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말에 접어들며 서안동농협 공판장에선 건고추 경매가 한창이다. 생산량 감소와 재고물량 인기 속에 출하기를 맞은 농가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하다.

건고추의 한해 농사 결실을 맺는 수확·출하기가 도래한 8월 말 현재, 지난해보다 시세도 훌쩍 올라섰지만 수확 물량을 내보내는 농가들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작황 부진으로 생산량이 급감했고, 햇물량보다 재고량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등 상황이 녹록치 못하기 때문이다. 건고추 경매가 본격화된 8월 22일 찾은 고추 최대 주산지 경북 안동의 서안동농협 건고추 경매장에선 이런 우울한 풍경이 연출됐다.


시세 올랐지만 생산비도 상승…“작년보다 소득 줄 듯” 
햇물량 가격 오른 탓에 재고량 수요 늘어 ‘농가 울상’ 
“출하량 더 늘어나면 하락세 불보듯” 대책 마련 주문도


“지난해 수확량의 절반 정도밖에 생산되지 못할 것 같아요.”

이달 들어 시작된 햇건고추 경매는 8월 넷째 주 들면서 경매가 본격화되고 있다. 매일(평일) 오전 11시에 건고추 경매가 진행되는 서안동농협 건고추 경매장에선 생산량 급감의 목소리가 무엇보다 크게 들렸다. 관측기관에서도 올해 건고추 생산량이 재배면적과 단수 감소로 평년 대비 23~27%, 전년 대비 12~16% 줄어들 것으로 예고했지만 경매장에서 느끼는 생산량 감소의 체감도는 이보다 더 심각했다.

영주에서 수확한 건고추를 가지고 올 첫 경매에 참여했다는 김완식(65) 씨는 “건고추 시세가 지난해보다 상승했다고 하지만 지난해 워낙 시세가 떨어져 있어서 그리 높은 시세는 아니다. 특히 수확을 앞두고 잦은 비로 인한 병충해 발생으로 생산량이 지난해 절반 정도도 되지 않은 상황이다”고 전했다.

청송에서 온 이무환(76) 씨도 “몇 십 년 고추 농사를 지었어도 올해처럼 작황이 안 좋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어려웠다. 전년 대비 60~70%나 생산될까 싶다”며 “반면에 농자재값 등 생산비는 훨씬 많이 들어가 시세가 너무나도 낮았던 지난해보다 농가 소득은 더 줄어들 것 같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생산 현장의 악조건 속에 건고추 시장 역시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크게 줄면서 햇물량 시세가 올라가자 재고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경매장에서 만난 한 중도매인은 “워낙 최근 몇 해 동안 국내산 시세가 가라앉아 있어 햇물량 도매가가 6000~7000원(600g)만 나와도 상인들은 움츠러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특히 수입산이 아닌 국내산 건고추를 구매하는 상인들도 올해엔 재고물량을 선호하고 있다. 시중에 1~2년 전 물량은 물론 12~13년산까지 풀리고 있어 햇물량이 나오는 시기에 재고물량 선호도가 높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햇물량보다 재고량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이 농가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유통 전문가들의 전언. 조연수 서안동농협 경매사는 “출하되는 양이 작년 대비 60~70% 수준이라 가격은 작년 이맘때보다 높게 형성돼 있어 햇초보다 묵은 초를 찾는 곳이 많이 보인다”며 “이런 현상은 농가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더 우려스러운 건 싼 물량이 없어지면 중국산으로 돌아가는 곳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가격이 전년 대비 비교적 높게 형성돼 있지만 햇물량 선호도가 낮아 앞으로의 가격 전망도 그리 밝지 못하다. 조 경매사는 “이제부터라도 비가 많이 오지 않고 맑은 날이 이어져 출하량이 조금이라도 늘어난다면 가격은 떨어질 수 있다. 가정이나 식당에서 좋은 물량을 써야 가격이 오르는데 중하품(재고 등) 사용이 많아지면 오를 수 없기 때문”이라며 “한해 건고추 시세를 좌우하는 게 9월인 만큼 9월 시세가 유지될 수 있도록 농가에서부터 기관, 유통업계, 소비자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에 따르면 2017년산 건고추 생산량은 평년 대비 23~27%, 전년 대비 12~16%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나 수확기 가격은 전년보다 높지만 평년보다는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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