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윤 화천귀농학교 교장

 

무밭 고랑 김매기를 마쳤다. 700평 밭을 이틀 만에 끝냈으니 큰 일 도 아니다. 두둑에 비닐 피복을 하고 파종을 한 다음 풀이 나기도 전부터 고랑을 풀매는 기계로 긁어 주었더니 풀이 한창인 지금도 한 달에 두어 번 만 긁어주면 풀 걱정은 크게 안 해도 된다. 귀농 초기 마당과 밭을 온통 풀로 뒤덮어 동네 원성을 사던 시기에 비하면 도사가 다 되었다. 농사경력 12년에 유기농 인증 2000평, 무농약 재배 1300평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친환경농업, 여전히 막힌 판로

귀농귀촌자 들 대부분은 친환경농업을 한다. 무농약, 유기농업을 하지만 많은 분들은 자연농업에 까지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하는 것으로 안다. 초기 귀농흐름을 주도했던 (사)전국귀농운동본부 의 입장이나, ‘조화로운 삶’, ‘월든’ 등 이쪽 관련 책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갈망과 산업화 도시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와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과학영농, 규모화, 대량생산을 강조하던 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고, 관행으로 제초제와 농약을 사용하며 농사를 짓는 지역민들과 불화를 빚어 쫓겨 난 사람도 있었지만 육체적 한계와 소득의 문제로 인해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에 빠진 경우도 많았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추구하는 농민 자신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라 참 아이러니 했다. 

귀농자들이 농사의 첫 시작부터 친환경농업을 해 온데 반해, 기존 농민들은 관행으로 농사를 지어 오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전환을 한 경우가 많다. 농약 후유증을 겪은 후에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게 된 경우나 우연히 농자재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그 가치를 인식하게 된 경우 등이다. 귀농자들이 친환경농업에 대해 최소한의 기계사용, 석유화합물 투입에 대한 거부 등 근본주의적 접근을 했다면, 기존 농민들은 기존 농사경험의 바탕위에 농기계, 피복비닐 등 다양한 농자재를 활용하는 좀 더 유연한 방법을 통해 친환경 농업의 규모화, 상품의 균일화를 가능하게 했다. 우리가 생협 등 특정 창구를 통해서만 아니라 일반 대형마트에서도 다양한 친환경농산물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분들의 노력 덕분이다. 

여기에 김대중 정부 때 시작한 친환경농자재에 대한 보조금지원과 다양한 기반시설 지원책 등 정부의 지원, 도농교류와 농산물 직거래를 주도한 소비자생협의 성장으로 우리나라 친환경 농업은 양적으로 급속하게 커져 왔다. 그 와중에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철학적 기반이 없이 보조금에 대한 욕심이나 돈벌이 수단으로만 인식하고 참가한 농민들의 경우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입 탈퇴를 반복하기도 하고 이로 인해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조장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해외 선진지를 견학하거나 유기농 천국으로 알려진 쿠바를 가 보아도 우리나라 친환경 농업 기술이나 생산성 등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발전했다. 

까다로운 소비자 요구에 휘청

이 전제하에 현장에서 친환경 농업을 하는 농민의 입장에서 몇 가지 고민을 털어 놓자면 첫째, 여전히 존재하는 판로의 문제이다. 관행농사의 경우 단가가 어쨌든 간에 가락동 등 도매시장에 출하를 하면 판매의 걱정은 덜 수 있다. 하지만, 친환경 농산물의 경우는 중간 수집상인 벤더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세한 개별 회사들인지라 안정적이지 않고, 직거래의 경우도 생산자가 판매와 A/S까지 책임져야 하는 만큼 보편적일 수 없는 구조이다. 비록 생협이라는 유통구조가 있지만, 생산자와 소비자의 공생을 추구하던 초기의 정신은 여러 가지 이유로 사실상 사라지고 소비자 단체 일방의 권력 하에 생산자들은 을의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죽했으면 생협의 생산자 단체가 자기가 속한 생협에 출하하는 농산물의 비중을 50%를 넘지 않고자 노력하는 경우도 있을까. 과도하게 특정 생협에 출하처를 의존할 경우 그 결정에 따라 목숨줄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둘째, 날로 높아져 가는 소비자들의 욕구이다. 유기농산물도 관행농산물과 똑같이 생긴것도 이뻐야 하고, 품질도 좋아야 한다. 벌레가 먹고, 생긴 것이 좀 흠이 있는 농산물을 자연에 가까운 농산물이라고 찾던 소비자들은 이제 없다. 그러니 값비싼 농자재를 고투입하면서 모양이 번듯한 농산물을 생산해 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생산해 낸 유기농산물도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지는 못한다. 보조사업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농민들의 행태 탓이기도 하지만, 텃밭농사 정도의 경험을 가지고 5평에서도 친환경이 힘든데 1000평, 2000평에서 어떻게 친환경이 가능하냐? 고 자신의 경험을 전문가들인 농민들에게 까지 일반화 시키는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하지만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영어로 ORGANIC 이란 세상 만물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불교의 인드라망 과 같은 것이다. 농민이 살아야 소비자가 살고, 소비자가 있어야 농민이 존재한다는 상호적 관점. 자연이 살아야 사람이 살고, 사람이 살아야 자연이 존재가치가 있다는, 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유기적 관계를 지향하는 유기농업 기본 철학이 우리 사회에 사라져 버렸다. 관계의 네트워크는 없어져 버리고 결과로서의 유기농산물, 유기농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올해 유기농 인증심사를 받는 중 우리 밭 토양에서 농약이 검출되었다. 아직 농산물이 나오지 않는 시기라 토양검사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2010년부터 유기로 관리해 온 밭이다. 화학합성농약, 제초제, 화학비료 하나도 써 본적이 없다. 아니 농사 처음 할 때부터 유기농으로만 해왔기 때문에 그런 것을 쓸 줄도 모른다. 그런데 검사기관의 결과서에 나왔기 때문에 내가 쓰고 안 쓰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란다. 덕분에 우리 생산자단체 회원들도 공동인증을 했기 때문에 모두 불합격이다. 옆 밭에서 날아 왔는지, 우리 밭에 출입하는 다른 사람의 트럭 바퀴에 묻어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농약이 나왔으니 인증취소다. 내 의지와 노력의 여하와 관계없이 결과가 나타나는 데 어떻게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가? 그날 이후 밭에 가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무와 청양고추가 잘 자라도 문제고 안 자라면 가슴 아픈 상황이다. 

유기적 관계 지향 철학 어디로

재작년에는 우리학교 졸업생이 근 6년 이상 유기농으로 관리해온 밭에서 이제는 생산도 하지 않는 논에서 쓰는 농약이 검출되어 인증 취소를 받았다. 그 밭에 계약 재배한 양배추는 출하처를 잃어 버렸고, 덕분에 우리는 양배추 달임물을 원 없이 얻어먹었다. 이게 친환경 인증의 현주소다. 과정을 관리하고, 생산자를 관리하는 인증제도가 아니라 소비자의 입장에서만, 결과로서의 농산물에만 집중하는 우리나라 인증제도의 결과물이다. 내가 다시 자신 있게 유기농으로 농사를 시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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