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철없는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돼지’라 부르며 놀리는 장면을 본적이 있다. 여학생은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아니’라고 소리친다. 흔히 주변에서 접하는 풍경이다. 우리 머릿속에 돼지는 뚱뚱하고, 냄새나고, 멍청한 동물로 자리 잡혀 있다. 그래서 살이 조금만 쪄도 ‘돼지 같다’고 하고, 음식을 지저분하게 먹으면 ‘왜 돼지처럼 게걸스럽게 먹느냐’고 한다. 필자도 축산분야 연구원이 되기 전까지 돼지를 더러운 동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돼지를 접하게 되면서 이런 고정관념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돼지는 더럽고 멍청한 동물이 아니다. 돼지는 잠자리와 배변장소를 가릴 줄 아는 동물이다. 여러 마리가 같은 방에 머물러도 배변장소를 구분할 줄 안다. 돼지가 자기의 배설물을 잔뜩 묻히고 있어 자칫 더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돼지의 생리 때문이다. 돼지는 땀샘이 없어 축사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체온유지가 되지 않는데 이 때문에 자신의 배설물이라도 몸에 묻혀 체온을 낮추려고 한다.

돼지도 배가 부르면 그만 먹는다. 돼지라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음식이 나타나기만 하면 모두 해치울 거라는 편견이 있지만, 실제로는 적정 양만 섭취하고 그 이상은 먹지 않는다. 양돈농가들 중에는 무제한으로 사료를 주어 돼지 스스로 적정량만 먹도록 하는 농가도 있다. 또, 무제한 급여가 하루 2번 사료를 주는 것보다 1회 사료섭취량이 적다는 보고도 있다.

돼지는 버릴게 없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육류소비량 46.8kg 중에서 돼지는 22.5kg으로 약 50%를 차지한다. 고기를 제외한 내장, 머리, 꼬리는 순대, 국밥 등 여러 음식의 좋은 식재료가 돼 준다. 돼지에서 나오는 기름 또한 식품, 미용 등 여러 분야에서 쓰이고 있으니 정말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귀한 동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럼 돼지는 모든 것이 긍정적인가? 물론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돼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은 냄새와 동물복지문제이다. 각 시·군별로 냄새 저감에 힘을 쏟고 있지만 해마다 양돈냄새 민원은 증가하고 있다. 또한 동물복지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가 늘면서 농가의 환경과 도축처리과정 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도 많을 것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는 축산냄새 저감용 미생물제 개발과 양돈장의 핵심 냄새 물질을 구명하는 등 지속가능한 양돈산업의 미래를 위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동물복지 실현을 위해 돼지가 자유로이 다닐 수 있도록 ‘개량스톨’을 개발하고 있다.

2016년 돼지생산액은 6조 7702억원으로 쌀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제는 양돈농가들이 앞서 환경과 복지문제를 개선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하여 국민들이 ‘돼지’라 하면 깨끗하고 건강한 농가, 밝은 축산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돼지는 우리나라 축산업뿐만 아니라 한국경제까지도 책임지고 있는 이롭고 고마운 존재다. 예부터 돼지는 복의 상징물로서 꿈에 돼지가 나오면 길몽이라 여겼다. 앞으로는 긍정적인 상황, 혹은 사랑스럽고 복덩이 같은 사람에게 ‘돼지’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민예진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양돈과 농업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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