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화군 봉성면 외삼리 정의창씨(사진 왼쪽 끝 인물)가 우박 피해가 발생한 사과나무를 살피고 있다. 사진 가운데는 박창욱 한농연경북도연합회장. 오른쪽 끝은 이용우 한농연봉화군연합회장.)

우박이 지나간 자리는 처참했다. 지난 2일 방문한 봉화의 산과 들의 초목은 우박을 맞아 마치 풀 약을 친 듯 시들했다. 과수원과 농경지의 작물은 아예 초토화됐다. 노지 수박 밭은 막 뻗기 시작한 수박줄기가 우박을 맞아 잘려져 나갔다. 고추와 담배는 잎이 다지고 줄기와 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밭작물에 덮어둔 검은 비닐망은 너덜너덜해져 수거조차 어려워졌다.

수박·고추 등 쑥대밭…비닐하우스 뚫고 차량 유리 깨져
"경북북부 피해규모 6600여㏊ 달해…보상대책 마련돼야"


사과 밭은 우박 맞은 곳은 열매가 90%이상 졌고, 나뭇가지 곳곳이 찢겨졌다. 떨어지지 않은 열매도 우박에 성한 것이 없었다. 비닐하우스에 재배 중인 주먹만 하게 자란 수박도 비닐을 뚫고 날아든 우박에 속수무책으로 깨지고 부서졌다. 심지어 노상에 주차된 차량들은 유리창이 깨지고 차량 지붕 곳곳이 움푹움푹 폐였다.

지난 1일 낮 12시 40분부터 20여 분간 봉화지역에 탁구공 크기 만 한 얼음 폭탄이 쏟아졌다. 대게 우박은 대기 불안정으로 인해 국지적으로 내린다. 하지만 이번 우박은 영주시와 봉화군 등 경북 북부지역에 꽤 넓은 면적에 광범위하게 뿌려졌다. 봉화군이 가장 피해가 컸다. 봉화군 관내 10개 읍·면 중 석포와 소천면 2곳을 제외한 전 지역에 우박이 쏟아졌다.

봉화군 봉성면 외삼리 정의창(55)씨는 “밭에서 적과를 하던 중이었다. 손쓸 틈도 없이 쏟아진 우박 폭탄에 약 1만8150여㎡(5500여평) 사과 과수원이 쑥대밭이 됐다. 사과열매가 90%이상 다 떨어졌다. 달린 열매도 우박을 맞아 성한 것이 없다. 올해 사과만 1억원 이상 피해가 예상된다. 하지만 가지와 꽃눈이 우박을 맞아 손상돼 수년간 피해가 이어질 것 같다”며 피해를 호소했다.

또 정씨는 “비닐하우스 수박 농사도 두동(990㎡) 짓는데 우박이 비닐을 뚫고 들어가 1달여 뒤 수확을 앞두고 있던 수박 열매를 못 쓰게 만들어 놨다”며 “이곳은 우박 피해가 거의 없는 지역인 탓에 사과 같은 경우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농가가 많아 피해를 고스란히 농가에서 떠안아야 할 상황이라 농사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며 울먹였다.

외삼리의 또 다른 농민 장성진(42)씨도 “갑작스런 우박에 1만6500㎡(5000평)이 넘는 노지 수박밭이 작살났다. 7월 말경 수확할 예정이었지만 올해는 수확이 불가능해져 8000만원이 넘는 손실이 예상된다”며 “또 1만3200여㎡(4000여평)의 사과밭도 우박으로 열매가 다 떨어지고 나뭇가지와 꽃눈이 손상됐다. 올해 뿐 아니라 내년 농사에도 차질이 우려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 경북 영주시와 봉화군, 영양군 등 경북북부 지역 일대에 지난 1일 낮 쏟아진 지름 3~5㎝ 굵기의 우박.

인근 봉화군 재산면 상리에서 농사를 짓는 신정균(65)씨는 “노지 수박밭 9240㎡(2800평)과 고추밭 3300㎡(1000평)이 이번 우박으로 쑥대밭이 됐다. 밭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정도다. 1억 원 가까운 수입 감소가 예상된다”며 “현동3리에 있는 또 다른 9200여㎡(2800여평)의 수박 밭과 3300여㎡(1000여평) 고추 밭은 그나마 피해가 적어 작황 감소가 80%정도 될 것 같다”고 피해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현장 취재에 동행한 박창욱 한농연경북도연합회장은 “이번 우박피해는 봉화 등 경북북부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생해 전체 농작물 피해 규모만 6600여㏊에 달한다”며 “엄청난 규모의 농가 피해가 발생한 만큼 해당 피해지역을 조속히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정부와 도차원의 피해농가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대책을 마련토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경북도 관계자는 “피해조사를 바탕으로 복구비에 해당하는 농약 비용을 정부에 신청할 방침이다. 농약 비용은 1㏊를 기준으로 과수 63만원, 채소 30만원, 담배 등 일반작물 22만원 수준이다”며 “피해를 본 농가에서 조속히 정상적인 영농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경북도는 이번 우박으로 도내 11개 시·군에서 6644㏊ 농작물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4일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역별 피해면적은 봉화 3386㏊, 영주 1695㏊, 문경 639㏊, 영양 568㏊, 의성 110㏊, 경주 93㏊, 포항 62㏊ 등으로 보고됐다. 작목별로는 사과 2849㏊, 고추 1519㏊, 수박 623㏊, 감자 397㏊, 담배 150㏊, 참깨 105㏊, 벼 95㏊ 등이다.

봉화=조성제 기자 ch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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