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4월20일 보령시 청라면 장현마을에서 열린 농업생태환경 프로그램 실천협약식. 허승욱 도 정무부지사와 충남연구원, 마을주민 등 100여 명이 모여 상호 준수조건 이행을 다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에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반영해 기존 소득보전직불제를 공익형 직불제로 확대 개편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농정의 중심을 성장과 경쟁이 아니라 농업의 다원(공익)적 기능 중심으로 전환하고 직불제를 확대하자는 충남의 제안과 상통한다. 충남의 직불금 제도개선은 생산 위주의 투입재 지원, 대농이 유리한 면적당 지원방식에서 탈피, 직불금에 생태환경이라는 공익성을 탑재하고 농가당 직불로 양극화를 축소하는 방향이다. 충남의 사례는 일부 보완점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농정개혁에 시사하는 바 크다.


충남의 ‘농업환경실천사업’
규모 등 상관없이 36만원 지급
농민단체와 협의로 문제 해소

성장과 경쟁 집중 농정서 탈피
생태환경 등 공익적 기능 살려
‘직불금=국가 보상’으로 인식 노력

국민행복농정연대서 제안한
기본직불금+가산직불금
소농직불제 도입도 검토를


●충남은 왜 직불금 개혁을 얘기하나 충남은 2013년부터 농업직불금의 확대개편과 농정의 지역정책화를 주장해왔다. 이는 선진국 농정이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보상으로 직불금을 늘리는 반면, 우리나라는 생산지향의 농정으로 농가경제가 악화되고, 직불금도 수만 많을 뿐 농가소득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충남이 제시한 개선방향은 농업직불금 제도의 성격을 농업의 다원적·공익적 기능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상(비용지불) 정책임을 분명히 하고, 정부와 농민(농촌주민)이 상호준수조건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상호준수의무는 농업이 갖는 공익적 역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장치다.
충남이 2014년 1월 발표한 농업직불금 개선방안은 3개축으로 구성됐다. 1축 희망농업 직불은 식량자급을 위해 논과 밭을 경작하는 농민, 그리고 새로운 후계인력에게 지급하고, 제2축 생태경관 직불은 농업생태와 농촌경관 유지보전에 지불한다. 제3축 행복농촌직불은 공동체 유지관리와 농촌안전망 서비스에 지급하는 내용이다.

충남은 이런 제안과 함께 농업재정을 개혁하기 위한 자체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하나는 보령 장현마을과 청양 화암마을에서 시행되는 ‘농업생태환경프로그램’ 시범사업이고, 또 하나는 올해 시작한 ‘농업환경실천사업’이다.


●면적 대신 농가당 지급으로 전환 농업환경실천사업이란 기존의 맞춤형 비료지원사업(198억원)과 경영안정직불금(297억원)을 합쳐 만든 충남형 농업직불금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업은 그동안 면적당 지원을 농가당 지원으로 바꾼 것이다. 대상은 2016년 쌀·밭직불금 수령자로, 농가당 지급액은 36만원. 행정과 마을, 농협이 질소질 비료 적정시비 준수를 협약하고 이행하는 조건이다.

충남도는 2002년부터 벼 재배농가 손실 보전을 위해 농가별 2ha까지 맞춤형 비료를 무상 지원해왔지만, 질소질 비료 과다시비로 미질이 저하되고, 쌀값 하락으로 인해 생산량으로 소득보전이 어렵게 됐다. 또 2012년부터 5년간 벼 재배농가 경영안정직불금으로 5ha까지 ha당 23만1000원을 지원했는데, 면적을 기준으로 지원하면서 소농과 대농의 소득격차가 지적됐다. 도내 농가의 65%인 1ha 미만 농가는 평균 11만원을 수령한 반면 7.6%인 3ha이상 농가는 평균 94만원을 수령했기 때문이다. 이에 충남은 생산과 성장 중심의 정책을 다원적 기능 보전으로 전환하고, 규모나 논·밭에 관계없이 농가별로 균등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물론 사업방식을 변경하면서 대농 등 일부 반발도 있었지만, 충남은 거버넌스(협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새로운 방안을 전업농 등 9개 농민단체와 협의하고, 2016년 8월 안희정 충남지사와 9개 단체장이 사업 전환에 대해 협약했다.

현장에서 혼선도 있었다. 당초 충남은 이 사업을 ‘농업환경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농가를 대상으로 농업환경과 생태 개선, 농촌경관, 마을공동체 확대 등 마을별로 자율 프로그램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프로그램 개발과 선택, 상호준수조건 협약이라는 사업방식에 대한 일선 농민들의 거부감과 함께 농업경영체 확인의 불명확한 점이 지적됐다. 농촌에 거주하는 비농가의 소외감이나 도시에 거주하는 출입경작자들의 사업 참여 문제도 쟁점이 됐다. 그래서 충남도는 행정, 학계, 지역전문가 등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 보완방안과 단계별 추진계획을 만들었다. 일단 올해와 내년은 행정이 주관해 ‘질소질 비료 적정시비’를 내용으로 협약내용을 정해주고, 이후 마을과 농민 주관으로 양방향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상호준수협약에 따른 충남형 농업직불금 지원체계를 완성한다는 방침. 충남은 향후 농업재정 분석을 통해 다른 농업관련 사업들을 재구조화하고, 정리된 예산을 모아 농업환경실천사업을 더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새정부 직불금 정책방향은 그럼 새 정부의 직불금 정책은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60여개 농민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민행복농정연대는 이번 대선에서 직불금의 규모를 5년 내 농업예산의 50%까지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EU(유럽연합)와 스위스 수준인 80%까지 늘릴 것을 제안했다. 농업소득의 최소 50% 이상, 곧 농가당 연 500만원 이상을 직불금으로 보장하란 것이다. 직불제는 기본직불제인 식량안보 직불로 논·밭 구분 없이 각 ha당 100만원을 지급하고, 다원적 기능을 증진하는 의무이행사항을 준수하는 참여 농지에는 추가로 가산형 직불금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가산형직불제에는 친환경·유기농업, 생태환경보전, 경관보존, 토종종자, 종다양성 직불제가 포함된다. 아울러 양극화 개선을 위해 약 70%에 해당하는 영세농가에게 연 100만원의 소농직불제를 시행하는 방안이다.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은 “농업 재정을 다기능농업 육성과 농가경영안정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근본 재편하고, 권한은 지방에 대폭 이양해야 한다”며 “기본직불제에 부가적으로 생태환경, 농촌경관 같은 내용의 가산직불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태연 단국대 교수는 “장현마을과 화암마을의 사례는 투입과 생산 중심의 농업이 환경생태 중심으로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사례”라며 “이는 지역에서만 가능한 만큼, 중앙정부는 예산과 권한을 과감히 지방에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남은 문제는 이를 실현할 재정의 확보다. 단순 계산하더라도 우리나라 농가호수를 올해 106만호로 추정, 농가당 연간 500만원을 직불금으로 지급하면 연간 5조3000억원이 들어간다.

2016년 현재 농림예산 14조3681억원 가운데 순수 직불예산이 2조1124원으로 14.7%인데, 예산 총액이 이대로라면 이를 30~40%까지 끌어 올려야 한다. 정부가 농정개혁과 이를 뒷받침할 투융자계획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다.

2015년 충남연구원이 제시한 방안으로는 3개축의 직불제에 4조2000억~5조1000억원이 들어간다. 지금은 상황에 변동이 있지만, 기본 구조는 시사점이 있다. 충남연구원은 재원 확보방안으로 기존의 직불예산에 더해 농어촌특별세의 조세 징수 강화, FTA 무역이득공유제, 사업 성과가 낮은 농정예산 재편, 타 부처 예산 통합 운영 등을 제시했다. 충남연구원 강마야 박사는 “농정예산 재편은 기존 비료 농약 등 환경에 부담을 주는 생산 중심 투입재 지원 분야, 시설·유통분야 중에서 기업에게 유리하고 양극화를 부르는 분야를 구조조정하고, 그 외에 추가적으로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며 “이는 과거 개방농정, 생산 중심의 농정에 대한 냉철한 평가로 농정의 신뢰를 회복하고, 농업의 다원적 기능, 농정의 지방분권을 극대화 하는 사고 위에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농정의 대전환과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중점을 두는 직불제 확대는 전반적으로 공감을 얻고 있지만, 수십년간 지속된 성장 제일주의, 신자유주의 농정의 타성, 부처간·업계간·관료조직과 산하기관 간 복잡한 이해관계 등으로 녹녹히 매듭이 풀릴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결국 농업·농촌·농민을 살리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대통령의 결단과 지지를 기반으로 범정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그 일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인터뷰/ 이관률 충남연구원 농촌농업연구부장
“새로운 환경공동체 가능성 엿봐”

농업생태환경프로그램 통해
농민들의 자발적 참여 정착
친환경 농업 인식도 변화

 

“농민들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선입견과 달리 농민들이 직접 사업을 고르면서 상당히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걸 알았습니다.” 충남도의 농업직불금 제도개선 시범사업으로 ‘충남 농업생태환경프로그램’을 주관하고 있는 충남연구원 이관률 박사(농촌농업연구부장)는 이 사업을 통해 친환경농업에 대한 농민들의 인식이 바뀐데 주목한다. 꾸준히 소통하고 가능한 것을 실천하면서 자발적인 참여가 정착됐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장현마을, 화암마을 주민들과 사업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마을공동체의 가능성을 봤다고 한다. “전통적인 경제적 마을공동체가 1980년대 이후 기계화로 파괴돼 사라진 이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환경공동체의 형성, 농업과 생태의 공생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

이 박사는 이제 농정은 생산지향의 농업에서 벗어나 환경생태와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다원적 기능에 초점을 맞춰 개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보조사업의 대부분은 소농이 아니라 비료, 시설지원, 기계화 경작로, 6차산업 등 생산과 투입지향으로 대농과 후방산업에 집중되고 있는데, 이는 농업을 키워 부가가치를 모두 후방산업으로 빠지게 한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앞으로 농정은 환경과 생태,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농업과 농촌마을을 바라보고, 농업의 전방산업인 교육, 보건, 복지를 키워 농촌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농정개혁과 관련 지나치게 국가주의적인 농정을 지적하고 “농식품부 사업의 50% 정도는 20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이는 농정구조가 중앙집권적으로 획일화되어 발생한 문제”라며 “타성적으로 장기간 지속돼온 농식품부 정책들을 모두 폐기, 전면적이고 혁신적인 농정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식품부가 갖고 있는 국가사무 중 상당수는 위임사무의 형태로 지방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만큼 위임사무는 모두 지방으로 이양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상길 논설위원·한국농어민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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