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 한국농어민경제연구소장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농피아(농식품부 퇴직 공무원+마피아)가 뭇매를 맞고 있다.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인증업무를 담당하다 퇴직한 뒤 민간업체에 취업한 '농피아'와 농관원 간 유착이 부실인증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와 책임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기실 농피아의 문제는 한국 농업에 깊숙이 뿌리 내린 고질적인 적폐다. 모든 공무원 출신 재취업자가 문제는 아니다. 농민에게 필요한 사람도 많다. 여기서는 현직이든 퇴직자이든, 농업을 통해 이익을 취하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농정과 조직과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존재들을 농피아라 말하고자 한다. 지금은 농피아란 용어가 대두됐지만, 농업과 농민을 기반으로 먹고 사는 기관단체 사람들을 ‘농족’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농피아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의 산하기관 외에 한국농어촌공사, 농수산물유통공사 등 공기업뿐 아니라 농협을 비롯한 각종 농업관련 기관단체, 협회 그리고 관련 기업과 그 관계망 속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국회도 예외는 아니다. 채용 기수와 학연, 지연, 업무, 이해관계를 매개로 농정을 장악하고, 그 구조를 확대 재생산한다. 그들이 살아가는 토양은 농민과 농업이고, 자양분은 농업예산과 사업이다. 정책과 조직에 관여하고 집행하면서 월급을 받고, 수수료와 이윤을 수취한다. 

생산주의, 경쟁력 제일주의 농정은 이들이 살아가는데 호조건을 제공한다. 농자재 지원, 농업금융, 농촌지역개발, 토목공사, 현대화시설, R&D(기술개발), 식품산업 육성, 농식품 인증, 컨설팅, 기업자본 유치, 규제완화가 이들의 서식지다. 이런 분야들의 특징은 모두 농업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거액의 농업예산이 흘러들고 제도적 혜택이 있다는 점이다. 광범위한 먹이사슬과 그들만의 생태계에서 사실 친환경 인증업계 농피아는 구멍가게 수준일 뿐이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개혁요구가 있었고, 농민 중심으로 조직과 사업을 개편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구축한 강고한 이너서클(inner circle)의 벽을 넘지 못했다. 농정개혁, 농협개혁 등 허다한 개혁위원회의 과제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논의 과정부터 왜곡됐고, 부실한 결과물마저 행정과 국회를 거치며 블랙홀처럼 기존 상태로 돌아갔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직불제 중심으로 농정을 대전환하고, 농협을 농민 조합원의 농협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는 20년 그 이전부터 제기됐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농피아 논란은 오래된 일이지만, 최근 대표적인 케이스는 동부그룹 동부팜한농이 첨단유리온실을 통해 농업생산에 진출하려다 농민들의 반발로 2013년 사업을 포기한 사건을 꼽을 수 있다. 당시 대기업에 농민들의 몫으로 써야 할 거액의 FTA기금을 지원한 정부에 비난여론이 일었고, 농식품부 출신 고위 관료가 동부한농의 임원으로 포진한 것으로 알려져 의혹을 낳았다. 이어 이 회사를 인수한 LG 그룹이 LG CNS를 통해 ‘새만금 스마트 바이오파크’ 사업으로 농업에 진출하려다 여론 악화로 사업을 접었는데,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공무원들은 이 사업 추진을 위해 농민과 언론을 설득하러 다녔다. 뿐인가. 새만금개발청, 국무조정실과 다수의 보수언론까지 이들 편에 선 바 있다. 지금도 대기업들은 스마트팜, 식물공장, ICT 융복합이란 명목으로 농업을 넘실대는데, 이런 환경을 돕는 것은 바로 관료들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타성적으로 진행되던 비료 등 농자재(투입재) 지원사업과 시설현대화사업은 관련자재 생산업체와 시공업체에 이익을 주는 대신 특정 농산물의 생산을 늘려 가격하락과 농가부채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지적이다. 간척사업과 농업생산기반정비 사업, 4대강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 농촌개발, 농촌정비사업은 한국농어촌공사와 토목자본의 좋은 먹거리란 비판이 나온다. 6차산업, 농촌개발, HACCP 등 사업 분야마다 시설업체, 건설토목업자가 꼬이고, 농민을 돕는다고 컨설팅업체와 관련 협회들이 빨대를 꽂는다. 농민들은 불만이지만, 전문성이란 명분하에 농림조직과 사업 각 분야에 농피아들이 활개를 친다.  

경쟁과 효율만을 강조해온 국가 농정의 기본틀부터 바꾸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국정운영계획에서 축소, 폐기되고 지난 정부의 농정을 답습하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나온 배경에 대해 농업계는 의문이 많다. 만일 이것이 기존 농정을 고수하려는 관료와 농피아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청산해야 할 적폐다. 농정대개혁은 이런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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