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모 심어놔도 물 없어 염해 입고 말라 죽어
“올 벼 농사는 포기” 황무지로 방치된 논 위로 탄식만

▲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농촌에선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바닥이 부지기수다. 모내기를 마쳤더라도 염분농도가 높아지면서 모가 누렇게 타들어 죽어가고 있다. 사진은 화성시 서신면 용두리의 한 논이다. 정권구 서신면 용두리 이장, 안성철 서신농협 조합장, 김이수 사곳리 이장, 윤주헌 한농연화성시연합회장(사진 왼쪽부터)이 갈라진 논 위에 있다.

“물이 있어야 모를 심지, 일주일 전에 가까스로 심은 모도 물이 없어 염해까지 입어 다 말라 비틀어 죽고… 올해 벼농사는 포기했어요.”

20일 찾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문호리 들녘. 예년 같으면 물이 가득한 논에 생육이 왕성한 모를 바라봐야 할 시기지만 먼지만 풀풀 날리는 논만 하염없이 쳐다보며 탄식하는 농민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남양만 간척지인 이곳은 20여농가가 약 50ha(15만평)의 친환경 쌀을 재배하는 곡창지대다. 그러나 올해는 극심한 가뭄으로 쌀 수확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모가 심겨진 논보다 황무지로 방치된 논이 더 많고,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바닥도 부지기수다. 모내기를 마친 논도 염분농도까지 높아지면서 모가 누렇게 타들어 죽어가고 있다.

이미 바닥을 드러낸 인근 농수로 주변에는 말라비틀어진 수많은 양수호스가 어지럽게 널려있어 농민들이 물과의 사투를 벌였던 흔적이 역력했다.

농민 유명현(58)씨는 “논 2만평(6만6000㎡) 가운데 5000평(1만6500㎡)은 모를 심지 못해 아예 포기했고, 이앙을 마친 다른 논의 모도 죽어가고 있다”며 “저수지와 수로 물도 마르고 관정을 파도 짠물이 나와 앞으로 일주일 내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리지 않으면 올 논농사는 망치게 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허인식(71) 서호농장 수리계 회장은 “심겨진 모가 죽어 두 번이나 모를 낸 집들도 많은데 이제는 속수무책”이라며 “물이 없다보니 주민들이 고민 끝에 회의를 거쳐 70%의 논은 포기하고 30%라도 살리기 위해 합심하고 있는 눈물겨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마도면 백곡·금당리 일대 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역시 간척지인 이곳도 물이 부족한데다 염해까지 확산되면서 어린모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라죽은 것이다.

지난달에 심은 모가 죽어 다시 모를 내기 위해 예비못자리를 살피고 있던 백곡리 양진기(56) 이장은 “다시 심는다 해도 조만간 비가 안 오면 모가 뿌리를 내리지 못해 죽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이곳에서 약 2km 떨어진 남양호와 하수종말처리장 인근 하천에는 물이 넘쳐 나는데 정작 물이 시급한 이곳 농지에는 물구할 길이 없어 억장이 무너진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양 이장은 “정부와 지자체는 가뭄 탓만 하지 말고, 물이 있는 하천과 하수종말처리장, 습지 등의 남아도는 물을 그냥 버릴게 아니라 상습 가뭄지역 농지에 물이 닿을 수 있도록 관로개설, 양수시설 등의 항구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산면 용포리에서 논농사를 짓고 있는 이주양(52) 송산면 농업경영인회장 역시 지속된 가뭄으로 올해 5만㎡(1만5000평)의 대규모 논을 놀려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관정도 파 보았지만 물이 나오지 않아, 비싼 돈을 들여 살수차도 동원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물이 없다보니 다른 대체작물 재배도 어렵다고 한다.

이 회장은 “하천·저수지 물도 다 말라 물을 끌어올 곳도 없고 이미 모를 심은 논도 어떻게 관리할 방안이 없다”며 “그저 하늘만 바라보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 게 없다”고 푸념했다.

특히 이 회장은 “모를 안 심으면 농작물재해보험과 변동직불금도 받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맨땅에 모를 심을 수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할 따름”이라고 절규했다.

바닷가와 인접한 서신면 용두리·사곳리 일대 농경지는 더 처참했다. 이곳 260여ha 논에서의 쌀 수확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경지정리 된 농지에 수리시설도 잘 갖춰졌지만 지난해 가뭄을 대비해 준설한 대형 농수로 바닥은 메말라 있고, 모를 심지 못한 논도 곳곳에 많이 방치돼 있다.

심겨진 어린모도 바닥이 갈라진 논바닥에서 누렇게 말라죽고, 그나마 물이 조금 차있는 논의 모들도 염도가 높아지면서 죽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용두리의 한 농민은 심은 모를 살리기 위해 자부담 420만원을 들여 살수차로 9900㎡(3000평) 논에 물을 공급했다고 한다.

논 9900㎡에서 750만원의 소득이 나오는데 물 값만 반 이상을 투입한 것이다. 농기계 이용료와 인건비, 자재비 등을 제외하면 적자가 뻔한데 모를 살려보겠다는 절실함 때문이라고 한다.

정권구(57) 용두리 이장은 “매년 가뭄 피해는 있었지만 올해처럼 재앙 같은 가뭄은 처음”이라며 “모를 다시 심으려 해도 육묘도 없거니와 물이 없어 엄두도 못낸다. 정상적이면 모가 한창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시기인데 설령 심겨진 모가 살아난다 해도 수확량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이수(53) 사곳리 이장은 “현재까지 모를 심지 못한 논은 포기한 상태다. 문제는 5일내에 100mm 이상의 비가 오지 않으면 심겨진 논의 모들은 모두 고사할 것”이라고 하소연 했다.

논 3000평에 심은 모가 다 말라죽은 피해를 입은 서신농협 안성철 조합장은 “나보다 상당수 농민들이 더 큰 피해를 입어 농협에서 9000만원을 들여 관정개발과 양수기·호스 등을 지원했지만 역부족”이라며 “이곳을 가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농가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가뭄 현장을 동행한 윤주헌 한농연화성시연합회장은 “기상변화로 가뭄은 매년 반복되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땜질식 처방에 머물고 있다”며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더라도 남아돌고 버려지는 물을 농경지까지 공급할 수 있는 관계수로 개설이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화성=이장희 기자 leej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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