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에 디제잉 파티까지
니나노음주가무연구소 만들어

SNS로 모집한 '니나잘해펀드'
투자한 친구에 술·안주 보내


우리밀로 술·빵 만들어 나누고
상실된 농촌문화 복원 하고파

 

해금연주와 연극공연, 심지어 디제잉 파티까지. 지난 3월 전북 순창군 동계면 주월리에서 ‘제2회 농가콘서트 @순창’이 열렸다. 농협창고를 개조해 만든 공유주택과 마을회관, 큰나무 아래 공터가 공연무대로 탈바꿈했고, 광란(?)의 디제잉 파티는 인근에 위치한 ‘흙건축연구소 살림’에서 진행됐다. 이번 농가콘서트를 기획한 주인공은 주월리에 거주하는 이하연(38) 씨. 지난해 이곳으로 귀농한 이씨는 자칭 ‘니나노음주가무연구소’를 설립·운영하며 농촌문화를 만드는 일을 꿈꾸고 있다.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막연한 계획은 있었지만 여자 혼자인 탓에 자신이 없었어요. 직장을 그만두면 모든 게 끝날 것 같고, 농사로 먹고 살 수 있나 불안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순창귀농학교에 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니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오히려 농촌에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이왕이면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지금은 농협에서 일손이 필요하면 선별작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밀농사를 준비 중이에요. 우리밀로 술과 빵을 만들어 즐거움을 나누고, 상실된 농촌문화를 다시 복원하고 싶어요.”

귀농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귀농귀촌 지원기준이 2인 가구 이상만 해당돼 마땅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1인 가구는 귀농귀촌 지원정책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있어요. 순창군만 해도 2인 가구 이상만 지원하도록 조례가 제정돼 있어서 지원을 거의 못 받았죠. 다행히 주월리에는 농협창고를 개조해 만든 1인가구를 위한 공유주택이 있어서 귀농을 결심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여자 혼자 시골마을에 이사를 간다는 게 쉽지 않았는데, 공유주택이란 플랫폼을 보고 정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무런 연고가 없는 순창으로 귀농한 이씨에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물심양면으로 큰 힘이 됐다. 특히 ‘니나잘해펀드’가 대표적이다. 이씨는 자신의 예명인 ‘니나(Nina)’를 딴 ‘니나잘해펀드’를 만들어 SNS를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고, 16명의 친구가 이 펀드에 참여해 총 300만원을 마련했다. 이씨는 이 돈으로 냉장고와 양조도구를 구입했고, 펀드에 투자한 친구들에게 술과 안주가 들어있는 꾸러미를 보내고 있다.

“SNS는 수다를 떨고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어요. 제가 사는 모습을 보고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죠. 작년에는 ‘니나잘해펀드’를 만들어 봤는데, 사실 돈은 ‘핑계’였던 거 같아요. 우선 펀드를 실험해보고 싶었고, 지인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컸거든요. 실제로 술과 안주를 보내주고 있는데 만족도가 높아요. 특히 제가 보낸 꾸러미로 술자리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이야기가 더해질 때 힘을 얻게 돼요.”

최근에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농사는 물론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농촌에서의 삶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스스로를 ‘농부’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간간히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결국 농사를 잘 짓지 않으면 지속가능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서 하는 활동은 어찌 보면 부수적인 것들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허락한 시간 동안 마을 어르신들에게 농사는 물론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 싶어요. 사실 처음엔 관심의 표현이란 걸 모르고 어르신들에게 간섭받는 거 같았는데, 지금은 부모님의 마음으로 말씀해주시는 걸 너무 잘 아니까 감사하죠. 노하우를 배우고 농사를 짓다보면 실패도 할 테고, 그러다보면 성공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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