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농업계에서는 ‘농업계 패싱’이란 유행어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다른 분야 대선공약은직접 잘 챙기면서 유독 농정공약만큼은 국정운영계획에서 후퇴시키거나 빼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놓고 얼마 전 농민시민사회가 모인 자리에서 김영재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은 “재벌하고 맥주타임을 가졌다면, 농민들하고도 막걸리타임을 해야 한다”고 제안해 공감을 얻었다. 김 회장에게 그 말의 의미를 들어봤다.

전문가·관료 입김 휘둘려
현장 농정개혁 요구 외면
대통령 직속 농정기구 만들고
경쟁력 위주 농정적폐 청산
국가적 푸드플랜 수립을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하나는 이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대로 농정에 책임지는 액션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소통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답게 농민들과도 소통하라는 겁니다.” 지난 7월 발표된 농업분야 국정운영계획이 그간 현장에서 모아낸 의견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이전 정부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서 대통령이 농민과 직접 소통해야 한다고 느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몰락한 정부는 공통적으로 국민과 소통하지 않은 게 특징입니다. 현장 여론이나 정부 내 결정 과정 등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지금쯤 대통령이 농정대개혁에 대한 메시지를 갖고 나서지 않는다면, 국민과의 소통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습니다.” 김 회장은 “농업 회생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당장 농정 대개혁을 시작해야 한다”며 “공약한 대로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농업특별위원회를 설치, 농업현장의 절실한 요구를 담아내는 협치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간에선 이번 농업분야 국정운영계획이 대통령의 핵심공약마저 폐기시키고, 지엽말단적인 과거 정책들로 채워진 데는 그동안 농민을 외면하고 산업과 자본,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온 적폐세력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갖고 있다. 김 회장은 “경쟁과 효율만 강조해온 국가철학과 기조를 근본부터 바꾸겠다고 한 약속에 기대를 걸었지만, 과거 정부와 차별성 없이 나온 것은 기존 농정을 유지하려는 세력들이 대통령의 공약과 농정개혁 의지마저 왜곡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농식품부 인사, 농정의 상황을 봤을 때, 그나마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장관 자문기구인 농정개혁위원회를 통해 개혁의지를 표시하지 않았다면 모든 기대를 접을 수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농업의 문제는 국민 모두의 문제이며,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먹거리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선언이 필요하고, 이는 대통령 직속의 민관협치 농정기구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대 정부가 고수해 온 성장과 경쟁력농정은 농촌을 사람이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들었고, 식량자급률은 바닥이요, 국민들에겐 안전한 먹거리가 아니라 수입농산물에게 밥상을 내주었습니다. 여기엔 자본을 위해 농민과 국민을 희생시키고, 현장 요구에 귀를 막았던 일부 전문가와 관료세력의 적폐가 있었습니다.” 그간 농업을 망쳐온 성장과 경쟁의 농정, 자본과 관료의 적폐를 청산하고, 농민과 국민 모두 행복한 농정으로 전환하는 의지를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살충제 달걀 파동을 통해 국민의 먹거리 문제는 국가적인 차원으로 풀어야 하고, 환경친화적인 농업의 방향으로 농정 목표를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살충제 달걀 사태는 생산성만을 중시한 농정의 결과물입니다. 가축전염병이나 이번 살충제 파동 같은 사태의 반복으로 발생하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오히려 축산의 기본전략을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일에 사용하고, 이로 인한 가격 상승은 직불제로 보전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합니다.” 그는 “우리는 이미 가축전염병 사태를 통해 비극적인 경험을 하고 나서도 단순히 저렴한 축산물을 생산하고 수입하는 방식, 문제가 터지면 농민의 문제로 치부하는 우를 반복해왔다”며 “안전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국민에게 공급하는 국가 차원의 기본계획(푸드플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길 논설위원·한국농어민경제연구소장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