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일을 원예작물이라 부른다. 사실 과일은 인류에게 식량작물이었다. 인류가 진화를 거듭하던 시절 호모 속(屬) 인류는 과일을 채집하며 주식으로 먹고 살았다. 과거 인류의 큰 앞니는 과일을 베어 먹기에 유리하게 진화했고 몸집도 다부지게 발달했다. 이렇게 주식으로 과일을 먹던 근육질의 인류는 농업이라는 굴레를 쓰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며 변화했다. 왜 그랬을까?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많은 일을 하지만 그 대가로 훨씬 열악한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농업혁명은 밀의 관점(이기적 유전자)에서 생각해 보면 인류가 밀을 길들인(작물화한) 것이 아니라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고 한다. 이스라엘 출신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교수가 펴낸 ‘사피엔스’에서는 ‘농업혁명은 인류에 대한 최대의 사기’라고까지 말한다.

현재 과일의 소비트렌드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우선은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기호식품이 된 과일에 대한 소비부담이 증가하면서 과일소비가 정체돼 있다. 또 인구노령화, 1인 가구 증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로 인해 과일의 취급 및 섭취가 간편한 중·소과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고, 다양한 형태의 과일과 건강기능성이 높은 품목을 좋아하는 추세다.

특히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새로운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흥미롭게도 ‘인트레스트(interest : 관심, 흥미)’라는 단어는 ‘다르다’라는 의미의 라틴어가 어원이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보지 못한 다른 것(새로운 것)을 바로 알아보고 구별하는 능력은 인류의 생존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과일공급량에서 수입과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의하면 열대과일(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수입량은 16년 전 대비 2.3배에 다다르고 있다. 바나나·오렌지의 수입비중은 감소추세인 반면 망고, 체리, 자몽과 같이 독특하고 이색적인 과종이 늘어나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는 이런 소비트렌드 변화에 맞춰 새로운 작목(품종)을 육성해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자두와 살구의 맛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플럼코트(하모니)’는 원예특작과학원에서 육성한 대표적인 과일이다. 살구의 달콤한 맛과 자두의 향기로움을 동시에 맛볼 수 있으며 항산화물질함량이 풍부하다. 수입개방과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등 어려운 농업환경 속에서 소비패턴 변화를 파악하고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고 있다. 또한 중·소과, 소포장, 간편식 수요가 증가하면서 원예특작과학원에서 개발한 껍질째 먹을 수 있는 배 ‘조이스킨’, 맛이 뛰어난 중간 크기의 사과 ‘피크닉’과 한입에 먹을 수 있는 미니사과 ‘루비에스’, 화이트와인용 포도 ‘청수’ 등은 변화하는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미래 기후변화에 대비해 여름철 높은 온도에도 색깔이 잘 드는 품종으로 포도 ‘흑보석’, 사과 ‘홍로’를 육성해 농업인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미래의 소비 변화에 대응한 과일육종은 앞으로 더욱 진화해 지적인 설계가 가능한 스마트육종이 활발해질 것이다. 또한 좀 더 발전시켜 나갈 부분으로 ‘최소 가공식품’, ‘신선편이 식품’을 위한 가공효율을 높일 수 있는 품종을 육성하는 것이다.

우리 몸은 기억하고 있다. 인류가 진화하더라도 과일이 우리 몸에 이롭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과일을 주식으로 먹던 시절의 유전자가 우리 몸속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인명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과수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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