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윤 화천현장귀농학교 교장

며칠 전 읍내에서 아는 이장님을 만나 강원도가 지원하는 ‘마을 가꾸기 사업’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올해 새로 사업을 신청하려고 하는 데 어떤 내용으로 채워야 할 지 고민이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마을에 돈 들어오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국 주민들 간에 의만 상하니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말을 했지만 이미 결정 난 일이니 되 물릴 수 없다고 했다. 다행이 눈 밝은 이장님이라 소득과 관계된 사업이나 건물을 올릴 생각은 전혀 없고 마을 주민들의 대다수인 노인네들을 위한 여가 시설이나 경관 가꾸기 사업 등을 생각하고 있었다. 

정부 막대한 예산 쏟아부어도

돌아보면 귀농해서 7년여 정도는 마을만들기 사업과 함께 했다. 강원도 새농어촌 건설운동, 녹색농촌체험마을, 산촌생태마을, 권역개발, 탄소순환마을 등 정부에서 추진하는 대부분의 사업을 경험했다. 한때는 전국의 유명 체험마을에 우리 마을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고, 성공사례로 여러 곳에서 선진지 견학을 오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우리보다 먼저 농촌관광을 도입한 일본을 네 번이나 다녀오고, 농촌경관을 조화롭게 유지하고 있는 유럽의 사례를 공부하면서 자발적인 주민들의 의지와 참여로 지역을 살기 좋게 만들어 가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10여년 지난 지금 사업이 들어오기 전 80%넘게 참가하던 마을 부역은 20%도 참가하지 않고 있고 아까운 건물과 시설들은 주인 없는 빈 집이 되어가고 있다. 초기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많은 마을들이 우리 마을과 다름없이 된 형편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숙박, 체험시설 등 인프라의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평가가 나오면 그쪽으로 투자를 했고, 사람의 문제라고 이야기가 되면 주민역량강화 사업에 예산을 배정하고 선진지 견학을 보내는 등 그때그때 문제를 해결해 왔는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여전히 밑빠진 독에 물붓기 격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농촌마을을 관광지로 만드는 방식은 과연 올바른가?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부 각 부처에서는 마을만들기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배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떻게 봐야할까? 

지역주민 자발성 못 이끌어내

‘마을만들기’ 라는 말에는 마을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이 말은 현재 농촌마을은 무슨 문제가 있으니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공동체가 무너져 버렸으니 공동체성을 복원해야 하고, 지금의 지역에서의 삶의 방식은 틀렸으니 뜯어 고치겠다는 이야기다. 누가? 외부의 누군가가. 말은 지역 주민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어 상향식 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정작 지역사람들은 주체가 아니라 대상일 뿐이다. 바꾸어야 하고 고쳐야 하는 대상이 지역이고, 지역주민인 것이다. 

정부사업을 하나 받으려면 주민의식교육, 마을경관조성, 하다못해 공동 퇴비생산 실적까지 다 자료로 제출해야 한다. 만약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에 마을도서관을 하나 만들고 싶어 구청에 요구를 했는데 주민들이 부역을 통해 마을청소를 하고, 꽃길을 조성하고, 쓰레기를 수거한 실적을 제출하라고 하면 돌 맞을 일일 것이다. 그런데 농촌지역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 그걸 주민들의 자발적 마을가꾸기 사례로 홍보하면서.  

지역공동체가 존재하는가? 마을 공동사업이 가능한가? 우리는 일제시대부터 공동체를 철저히 해체해 왔다. 지배의 편의를 위하여 협동과 상부상조의 정신을 부정하고 공동체를 해체해 온 것은 군사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했으면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얘기가 ‘동업하지 말라’는 얘기다. 협동하지 말라는, 협동하면 망한다는 세뇌를 받아온 것이다. 그런데 공동소유, 공동관리를 하라는 얘기는 사업을 성공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에 사회적경제니 협동경제니 하는 바람이 불어 온 지 몇 년 되었지만 주변에 제대로 자리 잡은 협동조합의 모델 하나 찾아보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리라. 아마 한세대는 더 지나야 지금의 사회적경제의 시도들이 조금이나마 결실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돈 직접 지불 등 동기부여 필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파로호와 소양호의 영향을 받는다. 가을 볕 좋은 날은 오전 내내 안개가 자욱해서 태양초니 뭐니 쉽지가 않다. 터널이 없었을 때는 운전해서 고개를 넘다 목숨이 왔다갔다 한 적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한전에서 댐주변 지역주민들의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매년 일정금액이 나온다. 그런데 성격이 분명한 보상금인 이 돈도 지역주민들이 쓰기에는 갖은 제약이 있다. 지역주민들이 이 돈의 분배문제로 갈등을 겪으니까 사용용도를 엄격히 제한해 버린 것이다. 주민들끼리 지지고 볶든 말든 이 돈은 보상금으로 지역주민들이 알아서 쓰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얼마 전 지역경제과장님이랑 얘기하다 그 보상금을 지역사랑상품권으로 나누어주자고 건의를 드렸다. 주민들 삶에 별 관계없는 괜한 사업을 하는데 쓰지 말고 보상금 취지에 맞게 직접 지불을 하되 지역경제가 돌아갈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는 취지다. 

마을사업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 15억짜리 산촌생태마을사업이 있다고 치자. 아무 조건도 붙이지 말고 3년간 매년 마을에 1억씩 주자. 3년 후 평가를 해서 그 돈을 기반으로 해서 주민들이 뜻 깊은 일을 하고 있고 조금이나마 성과가 있으면 또 3년 연장해서 주는 것이다. 2~3년 만에 15억을 다 써버려야 하는 기존 방식대신 이렇게 하면 같은 돈으로 15년 동안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렇게 지역주민들에게 직접 지불을 하여 동기를 부여하고, 지역주민들은 자발적 노력을 통해 지역사회를 위한 공동사업을 10년 넘게 해보다 보면 언젠가는 함께 하는 것이 혼자 하는 것 보다 더 낫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겠는가?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