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만 해도 사실상 마트에서 수입 바나나 10개를 고르면 10개 모두 필리핀산이었다. 이에 필리핀 산지 작황이 좋지 못하면 국내 바나나 수입량도 현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바나나뿐만 아니라 미국산 오렌지와 체리, 칠레산 포도 등 국내에 들어오는 주요 수입과일이 대부분 주 수입산지 상황에 따라 물량이 요동쳤다. 그러나 근래 들어 이런 현상이 바뀌고 있다. 최근 필리핀 산지 작황이 좋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바나나가 수입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고 실제 그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수입 산지가 넓어지면서 판매 기간도 길어져 국내 과일·과채 소비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바나나는, 필리핀 이어 에콰도르 등 중남미산까지 수입 급증
미국산 중심이었던 체리도 칠레, 우즈베키스탄산까지 다양화
오렌지는 스페인 등 서유럽산 반입, 인도산 망고까지 들어와  


▲수입 주산지 무너졌는데 수입량은 증가=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2년 1~5월 필리핀에서 국내로 수입된 바나나 물량은 16만5759톤(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 국내 전체 바나나 수입량은 16만7750톤이었다. ‘수입 바나나=필리핀 바나나’라는 공식을 입힐 수 있었다.

다시 5년 후로 돌아와 2017년 1~5월 필리핀에서 들어온 바나나 수입량은 14만8885톤으로 5년 전보다 감소했다. 올 초 태풍 등 기상 악화로 인해 필리핀 산지가 크게 훼손돼 국내 수입물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 근래 들어 필리핀 바나나 산지에선 이런 현상이 빈번해 최근 몇 년간 필리핀 바나나 수입량은 2012년 정점을 찍은 이래 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5월 국내 전체 수입 바나나 물량은 19만6825톤이나 되며 이 기간 역대 최대 수입량을 기록했다. 시장에선 올해 처음으로 국내 바나나 수입 총량이 40만톤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도 하다.

바나나 수입량이 증가 추세에 있는 것은 필리핀을 넘어 에콰도르 등 중남미 지역에서의 바나나 수입량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 1~5월 기준 에콰도르에서 들어온 바나나 수입량은 2012년 124톤, 2013년 324톤, 2015년 1329톤, 2016년 6721톤, 2017년 2만7124톤 등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 산지 상황이 좋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산 오렌지도 마찬가지다. 2012년 1~5월 15만6964톤이 들어왔던 미국산 오렌지는 올 1~5월엔 작황 악화로 12만5613톤이 수입되는 데 그쳤다. 바나나가 에콰도르 등 중남미 지역으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면 오렌지 시장은 스페인 등 서유럽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스페인산 오렌지의 수입량은 2012년 1~5월 210톤에서 올 1~5월엔 2175톤까지 증가했다.

이외 미국산이 주였던 수입 체리는 지난해 칠레산 체리가 처음 반입된 데 이어 최근엔 우즈베키스탄에서까지 들어오고 있고, 망고 역시 기존 필리핀에서 올해엔 인도까지 수입 시장이 다변화됐다. 본격적인 수입 과일 증가의 신호탄 격이었던 수입 포도도 칠레산을 넘어 미국, 페루산 등으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기상 이변 현상으로 주요 수입 과일 산지가 무너지는 경우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지만 국내 수입 과일 물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가격대 낮아지고 각각 생산기간 달라 국내 판매기간 길어져
수입산 시장 확대 불가피…국산 과일·과채 입지 위축 불보듯
검역 강화 등 필수…국산 과일 공공급식 확대·소비대책 시급


▲수입 과일 가격 떨어지고 판매 기간은 길어져=수입과일 산지가 넓어지면서 자연스레 이들 품목의 가격대는 떨어지고 있다. aT 농산물유통정보(kamis.or.kr)에 따르면 20일 현재 수입 바나나 13kg 상품 평균 도매가격은 2만7000원으로 지난해의 3만1600원, 평년의 2만9430원보다 낮은 시세가 유지되고 있다. 바나나 외에도 오렌지, 망고, 수입 포도 등 올 상반기 동안 주요 수입 과일류의 가격대는 낮게 형성됐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또한 수입 과일 산지가 넓어지고 있다는 것은 판매기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과도 이어진다. 체리를 예로 들면 미국, 뉴질랜드, 칠레, 우즈베키스탄 등 지역이 전혀 달라 생산시기가 판이하고 이는 수입 기간도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락시장의 표현찬 서울청과 경매부장은 “에콰도르 등 중남미산 바나나의 경우 필리핀산보다 맛이 좋아 바나나 소비량은 크게 늘고, 가격대는 저렴해졌다. 이에 수입 바나나 소비층은 늘어났고, 바나나 수입은 올해 사상 최대인 40만톤 이상이 수입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제는 주산지인 필리핀 바나나가 무너져도 타 바나나가 들어와 바나나 시장을 더 늘려났듯 수입과일 주산지가 무너져도 수입과일 시장은 더 커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현실 속엔 국내산 과일 시장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어 우려와 더불어 대책 마련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과일업계 관계자는 “동시다발적인 수입 과일 영역의 확장은 가뜩이나 위축되고 있는 국내산 과일의 설자리를 더 줄어들게 만들 것”이라며 “단순히 시장 개방 논리에만 맡겨두었다가는 국내 과일의 비수확기는 물론 주 수확 시기까지 수입 과일이 시장에서 활개를 칠 수 있다. 수입 과일에 대한 검역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고, 국내 과일 위주의 공공급식 확대 등 국내 과일 소비, 홍보책도 좀 더 활발히 전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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