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란 젠더&공동체 대표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일이 손해 볼 줄 알면서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농민들은 재미없는 일을 위해 뙤약볕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쌀농사가 그렇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당시 80kg 쌀 1가마를 17만원에서 2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공약(空約)으로 확인되고 故백남기 농민은 이에 항의하여 민중궐기에 참여했으나 경찰의 물대포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리고 또 다시 농민들은 이미 10만원대로 곤두박질 친 쌀농사를 짓겠다고 트랙터로 논을 갈고 못자리를 한다. 어떤 농민들은 올해 쌀값이 80kg 1가마에 8만원대 일 것 이라고 농사도 짓기 전에 한숨부터 쉬신다. 

농촌 복지의 핵심은 보편성

쌀밥 한 그릇에 1500원, 커피 한잔에 4500원. 3끼 식사가 한순간 마시는 커피 값보다 못한 현실은 농민의 처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싶다. 들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인 여성들의 모습은 다리가 뒤뚱거리며 벌어져있고 허리보다 몸이 뒤로 쳐져있다. 산후조리를 하지 못하고 쪼그려 앉아서 밭일을 너무 오래 한 결과 몸이 기형으로 뒤틀려 버렸다. 그래도 커피 한잔 값도 안 되는 식량을 만들겠다고 또 다시 그 몸을 이끌고 들판으로 나간다.

새 정부에 바라는 희망이라는 제목을 쓸 때부터 사실 심사가 편치 않다. 왜냐하면 이번 각 당의 대선 공약을 검토하면서 별로 희망이 안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농업인 관련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금 농촌에서 가장 필요한 정책은 복지와 소득이다. 복지와 소득을 개선한다면 농촌공동화나 해체 현상을 조금은 늦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각 당의 공약을 분석한 결과 복지정책도 소득정책도 딱히 개선될 여지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책이 제대로 수행되려면 절박함과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 절실함은 때로 결단을 필요로 하고 과감한 전환을 요구하기도 한다. 

면단위 통합복지 실행해야

그렇다면 어떻게 정책을 전환해야 희망이 보일까? 농촌 복지의 핵심은 보편성이다. 어디에 살든, 몇 명이 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노인이든 어린이든, 도시민들이 누리는 보편적인 복지혜택이 주어져야 한다. 복지는 인간답게 살아갈 적정한 권리를 기반으로 구성된다. 농어촌 지역 복지정책의 핵심은 정책 수혜에 있어서 접근성을 강화하는 보편적 복지의 수혜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면단위 정도에 종합적인 복지관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노인과 어린이, 청소년과 청년, 장년이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통합적인 공간의 확보와 프로그램의 제공이 필요하다. 초고령화 되어가는 농촌지역에서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와 비상돌봄망 시스템은 더욱 절실하다.

복지의 권리 실현을 위해서는 복지기관이나 복지정책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는 것, 농어촌 지역이라 해서 기관조차 설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담당할 인력이 자주 파견상담을 하거나 찾아가는 마을복지 형태의 접근 등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새 정부는 면단위 통합복지를 실행해야 한다. 면단위 거점을 중심으로 돌봄이 이루어지고 성폭력, 가정폭력 등 폭력피해자에 대한 상담과 안내가 실행되고 각종 농가도우미 파견과 지원이 실행되는 구조, 건강관련 상담과 지원, 문화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그렇지 못하면 농민에게 복지는 복지를 위해서 하루 품을 파는 또 다른 복지의 희생이 되는 삶이 될 것이다. 백원택시, 농번기 공동급식 등이 중요한 이유 역시 접근성이나 노동복지 해소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농민 단위 기본소득도 절실

소득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농가의 평균연령은 66세이다. 65세가 정년이라고? 기본소득 공약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기본소득을 65세로 제한하는 정책은(행복바우처 역시 마찬가지) 농업인들을 아예 정책에서 배제하는 정책이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모든 농업정책은 농가가 아니라 농업인 개인이어야 한다. 농가를 단위로 정책을 시행할 경우 여성농업인은 대부분 정책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필연적으로 배제된다. 그것은 아직까지 ‘농가=남성’으로 대표되는 현실 때문이다. 새 정부에서 해결해야 할 소득문제의 핵심정책은 쌀값보장과 농민 기본소득의 보장이 될 것이다. 점점 빈곤으로 치닫는 여성노인의 삶을 보면 기본소득은 더욱 절실하다. 또한 모든 농업정책은 65세로 제한하지 않아야 하고 농가가 아닌 농민을 대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농번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정부는 이 농번기에 슬그머니 수입쌀 입찰공고를 냈다. 쌀값이 11만원대로 곤두박질 친 상태라서 공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씁쓸하다. 제발 올해는 쌀값 투쟁으로 또 다른 농민이 살해당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직불금으로 쌀값 폭락이 보전된다는 허튼소리를 하는 정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쌀값은 아직까지는 우리 농민들의 목숨 값이다. 한잔의 커피 값보다 못한 밥 한 그릇, 뒤뚱거리며 펴지지 않는 허리를 곧추세우며 들판으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여성농민의 뒷모습에서 농민의 현실을 본다. 새 정부에게 바람은 오직 하나. 저 허리를 세워주지는 못할망정 더 휘어지게 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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