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 (단국대학교)

 

‘녹색혁명’. 우리나라에서 60대 이상이면 대부분 기억하는 소위 ‘보릿고개’를 벗어나게 해 준 우리 농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물론, 1940년대부터 미국 주도의 세계적인 식량증산을 위한 연구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통일벼’의 육종 및 각종 농업기술이 개발되면서 국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당시 세계적인 농업기술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우리의 현실에 적합한 기술로 변화시키는 연구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세계적인 변화를 반영하는 농업기술 연구는 지금도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새 정부 들어서 제기되고 있는 농정개혁에 대한 다양한 요구를 농업R&D 분야에서는 수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즉, 그 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던 농업현장의 애로기술 연구와 세계적으로 새롭게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환경보전을 위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환경보전 위한 연구는 지지부진

농업생산성 증대 중심의 기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6년도 우리나라 농식품 R&D 관련 예산은 9532억 원으로 전체 R&D 예산의 5%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농림축산식품부가 약 21%, 산림청이 11%를 차지하고 있으며 농진청이 66%를 차지하고 있다. 농식품부의 R&D 과제는 연구분야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나라 농업R&D 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은 농진청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농진청이 과거 녹색혁명의 영광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R&D 발전 추세를 반영하는 연구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농진청이 추진하고 있는 연구개발사업의 선정과정과 사업내용을 보면 기존의 추진방식과 연구범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농식품 R&D 중점투자 분야도 여전히 농식품 생산 중심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농업의 다양한 가치와 역할을 지원하고자 하는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2017년 농식품 R&D 중점투자 분야를 보면, 새로운 소재 및 생산기술, 스마트 팜 등 첨단 기술, 수출 및 산업화 기술, 질병대응 기술, 기능성 식품 기술, 종자 산업 육성 기술 등이다. 농진청에서 중점추진하고 있는 5가지 융복합 핵심추진과제도 쌀 과잉해소, 스마트 팜, 축산업산업화, 밭농업 기계화, 곤충자원 활용 등이다. 말하자면, 기존의 식량생산을 위한 연구기술개발에 여전히 중점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도 세계적으로 다양한 연구가 시행되고 있는 농업생산에 의한 환경피해를 저감하는 농법에 대한 연구나 농업의 환경피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 등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농업 가치·역할 지원 연구 아쉬워

친환경농업에 대한 연구도 생산성 중심이다. 
혹자는 친환경농업 연구를 통해서 환경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농업 R&D에서 수행하고 있는 친환경·유기농업 연구도 여전히 생산성 중심이다. 친환경농업 분야에서도 우리나라 농업 연구자들은 환경보전 보다도 생산성 증대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토양과 수질 보존을 연구하는 과제의 주요 내용이 토양의 양분균형 관리 기술 개발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토양과 수질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토양과 물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들이고 서식지라는 것이 세계적인 연구를 통해서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토양과 수질 보존을 양분관리 측면에서 보겠다고 하는 것은 세계적인 기술변화 추세를 외면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사업 선정과정에 농민의 참여가 부족하다. 
또한 우리 농업 R&D 연구사업의 선정 과정은 대부분 수요조사와 공모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농민들의 애로 사항을 반영하거나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말하자면, 기술수요 조사, 과제선정 평가, 연구과제 공모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대부분 연구자들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의 전공과 관심을 중심으로 과제가 선정되고 농민들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과제가 선정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초기 선정과정에서 농민들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과정이 미흡했기 때문에, 산출된 기술을 농민들에게 이전하는 일이 무척 어려운 일이 돼 버리는 것이다. 좀 더 목적의식적으로, 개발된 기술을 사용할 농민들을 우선적으로 마련해 놓고 이들을 타겟으로 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타당한 연구개발 방식이 아닐까 한다. 실제 선진국에서 농업기술연구기관을 민영화하고 연구개발을 추진하는데 적용하는 방식이다.  

관행적 연구 방식·분야 벗어나야

농업 기술 연구자들의 혁신이 필요하다. 
녹색혁명으로 얻어진 찬란한 영광에 도취돼서 기존의 관행적인 연구 방식과 분야에 만족하면서 변화된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 분야로의 전환을 지체한다면, 우리 농업기술 R&D의 미래는 밝지만은 아닐 것이다. 연구자들이 자신의 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한 연구분야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다양한 분야의 융복합적인 연구와 실행을 요구하는 현대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쪼록 우리 농업기술 연구자들의 혁신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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