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의 스트라스부르본부를 방문했었다. 농민단체대표들의 유럽농업회의소 연수를 안내하는 기회였다. 유럽연합이 되면서 통일시킨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통화를 유로화로 한 것이고 또 하나는 농업정책을 공동정책으로 통일한 것이다.

농업정책을 통일된 공동정책으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설명자는 ‘농업이 안정되지 못하고 농산물이 종속되면 선진국으로 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나라가 모든 농산물을 자급하기는 쉽지 않으나 여러 개의 나라가 뭉치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말이다. 그 결과 유럽연합의 농산물자급은 98%가 됐다.

국민이 주인되게 하는 개발 철학

그들은 공동농업정책의 중요한 정책수단을 건강한 농산물(먹거리)생산과 공급, 건강한 물과 흙을 유지하며 경관을 유지하는 공적기능강화에 맞추고 있다. 그래서 오래전에 공동농업위원회가 ‘농업은 공공재’라고 선언했다. 농업의 공적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농약은 일정한 독성이하로만 쓸 수 있고 농약을 덜 쓰거나 안 쓰면 안 쓸수록 지원을 더 받을 수 있게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재를 관리하게 되는 농민들은 공적기능을 수행하는 공무원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므로 농약을 덜 쓰거나 안 쓰면, 또 제초제를 안 쓰면 보상을 해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쌀 농업을 지원한다고 쌀값을 가마당 18만8000원의 목표가격을 정해놓고 시중가격과의 격차를 80%까지 직불금으로 보상하는 정책을 택하고 있다. 그러자 소비자들이 ‘왜 농민만 쌀값이 떨어지면 공짜로 돈을 보태주느냐?’라고 시비를 걸게 된 것이다. 이제 쌀 직불금제도는 손 볼 수밖에 없다는 분위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농민들이 물 살리려고 농약을 줄이고 안 쓰려고 노력하며 흙을 살리려고 제초제도 안 쓰고 농사를 하려니 힘들고 비용도 든다. 그러니 국민들이 이를 지원해야 된다’라는 것을 설득해 소비자들의 박수를 받아냈다. 수질, 토질 다 버리고 나면 생태계가 망가지고, 오염된 농산물과 믿지 못할 먹거리, 오염된 휴식공간 등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되는 것을 알고 있는 소비자들이 기꺼이 약속을 지키는 농민들에게 지원을 찬성한 것이다.

철학이 다르니까 똑같은 돈을 주면서도 우리는 소비자들의 시비를 받게 되고 유럽은 소비자가 박수를 치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우리농업정책도 철학을 바꿔야 한다.

독일의 경우 농촌지역하천은 소수력발전시설, 언덕에는 풍력전기시설, 지붕과 축사는 모두 태양열전기시설, 축산폐기물은 바이오가스를 활용한 온수와 전력시설로 만드는 등 모든 것을 자원화, 국민의 재산화하고 있다. 모든 핵시설의 폐기를 추진하며 댐건설을 지양하고 하천과 작은 강을 보로 막아 소수력발전 만들고 있다.

댐은 만들 때도 대기업이나 재벌이, 만든 후 관리도 대기업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수력발전은 국가의 전력공사가 소수력발전시설의 적지를 조사해 발표하고, 적지로 선정된 주변의 주민들이 협동조합방식으로 각각 참여하며, 한 곳에서 몇 개의 마을이 사용할 수 있는 소량의 전기를 생산한다. 초기의 시설비는 조합의 출자금과 전력공사(대부분)가 부담하되 생산되는 전기는 전력공사가 모두 매입하며 공사비를 모두 변제받게 되는 15~20년 이후는 그 수익이 모두 조합원에게 돌아가게 하는 방법이다. 풍력전기시설도 거의 모두가 그 지역농민들과 주민들의 협동조합이 참여하고 있다. 결국 세대가 지나면 모든 전력생산 시설이 국민의 것이며 그들이 스스로 관리하게 만들고 그들이 수익자가 되게 하는 국민이 중심인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주민협동조합 참여방식의 풍력전기와 소수력은 환경파괴도 없고 주민반대도 없으며 지역발전의 원동력이 되면서 사회적 자본이 모아지는 것으로 지역주민의 소득원이 된다. 특히 대형 댐으로 인한 지역 간 갈등과 국가 간 물싸움도 없다. 이것이 국민을 중심에 두고 국민이 주인 되게 만드는 개발철학이다.

독일은 술의 제조허가권, 식품제조허가권 대부분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주어져있어 이를 지역산업의 촉진제로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길가의 풀, 잡초들이 대부분 차로 개발돼 팔리고 그중에 약효가 있는 잡초들은 제약이나 화장품으로 개발되고 지역특산품이 돼 있다. 그래서 독일을 여행해 보면 길가의 잡초가 기능성차로 만들어져 찻집에서 팔리고, 가는 곳마다 맥주상표가 다르며, 포도주상표만해도 8000종이 넘는다.

지역을 주인되게 하는 철학으로

우리나라는 재벌과 대기업들 중심으로 가기 위한 술 제조허가권의 국세청 독점, 약사법에 의한 기능성농산물과 약초차, 약성화장품의 효능표시금지규정 등으로 산업화가 가능한 자원들이 묻히고 말았다.

효능을 철저하게 검증하고 검증된 효능은 표시할 수 있게 한다면 우리나라 시골길가의 민들레, 쑥, 질경이, 쇠비름, 넝쿨꽈리, 쇠무릎 등 대다수 잡초들이 모두 술 원료, 차 원료, 화장품, 제약 등 산업화의 원료가 될 것이다. 지역주민들이 협동조합방식으로 이를 산업화하게 되면 지역사회 자본으로 건전하게 농어촌을 균형 발전시키는 기반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지역을 주인 되게 만드는 국민산업화의 철학이다.

정명채 전국농어민위원회 자문위원장·통일농수산정책연구원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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