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밀 업계에 놓인 재고 과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 6월 신곡 수매시기가 다가오면서 시급히 요구되고 있지만<본보 4월 14일자 10면 참조>, 정부와 관련 업계에선 뾰족한 방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도 여의치 않은 가운데 재고 물량의 대부분이 시장 선호도가 떨어지는 백중밀이라는 악재까지 더해져 이번 ‘재고 파동’ 사태가 향후 우리밀 산업 전반에 거센 후폭풍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4월 초부터 수차례 논의 불구 정부 여전히 “대책 강구” 
관련업계 “이러다가 시기 놓칠수도…정부 의지가 중요”

일부 생산성 좋지만 수요 없는 ‘백중밀’ 생산 문제제기
밀산업협회 “종자원에 종자 공급감축 요청했지만 외면” 


▲단기 대책, 없나 아니면 못 찾나=우리밀 업계에 따르면 4월 초부터 우리밀 업계가 직면한 ‘재고 과잉’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관련 협의가 수차례 이뤄졌다.

우리밀 산업의 민간 부분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국산밀산업협회를 중심으로 한 대책 회의도 있었고, 이를 토대로 한 업계 관계자와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들의 만남도 있었다. 이 자리에서 정부와 관련 업계는 이번 사태에 대한 문제 해결 방안을 찾는 데 적극 노력하자는 취지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런 분위기를 타고 단기 대책이 속도감 있게 마련될 것으로 보였으나 이로부터 한 달여가 지나도록 뾰족한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 제안한 방안들에 대해 검토가 이뤄지고 있고, 여전히 실현 가능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업계에선 구곡 재고 물량에 대한 주정용 처리 방안, 정부 또는 농협 차원의 수매를 통한 시장격리 등을 요구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최근 “주정용 처리 부분은 현재 국내산 주정 원료 물량이 많이 있어 여의치 않으며, 구곡 물량의 시장 격리도 당장 예산이 없는 상황”이라며 “대형 제분사에 수입 밀과 국내산 밀을 혼용해 쓸 수 있는 방안을 타진하고 있지만, 이 역시 정부가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실현 가능한 방안들을 물색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선 문제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여러 여건들을 고려하다보면 자칫 대책이 나와야 할 시점을 놓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의 경우엔 ‘계산’ 차원의 성격이 아닌 ‘결단’ 등의 의지 문제가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재고 물량 대부분이 백중밀이라 더 문제=우리밀 업계의 ‘재고 과잉’ 사태는 연간 생산량 3만톤 수준, 전체 밀 자급률의 1~2%에 그치는 산업 여건을 감안하면 외부의 시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이번 재고 파동의 원인을 두고 정부와 민간 관계자들의 분석도 엇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에선 우리밀 업계가 우리밀의 품질이 떨어지고 시장에 맞지 않는 품종을 고집하면서 시장으로부터 외면 받는 등 업계가 자초한 부분이 크다고 보고 있다. 반면 민간에선 자급률이 걸음마 단계인 밀 분야의 생산·수매·가공·판매 등의 프로세스를 모두 몇몇 중소 업체에 떠맡기며 ‘자급률 향상’이라는 목표에만 급급한 정부의 정책 부재가 지금의 사태를 키워온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구곡 재고 물량 중의 대부분이 ‘백중밀’ 품종이라는 점도 향후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소지가 충분하다. 관련 업계에선 현재 구곡 재고 물량을 1만~1만2000톤 수준으로 보고 있는데, 대부분을 백중밀 물량으로 파악하고 있다.

백중밀의 경우 다른 품종에 비해 생산성이 좋아 생산 농가들에겐 인기가 좋지만, 품질이나 시장 적합성 측면에선 떨어져 소비 용도가 마땅치 않아 시장 격리를 하더라도 처리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물량은 많지만, 처리할 여력이 많지 않은 사실상 ‘빚 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결국 시장 격리를 하더라도 시장 수요가 없어 폐기 수순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우리밀 품종은 크게 조경밀, 금강밀, 백중밀 등이다. 조경밀과 금강밀은 빵을 만드는 데 주로 이용되는데 수량이 넉넉지 않아 수요 업체들이 대부분 수입으로 대체하고 있고, 백중밀은 수율은 높지만 상대적으로 단백질 함량이 떨어져 국수나 과자 등에 활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백중밀의 재배가 최근 몇 년간 급격히 늘어나면서 전체 재배 물량의 60~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민간에선 이전부터 수차례 백중밀의 종자 공급을 줄여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지만, 정부가 생산 농가들의 요구를 이유로 분별없이 백중밀 종자를 공급해 왔다며 사실상 ‘재고 과잉’이 민간의 책임보다 정부의 종자 공급 프로세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산밀산업협회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국립종자원이 백중밀을 분별없이 생산 농가에 공급한 측면이 많았다. 지금의 사태를 우려해 공급 중단을 수차례 요청해 왔다”며 “현재 백중밀 재고 물량의 60% 이상을 지역농협 창고에 위탁해서 갖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보관비 등 부대비용이 높아지는 반면 소비 수요가 없어 시장에 팔지도 못하기 때문에 이를 처리하는 방안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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