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란 젠더&공동체 대표

수확의 계절이다. 토요일 불현듯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추라도 얻어먹을 요량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피곤한 목소리가 묻어난다. 팔순이 다 된 연세에 날마다 고추 따고 밭일 하시느라 피곤해서 일 것이다. 목소리를 듣다가 왈칵~ “너무 일 많이 하시지 말고 쉬어가면서 하세요.” 괜스레 투정을 부리다 그냥 전화를 끊었다. 명색이 여성농업인 노동경감, 건강 어쩌구 정책방안 만든다고 큰소리만 쳤지 실제로 엄마의 아픈 허리를 위해 쭈그리 방석하나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어 한없이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관절·허리통증 달고 사는 여성들

여성농업인들의 노동경감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인 사실 농작업 편이장비이다. 여성농업인들의 대다수가 밭작물에 투여하는 노동량이 남성에 비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대부분 노동이 쭈그리거나 같은 동작, 불편한 동작을 오랫동안 반복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근골격계 질환인 관절, 허리통증을 수족처럼 함께 가지고 사는 것이 여성농업인들이다. 호미는 박물관에도 있지만 여전히 여성농업인들의 중요한 농기계이고 아직까지도 여성농업인들은 밭작업의 상당부분을 호미에 의존한다. 사실 한 자세로 쭈그리지 않고 일할 수만 있어도 허리통증은 상당부분 줄어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방석을 받치고 앉아서 하거나 허리를 펴고 할 수 있는 긴 호미, 긴 낫 같은 도구들을 사용한다면 여성농업인들의 건강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일까?

2015년 농촌진흥청의 농업공학연구소의 연구원은 농작업 편이장비에 대한 연구보고서 발표에서 농작업 편이장비들은 여성농업인의 건강, 특히 허리 등에 20% 정도 통증감소 효과가 있다고 연구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성친화형 농기계 지원사업의 대부분은 승용관리기, 모종이식기 등 농작업 기계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농작업 편이장비는 부분적인 지원에 그치고 있고 그나마 소모성 장비 지급이라 일몰제(폐지)를 시행해서 내년부터는 지원이 어렵다는 지자체도 생겨나고 있다. 농작업 안전관리나 농작업 편이장비는 여성농업인들의 노동경감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농작업 도구이다. 승용관리기, 승용트랙터, 동력이식기 보다 더 많이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규모 농작업 도구이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 여성친화형 농기계 보급과 연계되어야 할 것이다. 즉 여성친화형 농기계 보급에 여성친화 농작업 편이장비가 포함되어야 한다.

고령 농민들도 쓸 수 있게 홍보를

‘농사일을 왜 쪼그리고만 해야 할까? 다른 방법이 없을까?’ 사실 도구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은 귀농인들이다. 그들은 과거의 방식을 탈피해서 서서 밭을 메는 도구들, 낫·호미·움직이는 보조의자 등 건강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한다. 실제로 건강이 망가진 나이든 여성농업인들은 농작업 편이도구 들이 필요하지만 어디에서 파는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농작업 편이장비가 대부분 소량이고 업체도 영세해 겨우 인터넷을 통해서 홍보하는 경우나 팜플릿을 비치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니 정보에 취약한 고령 여성농업인들은 무슨 장비가 있는지 어디서 파는지 알 길이 요원하다. 농업기술센터에서는 고령여성농업인들의 노동경감,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이러한 농작업 편이장비들을 우선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여성농업인들의 노동 특성은 집약적인 작업을 한다는 점이다. 작업이 표준화되어 있지않고 비연속적으로 이뤄지며 특정기간 동안, 특정 자세가 집중된다는 점이다. 즉 신체의 특정부위에 무리와 손상을 주는 작업여건과 환경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이를 감안한 노동절감 정책이 필요하다.

여성의 노동특성 반영 개선해야

여성친화형이란 말에 주목해 보자. 여성친화형은 크기나 작동편의가 아니라 사용자의 신체와 농작업 특성에 맞게 개발단계에서부터 여성들의 요구나 조건을 반영해야 한다. 예를들면 농작업 도구 중 긴 낫이나 호미 자루는 대부분 나무를 사용한다. 그러나 나무는 무겁기 때문에 알미늄 재질을 사용하는 것이 가볍고 어깨에 무리가 적게 간다. 동일한 작업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간단한 농작업 편이도구들은 대부분 무거운 나무 자루가 달려있다. 농작업 편이장비부터 여성친화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올 추석에는 추석 효도상품으로 부모님 농사일에 도움이 되는 농작업 편이장비 하나쯤 선물해드릴 것을 권한다. 아무리 농사일 하시지 말라고 해도 목숨처럼 지켜온 논밭을 비워두지 않을 엄마를 위해 나도 올 추석선물로 앉은뱅이 작업 의자를 선물해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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