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박사’다. 고스톱 칠 때, 피만 먹어서도 아니고, 혈액을 연구해서도 아니다. 내가 ‘피박사’인 이유는 논과 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피가 어떤 조건에서 자라고 어떻게 하면 죽는지를 연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했던 연구처럼, 피와 같은 잡초를 연구하는 학문이 있는데, 이를 잡초학(雜草學, Weed Science)이라고 한다. 실제로 작물을 재배하는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분야이기에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잡초학의 연구대상은 잡초다. 잡초는 보통 ‘원하지 않는 풀’로 정의하며, 내가 기르고 있지 않은 모든 식물을 통칭한다. 따라서 잡초학에서 다루는 대상식물은 농경지에 자라고 있는 모든 식물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외래 잡초 166종을 포함해 619종의 식물이 경작지에서 잡초로 자라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이 모든 식물이 연구대상이나 주로 작물에 피해를 많이 주는 잡초, 예를 들어 논에서는 피, 가막사리, 올방개, 올챙이고랭이 등이고, 밭에서는 바랭이, 깨풀, 쇠뜨기, 쇠비름, 명아주 등을 연구한다.

잡초학은 크게 잡초의 생리생태를 연구하는 분야와 잡초방제를 연구하는 분야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잡초학의 목적은 잡초의 생리생태를 정확히 알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수단을 이용하여 방제하는 것에 있다.

잡초의 생리생태를 알기위해서는 먼저, 이 잡초의 이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DNA(디옥시리보핵산) 염기서열분석과 같은 생명공학적 방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 잡초종자가 잘 발아하고 잡초가 잘 생육하는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알아야 한다. 또한 어떤 조건에서 잡초가 꽃이 피며, 어떤 방식으로 꽃가루받이를 하고, 얼마만큼의 종자를 생산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잡초의 일생을 전부 과학적 조건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만 ‘잡초를 연구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농업인은 잡초를 없애려고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지만 잡초를 연구하는 학자는 잡초를 잘 키우려고 많은 노력을 들인다.

모순 같지만, 잡초학자는 이렇게 애지중지 키운 잡초를 다양한 방법으로 죽이려고 노력한다. 주로 제초제를 이용한 잡초방제를 연구하는데 먼저 대상 잡초를 방제하는데 효율적인 제초제를 선발한다. 우리나라에는 500여종의 제초제가 등록돼있는데, 이 중에서 실질적으로 살초효과를 가지고 있는 원제의 특성을 고려해 후보목록을 만든 후 일련의 실험과정을 거쳐 약효를 입증한다. 약제의 약효가 효과적이면 동일한 실험과정을 거쳐 작물에 피해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다. 잡초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작물에게는 안전한 제초제가 선발이 돼야 일차적인 잡초학의 목적이 완성되는 것이다.

풀메기 작업은 해서 이득이 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을 때 손해가 난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이 힘든 작업을 조금이라도 쉽고, 편하고, 확실히 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잡초에 물과 비료를 주러 온실에 간다. 잡초도, 아니 잡초는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

[이인용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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