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석 농촌진흥청 농업연구사

1990년대부터 소매점의 체인화·규모화가 진전됐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산지의 조직적 규모화도 진행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도매시장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매시장이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도매시장이 여전히 사회적인 합리성을 가지고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그러한 사회적인 합리성은 유통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으로, 영원한 것은 아니다.

도매시장 새로운 가치 활용 초점

우리와 같이 도매시장 유통이 농산물 유통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일본이 도매시장 제도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2016년 일본 정부가 확정한 농업인의 소득향상을 위한 ‘농업 경쟁력 강화 프로그램’이 직접적 계기이다. 이는 농업인이 자유로운 경영환경을 조성하고 농업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특히 도매시장 제도의 개혁방향은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일본 농림수산성의 설명회 등과 같은 내용을 보면 개략적인 방향을 짐작 할 수는 있다. 식료산업국은 현행 도매시장의 규제를 ①거래방법 ②제3자 판매·직접 집하금지 ③상물일치원칙 ④차별적 취급과 수탁거부금지 ⑤대불(代拂)제도로 정리하고 있다. 또한 ①~③은 폐지 또는 개편 대상이 되고, ④와 ⑤는 현재의 규제를 유지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차별적 취급과 수탁거부를 금지’하는 규제를 유지하려는 것은 농산물 유통에 있어서 도매시장이라는 특별한 시스템을 인정하고 시설정비 등에 필요한 공적 지원을 유지하는 나름대로 근거가 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도매시장의 공공성은 ‘필요한 모두에게 열려있는 거래 시스템’이라는 점과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을 형성하는 거래시스템’이라는 두 가지다. 이러한 두 가지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가 ‘수탁거부 금지원칙’과 ‘차별적 취급 금지원칙’이다. 이 두 가지 원칙을 통해 소량을 출하하는 출하자라도 공평하게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으며, 소량을 구매하는 영세 상인이라도 자격만 갖추면 공평하게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다. 결국 다 바꾼다고 하더라고 도매시장의 공공성만큼은 지켜가겠다는 일본 정부의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대불제도로 생산자 출하 안정화

일본 정부가 거래방법 관련 규제를 폐지 또는 개편 대상으로 하는 것은, 자유거래 신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규제를 없애 자유거래가 늘어나면 농가소득도 늘어날 것이라는 장밋빛 개혁을 기대했다면 아마도 법 폐지를 선택했을 것이다. 이번 제도개선의 목적은 생산자와 소매점 모두가 유리한 공급망 관리(SCM)가 가능하도록 도매시장 종사자의 조정자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판단된다. 특히 도매시장의 이용자 관점에서 도매시장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에 장애가 되는 규제를 폐지하는 것이 바로 개혁의 방향인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 공평한 분배를 목적으로 법에서 규정해 왔던 도매법인과 중도매인 등의 정의와 이에 근거한 규제를 변화된 이용자 관점에서 다시 정의하고 규제하자는 것이 이번 제도개선의 방향인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이번 제도개선으로 도매법인과 중도매인의 새로운 기능분화가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수탁거부 금지와 차별적 취급 금지, 그리고 대불제도가 생산자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대불제도의 존재는 조기에 대금회수가 가능하고 생산자의 안정적인 출하량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실제로 일반 기업과 비교할 경우 도매시장만큼 대금결제가 빠른 곳은 없다. 일본의 대불제도는 중도매인의 외상거래에 따른 대금회수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대불조직(정산조직)은 중도매인 등의 상호보증을 통해 도매시장법인에게 안정적인 대금지급을 담보한다. 따라서 도매시장법인은 외상 미수금을 우려해 중도매인 등에게 판매량을 제한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중도매인의 구매량을 제한하지 않기 때문에 수요량의 증가로 이어지고, 이것이 생산자에게 유리한 가격을 형성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통합정산조직을 통한 출하주에 대한 대금결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일본의 대불제도 운영방식을 고려할 경우 통합정산기구를 통해 출하주에 대한 대금결제까지 추진하면 중도매인의 구매량이 제약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현재 평상시 가락시장 중도매인의 구매한도(담보) 대비 도매시장법인의 외상판매 비율은 1.5배 정도이다. 

제3자 정산기구 운영 간섭 말아야

통합정산기구가 중도매인의 구매한도를 기계적으로 관리하고 출하주에 대한 대금지급까지 담당하게 될 경우, 최소한 현재 중도매인 평상시 구매량의 1/3이 제약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매시장법인이 중도매인의 신용도 등을 고려해 외상판매를 확대할 여지가 원천적으로 차단되기 때문이다. 도매시장법인의 출하주에 대한 대금결제 기능이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정산기구 문제는 도매시장법인이 중도매인에게 외상판매 한 판매대금을 어떤 방식으로 회수할 것이냐의 문제이며, 그 과정에서 도매시장법인 간 경쟁과 중도매인 간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민간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결정을 유도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3자가 나서서 정산기구의 운영에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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