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천 (상지대학교 교수, 한국유기농업학회장)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는 끼리끼리와 서로서로가 있다. 우리끼리 잘 해보자, 우리서로 힘써보자. 둘 다 좋은 말이다. 끼리끼리는 부사로 ‘여럿이 무리를 지어 제각기 따로’ 라는 뜻이다. 그리고 서로서로는 ‘짝을 이루거나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라는 명사를 강조할 때 사용한다. 개인에 대비해서 사람 사이의 관계 맺음, 공동체, 집단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현실 상황에 적용해 보면 그 쓰임새가 다를 때가 많다. 즉, 끼리끼리는 우리들만의 이익(담합), 서로서로는 더불어 이익(상부상조)이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이 배타적이며 이기적인가, 아니면 협조적이며 이타적인가 하는 차이인 것 같다. 마치 외줄타기의 균형을 요구하는 말이기도 하다.

배타·이기적인가 협조·이타적인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기심이 분업의 원천이며 경제활동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그는 그에 앞서 <도덕감정론>의 서두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해도 그 본성에는 연민과 동정의 원리가 존재 한다’고 말했다. 즉, 이타심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기심이 탐욕으로 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인간에게 이기심만 있다면 역사가 어떻게 지금처럼 진화해 왔겠는가? 이기심이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이윤극대화 가정의 전제인 것은 맞다. 그런데 이것을 모든 영역에 다 적용할 수는 없다. 현실의 농업, 농촌, 농민 영역이 그 예이다. 농업은 한 때 정부가 보호를 하다가 시장개방이후 경쟁시장에 내 맡겨져 있다. 심지어 그 대안이었던 생협 조차도 ‘협동조합 간 협동’은커녕 마치 편의점들처럼 경쟁하고 있는 처지가 돼 있다.

사례를 더 들어보면 첫째, 끼리끼리가 탐욕적인 집단이기주의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끼리끼리가 적절할 때는 공동체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치면 그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것이 혈연, 학연, 지연과 연계돼 일어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회에는 피해를 주고, 뒤에 반드시 후유증을 남긴다. 이런 현상은 정권이 바뀌거나 지자체장 또는 단체장이 바뀔 때 더욱 기승을 부린다. 당파 또는 계파이익, 우리사람 끼리만 소통하고 상대 사람을 배제하는 것, 알음알음으로 이권 결탁, 우리만 옳고 너희는 틀렸다와 같은 아집, 정부사업비 나눠먹기, 연구비, 사업비, 자리, 회사경영권의 끼리끼리 대물림 등이 사례이다. 밀실에서 일어나는 끼리끼리 생태계가 맹목적 집단이기주의로 나타나 지역공동체의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 다양성을 해치고 사회발전의 공진화를 저해한다.

유기적 순환, 서로를 위한 유기농업

둘째, 서로서로라는 말이 잘 적용된 사례를 살펴보자. 개인들의 이타적 행위가 곧 전체의 이익이 되는 상황이다. 현재 농촌문제는 고령화와 공동화로 마을공동체와 나아가 지역공동체의 존속문제가 현안이다. 그래서 농촌마을 환경 지킴이, 마을주민들 간의 생활공동체, 마을공동사업의 원만한 추진, 귀농인과의 유대 등 서로서로의 협동이 절실하다. 농업생산도 그렇다. 농업은 경제논리에 따라 단작화가 된지 오래됐다. 그럼 유기농업은 좀 다른가? 유기농업은 유기적인 농업-생태계-인간과 사회 간의 유기적인 순환 속에서 이뤄지는 서로서로를 위한 ‘유기적 농업’이다. 화학자재 대신 유기농자재를 사용하는 유기질비료농업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유럽의 한 호수에 있는 섬을 꽃섬 생태공원으로 가꿔 운영하는 기업이 있다. 이들은 영리기업이지만 호수의 오염으로 녹조가 발생하는 것을 알고 ‘생태적 경영체계(EMAS)’를 도입했다. 일종의 영구농업(퍼머컬처)모델이다. 호수주변의 농민-꽃섬 생태학습장-생태관광기업-공원 내 유기농업-재생에너지-정부-관광객-상인 등 각 이해관계자들이 서로서로 상수원 환경보전을 매개로 상생하는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고 있다. 유기농업이 상수원을 보전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이들은 실천을 통해 보여주면서 환경보전과 영리추구를 동시에 하고 있다. 유기농업에 쓸 수 없는 불량한 축분퇴비와 화학비료 과잉 시비, 생활하수, 도로와 자동차 운행 등 여러 요인이 강과 하천의 수질오염원이 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유기농업이 수질오염의 주범이라고 단정하는 오류를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새 정부 농정에서는 농업환경관리를 하고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지키겠다고 한다. 나의 이익보다는 환경과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는 많은 유기농업인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이타적 행동과 진정성을 보듬어주고 더 이상 주눅 들지 않도록 응원해 줘야 한다. 돈도 많이 못 벌면서 유기농업을 포기 못하는 그들에게 국민들이 마음의 훈장을 안겨줘야 한다. 오로지 가격과 소득, 우리 가족의 건강만 생각하는 가치기준을 바꿔야 한다.

서로서로 문화, 농정철학의 출발지

요즘 우리 농민이 생산한 쌀을 가축사료용으로 더 쓰자는 의견이 있다. 정서적인 문제를 떠난듯하다. 쌀 생산을 줄여야 하는데 쌀 변동직불금 때문에 농민들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으니 그것을 없애고 콩 등 타 작물 전환을 유도하자고 한다. 쌀 문제는 특정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 학부생들의 경제원론 사례탐구시간처럼 미시적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다. 고령화와 단작화, 농기계 설비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지해 농사짓고 있는 현실에서 누가 그 콩밭을 맬 것인가?

이제 식량자급 목표와 지속가능한 국민식량 작부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쌀, 밀, 콩 등 식량작물 자급률 목표치라도 우선 정하자. 축산물도 마찬가지인데, 축산사료용 곡물도 식량의 일부이니 그 수급에 대한 자급체계도 정하자. 현재의 쌀 과잉문제는 수입밀과 수입사료로 생산한 축산물과 깊은 연관이 있다. 쌀만의 문제가 아닌 고차방정식 문제인 것이다. 가장 쉽고 근본적인 대책은 쌀, 밀, 보리 등 식량작물의 유기재배면적을 점진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나아가 순환식 휴경 및 윤작을 통해 토양비옥도와 생태계를 보전하고, 녹비작물 및 유기조사료작물의 재배로 친환경축산을 장려하는 경축순환농업 확대 등 총체적 순환농업으로 식량문제를 풀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서 농정비전을 제시했다. 농업·농촌·농민의 권익대신에 자본과 산업과 소비자 권익만 생각하는 끼리끼리 정책이 안 되도록 배려해 주기 바란다. 농민들이 어울려 붕괴직전의 마을공동체를 복원·지속시키며, 젊은이가 돌아오고, 이웃의 생활을 보듬어 주는 삶의 연대와 같은 서로서로 문화를 장려해야 한다. 농정철학의 출발지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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