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밀 ‘재고대란’ 재연 우려

▲ 우리밀 생산량 증가와 소비 부진이 겹치며 늘어난 재고 물량에다 신곡 수매시기까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우리밀 업계엔 재고 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우리밀 업계에선 재고 물량 시장 격리, 공공비축 등의 정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6월 수매시기를 두 달여 앞둔 우리밀 업계에선 발만 동동 구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소진되지 못한 구곡이 재고로 쌓여 여기에 묶인 중소 가공(수매)업체들의 자금 흐름이 원활치 않은 마당에 신곡 계약 수매 물량을 받아들일 여력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구곡 재고 처리가 힘에 겨운 상황에서 신곡 물량까지 늘어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고 물량을 감당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대란’이 발생할 것이란 게 업계의 우려다. 생산 현장에서의 혼란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올 신곡생산량 3만톤 내외 전망…추가 재고물량은 1만톤 될 듯
중소 가공업체 대부분 구곡에 자금 묶여 신곡 수매 여의치 않아
구곡물량 주정용 처리 등 대책 마련 목소리 높지만 정부는 난색 


▲‘재고 대란’ 우려, 현실로=관련 업계에 따르면 2016년 우리밀 전체 생산량은 약 3만2000톤. 2015년 생산량 2만6000톤보다 6000톤 증가했다. 지난해 생산 물량 중 30% 정도인 최소 1만톤 정도가 현재 재고 물량인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업계에선 시장 자체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규모는 연간 2만5000톤 수준으로 보고 있는데, 최근 경기 불황 및 소비 부진 등의 여파로 인해 소비가 5000톤 정도 줄었고 전년 생산 증가분 6000톤도 고스란히 재고로 전환된 데다 업체별 예비 재고물량까지 감안한다면 재고 물량은 최대 1만5000톤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농림축산식품부에선 현재 재고 물량을 업계 추정치보다 낮은 6000~7000톤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

기존 재고에 신곡 물량까지 풀리게 되면 ‘재고 대란’은 기정사실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신곡 생산량은 작황 호조 등으로 3만톤 내외 수준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와 비슷하게 올해에도 2만톤 가량이 시장에서 소비된다고 하면, 이를 제외한 나머지 1만톤 정도는 추가 재고 물량으로 전환돼 재고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산밀산업협회 관계자는 7일 “수매 주체인 중소 업체들의 자금 경색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6월 수매 물량이 더해지면 재고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2011~2012년 생산 과잉에 따른 재고 처리에 어려움을 겪은 전례가 있는데, 그때의 악몽이 되풀이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우리밀 업계는 2011년 4만3000톤, 2012년 3만7000톤 등 크게 증가한 생산 물량 처리에 어려움을 겪었고, 생산 감축 등의 여파로 이후 2~3년 동안 생산량을 회복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 ‘뼈아픈’ 전례가 있다.

▲생산 분야까지 혼란 번질까=우리밀 산업의 특성상 중소 가공업체들이 사실상 수매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산업 전반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크다. 통상 1년 치 수매 자금을 통해 물량을 확보한 후 이를 판매한 수익으로 다음해 수매 자금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이번의 경우 구곡에 자금이 이미 묶여 있는 상태로 자금 유동성이 막혀 있는 상황이다. 업체 입장에서도 불가피하게 신곡 수매 여력이 여의치 않은 상태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최악의 경우 6월 신곡 수매 일정에 차질을 빚는 등 생산 현장으로까지 혼란이 번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미 5~6년 전 우리밀 업계에선 ‘수급 대란’ 속에 수매 일정이 두 달여 동안 뒤로 늦춰진 기억이 있다.

여기에 수급 불안이 반복되는 측면을 우려한 밀 재배 농가들이 생산 현장을 이탈할 경우 이를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의 한 생산 농가는 “쌀 재배 농가들이 수익을 보지 못하면서 밀 재배 의향이 높아져 생산량이 늘고 있는 추세인데, 시장 여건은 그렇지 못해 작은 변수에도 우리밀 산업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것 같다”며 “수급 대란 여파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경우 밀 재배 농가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단기 처방 나와야 되는데=업계 관계자들은 생산 분야로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단기 처방으로 구곡 재고의 시장 격리와 더불어 공공비축 등의 방안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국산밀산업협회 관계자는 “중소 업체들이 구곡 재고에 자금이 묶여 신곡 수매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구곡 물량에 대해 주정용으로 처리하는 방안이 시급하다”며 “이와 함께 단기적인 처방으로 공공비축 등 시장격리 방안을 정부에 요구한 상황이다. 이번 상황에 대해 정부가 심각하게 인식해야 하는데, 관심도 없고 의지도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업계의 요구에 대해 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사실상 6월 수매시기 이전에 쓸 수 있는 단기 처방 성격의 대책도 마땅치 않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주정용으로 처리하는 문제는 쌀과 보리, 고구마 등이 이미 사용되고 있고 이 물량 대신 밀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공공비축 부분은 검토하고 있는데, 예산 반영이 안 된 상황이라 단기적인 차원에서 재고 소진을 할 수 있는 방안은 찾기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중소 가공업체/윤여준 ㈜우리밀 대표
“신곡수매 두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수매대금 지급 막막”

밀 원가 보관료 등 올라 경영 부담
재고 회전률 낮은 탓에 대출도 안돼

 

“신곡 수매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는데, 올해 수매 대금을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구곡이 그대로 창고에 있으니 신곡을 받을 여력이 없어요.”

지난 7일 만난 윤여준 ㈜우리밀 대표의 말이다. ㈜우리밀은 우리밀 산업의 산증인이다. 1989년부터 ‘우리밀 살리기’만을 위해 외길을 걸어왔다. 우리밀의 자급률 향상과 소비 확대를 위해 누구보다 책임감 있게 일해 왔다고 평가받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밀 산업계의 선두주자격인 이 업체마저도 곧 닥칠 수매시기를 앞두고 침통한 심정을 드러냈다.

윤여준 대표는 “일반적으로 1년 정도 되면 밀 원가가 보관료 등으로 인해 10% 정도 오른다. 그만큼 경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더욱이 구곡 재고에 수매 자금이 다 묶여 있는 상황이어서 자금 회전이 꽉 막혀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윤 대표는 “자금이 없으니 금융권에 대출을 받으려고 하면 재고 회전률을 보고 대출이 불가하다고 하고, 이렇게 되면 수매를 못하게 되고 농민들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어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결국 중소 수매업체들이 도산까지 몰리는 위기에 놓이게 된다”며 “우리밀 업계는 수급 불안정이 지속되면서 선순환이 아니라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상황으로 민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재고 물량을 시장에서 격리해 주는 것밖에 없다”면서 “숨통을 한번 틔운 상황에서 장기적 대책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밀의 경우 수매와 가공, 판매 등을 모두 민간 중소 업체들이 도맡아 하고 있는데, 민간 업체들의 수급 조절 역할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생각한다. 정부에서 나서줘야 할 필요가 있다”며 “생산 분야에서도 품질이 떨어져 소비가 안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품질을 높이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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