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의사에서 도중도 주무대로 향하는 매헌 윤봉길 의사의 영정 행렬. 이들은 풍물패 장단에 맞춰 10여분 걸은 후, 영정을 도중도 주무대 단상에 올렸다.

매헌 윤봉길 의사. 25년이란 그의 삶에는 농(農)과 나라가 전부였다. 농촌계몽운동에 전력을 다했고,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다. 짧지만, 그 누구보다도 굵은 생을 산 매헌 윤봉길 의사. 윤 의사의 농사랑과 나라사랑을 되돌아보는 ‘윤봉길의사 4·29 상해의거 85주년 기념-제44회 매헌윤봉길평화축제’가 4월 29일과 30일 양일간 윤 의사의 고향인 충남 예산 덕산에서 열렸다. 이날 85주년 기념식과 함께 매헌윤봉길월진회와 한국농어민신문, 매헌윤봉길농민상위원회가 선정한 매헌농민상 시상식도 진행됐다.


●매헌윤봉길평화축제
유족·참배객 500여명, 그의 넋 기려


‘윤봉길의사 4·29 상해의거 85주년 기념-제44회 매헌윤봉길평화축제’의 첫 출발은 다례행제였다. 4월 29일 오전 9시 30분경, 충남 예산의 충의사에서 치러진 다례행제에는 안희정 충남지사, 홍문표 바른정당(충남 홍성·예산) 의원, 황선봉 예산군수 등을 비롯해 유족과 참배객 500여명이 참석, 윤봉길 의사가 농촌과 나라를 위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그의 넋을 기렸다.

10시 30분쯤, 윤봉길 의사의 영정은 충의사에서 출발, 평화축제 주무대인 도중도로 향했다. 태극기와 영정을 든 행렬은 풍물패 장단에 맞춰 걸었고, 10여분 후 영정은 도중도 주무대 단상에 고이 모셔졌다. 20여분 후, 청운대학교 뮤지컬학과 학생들의 추모공연을 시작으로 평화축제의 문이 열렸고, 11시부터는 예산시민 등 100여명과 함께 기념식이 진행됐다. 첫 번째 순서는 매헌윤봉길월진회와 한국농어민신문, 매헌윤봉길농민상위원회가 선정한 매헌농민상 시상식. 수상자는 정현찬 한국가톨릭농민회장, 정제민 예산사과와인(주) 부사장, 국영석 완주고산농협 조합장 등 3명이었다.

매헌농민상 시상이 끝난 후 무대에 오른 이우재 매헌윤봉길월진회장은 “평화축제는 윤봉길 의사의 월진회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며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로 나라를 빼앗기고 신음하던 조선에 민족의 가슴을 울리고 우리 민족이 살아있음을 세계에 알린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 85주년을 맞아 평화축제가 월진회 정신은 물론 농촌운동과 평화정신을 되새겨보는 축제의 장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문표 의원은 “1908년에 예산에서 태어나 한학공부를 하고 농민운동을 하다가 마지막엔 독립운동으로 한평생 살다가 간 윤봉길 의사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윤봉길 의사를 민족성웅으로 받들고, 그의 깊은 뜻을 기리고 재조명해서 후손들에게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전 11시쯤 기념식이 끝났다. 평화축제 기간, 도중도 일대는 예산시민은 물론, 윤봉길의 발자취를 만나기 위해 모여든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매헌음악제, 평화토크콘서트, 보부상난전놀이, 잠뱅이씨름대회 등 각종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풍부했던 평화축제. 평화축제의 제목 ‘불꽃청년 그를 만나다’처럼 평화축제를 찾은 모든 이들이 충남 예산에서 윤봉길을 만났으리라.


●농민운동가, 윤봉길
무궁무진한 농민세상을 꿈꾸며


윤봉길 의사의 아호는 매헌(梅軒)이다. 윤봉길 의사가 오치서숙을 떠날 무렵, 그의 스승인 매곡 선생이 직접 하사한 아호다. 매곡 선생이 윤봉길 의사에게 ‘석별의 기념’으로, 자신의 아호인 매곡에서 ‘매’를 떼어내고, 여기에 윤봉길 의사가 마음속에 스승으로 섬기는 성삼문 선생의 아호인 매죽헌 중 ‘헌’을 붙여 만들어 준 것이 ‘매헌’이다. 2008년에 발간된 ‘항일 불꽃으로 산화한 매헌 윤봉길’의 한 대목을 빌리면, 매곡 선생의 말은 이랬단다. ‘매화는 동지섣달 설한풍 속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향기를 내뿜는 나무다. 자네(윤봉길)도 그 맑고 깨끗하고 고고한 기풍을 이어받아 이 난세에 굴하지 말고 꽃을 피워 온 세상에 향기를 발하게.’

이 때 매헌의 나이는 19세. 매헌이 농촌계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때이기도 하다. ‘묘패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오치서숙에서 공부할 당시, 한 청년이 아버지 묘패를 알려달라면서 주변의 공동묘지 묘패를 모두 뽑아왔다. 문제는 묘패가 있던 자리를 표시하지 않은 채 무작정 묘패를 가져온 것. 결국 자신이 자신의 아버지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산소까지 잃어버리게 만들었다면서 대성통곡을 했고, 이를 지켜본 매헌은 ‘일본 제국주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지’라고 깨닫게 된다. 그렇게 매헌은 농촌계몽운동으로 눈을 돌렸다.

매헌은 농촌계몽운동의 첫 사업으로 1926년에 야학을 설립했고, 1927년에 야학을 위한 교재를 직접 썼다. 그 책이 바로 ‘농민독본’. 농민독본은 총 3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제1권은 일제 강점기에 사라졌고, 현재 제2권과 제3권만 전해지고 있다. 이 중 3권(농민의 앞길 편)이 주목할 만하다. ‘농사는 천하의 대본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닙니다’로 시작하는 유명한 글귀가 3권에 담겨 있다. 전문을 소개한다.

‘농사는 천하의 대본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억만년을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사람의 먹고 사는 식품을 비롯하여 의복 주옥의 자료는 말할 것도 없고, 상업, 공업의 원료까지 하나도 농업 생산에 기대지 않는 것이 없으니, 농민은 세상 인류의 생명창고를 그 손에 잡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이 돌연히 상공업 나라로 변해 하루아침에 농업은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농민의 세상은 무궁무진 합니다.’

매헌은 1929년에 ‘날로 나아가고, 달마다 전진하자’는 의미의 월진회를 조직, 월진회는 ‘야학을 통한 문맹퇴치운동 추진’, ‘강연회를 통한 애국사항 고취’, ‘공동경작과 공공식수를 통한 농촌경제향상’, ‘축산 등 농가부업과 소비조합을 통한 농가의 경제생활 향상’, ‘위생보건사업과 청소년의 체력단련을 통한 체력향상’ 등을 활동목표로 제시했다.

1930년 3월 6일, 매헌은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장부가 뜻을 세워 집을 나아가면 그 뜻을 이룰 때까지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을 유서로 남기고, 중국으로 망명의 길을 떠났다. ‘대한민국 독립’이란 꿈을 위해서였다. 1932년 4월 29일 오전 11시 50분, 윤봉길 의사는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천장절과 상해사변의 승기를 축하하는 전승축하식을 겸한 기념식장에 폭탄을 투척했고, 곧바로 일본헌병대에 연행된 윤봉길 의사는 일본 가나자와 9사단 공병작업장에서 총살형으로 숨을 거뒀다. 1932년 12월 19일, 그의 나이 25세였다.


●매헌농민상 수상자를 만나다

▲농민권익부문/정현찬 한국가톨릭농민회장
“농업문제, 전 국민의 문제로 인식해야”

 

“좌불안석입니다.”

정현찬 한국가톨릭농민회장이 밝힌 수상소감이다. 정 회장은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낮춰 말하기도 했다. 평생을 농권운동에 매달려온 정 회장의 수상소감, 뒤에 덧붙이는 한마디에 고개가 숙여진다. “농민권익을 위해서는 해온다고 해왔는데, 여전히 농민권익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럼, 정 회장이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농권은 어디쯤 와 있을까. 정 회장은 “특히 경제적인 부분을 보면, 농민도 국민과 대등한 관계에서 소득이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농가에도 기본소득이 있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농권을 말하기에 앞서, 농업에 대한 인식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그는 “농업은 식량안보에 관한 문제이자 식량주권에 관한 문제로 봐야 하고, 생명산업이기 때문에 단순한 경제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며 “국민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장하기 위해서는 한국 농업을 우리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백남기투쟁본부 공동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2015년 11월, 쌀값 보장을 외치던 백남기 농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에 쓰러졌고, 이듬해 11월 5일 세상과 등질 때까지 358일간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건’의 진상규명에 앞장서왔다. 정 회장은 “백남기 농민을 위한 투쟁은 모든 농민들이 같이 했고, 국민들도 함께 해준 것”이라며 “이 자리를 빌어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신농업인부문/정제민 예산사과와인(주) 부사장
“전통주, 지역 농업·문화 녹아든 결정체”

 

“전통주는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만든 술이 아닙니다. 지역의 농업과 문화가 녹아들어간 결정체입니다.”

정제민 예산사과와인(주) 부사장의 목소리엔 힘이 실렸다. 예산사과로 예산와인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기도 했다. 지역농산물을 활용해 ‘와이너리’를 만들겠다는 꿈을 실행에 옮겨가고 있는 정 부사장. 그는 “외국에서 술을 만드는 곳을 우리나라처럼 술공장이라고 하지 않고 와이너리라고 부른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와이너리를 실현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10여년의 준비 끝에, 정 부사장은 예산에서 예산사과를 원료로 사용, 지역의 농업과 문화가 결합된 상품으로서의 와인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정 부사장은 ‘와인’은 1차 농산물을 판매하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가공하고, 체험하는 것보다 1차 농산물이 먼저라는 게 정 부사장의 생각이다. 정 부사장은 “잼을 만들고, 사과따기 체험을 하는 것과 같은 2차·3차산업은 1차산업의 산물인 사과를 잘 팔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특히 지역의 술은 원료로 사용하는 지역 농산물의 인지도를 올리는 역할까지 하고, 그 관점에서 예산와인은 예산사과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왜 농업을 지켜야 하는가. 정 부사장의 답은 단호했다. “문화재를 보호하고 지키고, 자연을 보호하고 지키는 게 문화재와 자연을 산업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이익이 남기 때문에 보호하고 지키는 게 아니다. 자연보호를 하지 않으면 후대들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또 회복시키는 데도 시간이 많이 든다. 문화재를 파괴하면 역사와 정신, 문화도 함께 잃어버리는 것이다. 농업도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지 어떠한 이유가 없다.”


▲협동조합부문/국영석 완주고산농협 조합장
“협동조합이 지속가능한 농업의 대안”

 

올해 매헌농민상에 ‘협동조합부문’이 처음 추가됐다. 협동조합 운동을 통해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꾼 매헌 윤봉길 의사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인 국영석 완주고산농협 조합장. 국 조합장은 협동조합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지속가능한 농업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물질만능주의를 추구하다보니 가장 중요한 농촌의 ‘가치’가 상실돼 있고, 점차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면서 “서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더불어 사는 삶을 살면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 조합장은 또 “생산자들이 소비의 가치를 존중해주고, 또 소비자가 생산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정의로움이 협동조합이 가야할 방향”이라며 “어려울수록 함께하라는 윤봉길 의사의 정신을 깃들어 다시 한번 지난 길을 돌아볼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대선기간인 만큼 대통령 후보들에게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국 조합장은 “대통령 선거때만 되면 농업·농촌·농민을 위해 ‘이벤트성’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결국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며 “앞으로 우리나라 농업·농촌·농민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고민의 흔적이 반드시 실행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고산지역의 다문화 가족들도 함께 했다. 국영석 조합장을 위해 ‘몰래’ 행사장을 찾은 이들 30여명은 직접 꽃을 들고 시상대에 올랐다. “그 친구들 하나하나 웃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는 국 조합장. 그는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농촌을 만드는데 지금처럼 조금씩 전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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