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당 유통 이익률 상승 반면 대형·중소 납품업체는 매출액 되레 감소

딸기 주산지인 ‘논산 딸기’가 아닌 대형 유통업체 로고가 달린 ‘A사 딸기’, 이는 요즘 소비지 시장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이다. PB(Private Brand·자체 브랜드)상품이 농산물 시장까지 파고들고 있는 가운데 PB상품이 유통업체 배만 불리고 납품업체엔 오히려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진국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난 16일 ‘PB상품 전성시대, 성장의 과실은 누구에게로 갔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PB상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부의 대응을 촉구했다.

농산물도 지역이나 생산자 대신 유통업체명 기재
산지 거래교섭력 약화 초래…가격지지 악재 우려


▲PB상품 전성시대, 성장의 과실은 누구에게=보고서에 따르면 PB상품의 성장으로 기업형 유통업체의 이익은 증가했으나 납품업체의 이익은 변함이 없거나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까지 나타났다. 유통점포의 PB상품 매출 비중이 1%p 상승하면 해당 점포의 매출액이 평균 2230만원 증가하는 경향이 도출됐고, 이에 따른 점포당 유통 이익률도 270만~900만원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이에 따른 낙수효과는 없었다. 기업형 유통업체에 물량을 납품하는 업체 1000개사를 면접 설문조사한 결과 대형·중소업체 모두 매출액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자사 브랜드가 거의 없어 유일하게 상승한 소상공인도 매출액은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을 향상시키지는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납품업체 브랜드 잠식 효과와 더불어 유통 마진율이 높게 책정된 것이 주요인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이익 배분 구조는 PB 개발 방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서에선 추정했다. PB제품의 개발 방법을 유형별로 보면 유통업체의 권유로 자사상품을 PB상품으로 전환해 납품하거나, 독자 개발한 제품을 PB로 납품하는 사례가 다수를 차지했던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제언도 제시됐다. 무엇보다 PB업계의 공정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조사와 감시 활동이 강화돼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거래 실태조사를 수행할 시 PB 제조업체를 상대로 경영정보 제공 요구 금지 조항(대규모유통업법 시행령 제11조)의 위반 여부를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PB상품은 유통기업이 상품의 기획·생산 과정에 개입하므로 납품업체 경영정보에 접근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불공정 거래 행위를 강요받은 바 있다고 응답한 납품업체의 대다수가 요구사항을 전적으로 또는 일부 수용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거래 중단 등의 보복행위로부터 오는 경제적 손실을 우려해 해당 행위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공정위 직권조사를 강화하고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에 따른 처벌 수위를 높여 불공정거래 행위의 재발 가능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제안했다.

▲PB상품, 산지 입지 및 농산물 소비에 도움 안 돼=이번 KDI의 보고서는 구체적인 부류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농산물 시장의 경우에도 PB상품은 확연히 늘어나고 있다. 지역이나 생산자, 법인명을 기재하는 대신 유통업체의 로고나 업체명이 바로 들어가는 사례가 많아진 것이다. 실제 소비지시장에선 A사 딸기, B사 복숭아, C사 상추 등이 실린 농산물 상품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 상품은 자사 상품 브랜드와 함께 원산지 표시도 국내산으로만 기재하기에 소비자들은 어느 지역에서 생산됐는지까지 알기는 요원하다.

이런 현상은 산지가 유통업체와의 거래교섭력을 약화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유통업체가 굳이 해당 산지의 물량을 확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논산 딸기가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자주 목격되고 또 각인되면 유통업체는 논산 딸기 산지와 거래를 이어갈 수밖에 없고, 이는 산지가 유통업체와의 거래교섭력에서도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PB상품은 장기적으로 농산물 소비와 가격지지에도 악재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현재 제철 과채인 수박을 예로 들면 전라·경상권부터 시작해 충청권을 지나 강원권까지 순차적으로 생산이 이뤄지고, 각 시기별 제철 수박이 품위가 좋아 소비력 향상과 가격 지지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8월 말로 넘어가는 현재는 강원 고랭지 수박이 제철 수박이다. 그러나 PB 상품이 주를 이루면 이런 제철 농산물 대우와 인지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결국 농산물 소비력에 좋지 못하게 작용할 개연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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