며, 나영석 PD의 ‘삼시 세끼’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다. “삼시 세끼 프로그램이 무슨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나요? 그저 시골 가서 그곳에서 나는 농산물로 밥 해먹고 놀고 오는 내용인데, 그곳에 휴식이 있고 행복이 있잖아요. 여기에 우리가 잃어버린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 담겨 있습니다. 건강한 먹거리, 아름다운 경치, 환경, 공동체적인 더불어 사는 삶, 문화, 인정, 교육적 효과, 치유를 비롯한 사회농업의 요소가 다 들어 있잖아요. 이것이 실현되는 장이 농촌입니다.” 농민이 불행한 것은 경쟁만을 강요해온 농정 때문이므로 이제는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농정으로 농정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가난하지만, 국민이 행복한 나라, 부탄의 행복’을 연구해온 박 교수는 “농민이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고 단언한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에 농민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원래 노동자 중심의 ‘임금주도 성장’이죠. 여기에 중소기업, 자영업자까지 포함시킨건데, 그렇다면 농민의 소득을 포함시켜야죠. 국가적 과제인 일자리 창출에도 농업의 잠재력을 중시해야 합니다. 도시재생 못지 않게 농촌 재생도 중요합니다.”

농정의 틀만 제대로 바꾼다면, 한정된 재정으로도 얼마든지 농촌재생을 이룰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최소한 농업 예산의 국가 예산 내 비중을 유지하면서, 스위스나 EU(유럽연합)처럼 농업 예산 내 구조조정을 통해 직불금 비중을 높이고, 생산투입재, 시설지원, 개발사업 비중은 줄여가야 합니다.”

박 교수는 농정대개혁은 거의 모든 부처에 관련된 일이고, 대통령의 특단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만큼 대통령 직속의 특별기구를 조속히 설치할 것을 주문했다. “올해 내로 특별기구가 만들어져야 늦어도 내년 초 까지는 대선공약대로 ‘농정의 틀을 바꾸는’ 농정대개혁의 청사진과 로드맵을 그리고, 이에 따라 내년도 각 부처 농정 예산이 편성되며, 관련 제도 개혁이 추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진도 이사장은 한국의 경제학계에서 몇 안 되는 농정전문가로 독보적인 연구업적을 쌓으면서도 실천을 병행하는 지식인이다. 70년대 크리스찬 아카데미를 계기로 민주화운동과 농민운동, 농협 개혁운동에 중심역할을 해왔다. 정영일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농정연구센터에 이어 지역재단을 설립, 지역과 농업문제의 현장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충남연구원장을 역임했다. 2014년 35년간 재직한 충남대에서 정년을 3년이나 남기고 스스로 퇴임, 지역재단 일을 하고 있다. 19대 대선을 앞두고 농민, 소비자, 시민, 연구자 등 67개 단체와 ‘국민행복농정연대’를 결성, 새 정부의 농정 대전환을 촉구해왔다. <끝>

이상길 논설위원, 한국농어민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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