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마을 주민들이 회관에 모였다. 회의 안건은 ‘버스 타는 당번 정하기’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마을을 들르던 버스가 끊기자 군청을 찾아가 탄원하고 시위했다. 몇 달 동안 끈질기게 싸워서 버스 노선을 되살렸지만, 걱정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었다. 며칠 사이에 버스가 빈 차로 들어왔다가 빈 차로 나가는 날이 있었다. 버스가 또 끊기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래서 궁리해 낸 게 ‘버스타기 당번제’다. 운행 중단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면, 날마다 누군가 한 명은 버스 타고 마을을 드나들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매일 한 명씩은 일이 없어도 아침 일찍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갔다가 저녁 버스를 타고 돌아오기로 했다.

뙤약볕에 아스팔트가 녹을 듯 무더운 8월 어느 날 시골 마을을 지나가던 중이었다. 왕복 2차선 지방도로 곁에 등이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찻길로 튀어나올 듯 위태롭게 서서 손을 크게 흔드신다. 천천히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열었다. “○○읍내로 가는 길이면 나 좀 태워줄 수 있슈?” 운전하는 내내 그 할머니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젊어서는 하루에 수십 근 고추를 딸 수 있었는데 요즘은 힘들다는 옛 자랑 섞인 이야기, 장도 볼 겸 품삯 받고 고추 따는 일거리가 있는지 ‘인력소개소’에 알아보러 읍내에 나가는 길이었다는 이야기 등등. 이윽고 읍내 어귀에 내려 드렸다. 운전해서 족히 15분 정도는 걸렸다. 어르신 걸음으로는 두세 시간쯤 걸릴 테다. 그 더위에 걸어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노선 없어질까 당번이 버스타고

충청남도 △△면 소재지의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일하는 점장은 이웃의 다른 면 출신이다. 그 면 소재지 상권이 무너져 변변한 가게 하나 없게 된 지 오래다. 자기 동네 어르신들이 장이라도 보려면 버스를 타고 인접한 면소재지를 두 군데나 들러 △△면 소재지에 와야 했다. 승용차를 타고 곧바로 오면 15분도 안 걸리는데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야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점장이 꾀를 내었다. 하나로마트에 와서 5000원 이상 상품을 사면 매일 오후 네 시에 상품 배달을 도는 승합차로 마을까지 모시는 고객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한 달 만에 중단되었다. △△면 소재지에 버스 타고 와서 볼 일 보고, 남의 동네 경로당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하나로마트에 와서 라면 5000원어치 구매하고는 봉고차 앞에 줄을 서시는 할머니가 열 명이 넘자 감당할 수 없게 된 탓이다.

교통약자 문제는 몇몇 산골 동네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계청의 농업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5년에 전국 농촌의 행정리 3만6972개 중에서 시(군)내 버스가 하루에 한 대도 오지 않는 곳의 비율이 6.4%였다. 여기에다가 운행 횟수가 하루 3회 이하인 행정리까지 포함한 ‘대중교통 불리 지역’ 행정리 비율은 18.3%에 이른다. 면 지역만 놓고 보면 그 비율이 20.0%다. 버스가 하루에 세 번 이하로 들어오는 동네의 주민이 버스 타고 읍내에 가서 생선 한 토막 사서 돌아오려면 하루 온종일 걸린다. 대도시에 사람들이 서로 끼이고 부딪히는 ‘교통 밀집 지옥’이 있다면, 농촌에는 ‘교통 없는 지옥’이 있다.

생선 한토막 사는데 온종일 걸려

이런 상황에 처한 농촌 주민의 갖가지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어느 중학생은 학교가 있는 읍에서 옆의 면 소재지로, 그리고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느라 방과 후에 두 시간을 길에서 기다려야 한다. 읍내에 나가야 하는 할아버지 두 분은 다방에 전화해서 5000원 짜리 커피 두 잔을 배달시킨다. 커피 마신 후에 읍내로 돌아가는 다방 커피 배달 경차를 얻어 타는 게 택시비 2만원 내는 것보다 싸기 때문이란다. 어느 면의 여성농업인센터 대표는 읍내 가서 전기요금 내고 오는 데 네 시간 걸리는 이웃 할머니의 일상을 보고 느낀 바 있어, 마을에서 읍내까지 기관 소유 승합차를 무료로 운행했다. 그런데 요샌 영업권을 침해한다는 군내 버스회사의 민원 때문에 그런 봉사를 계속하기가 어려워졌다.

농촌 인구는 계속 고령화되고 생활 서비스 중심지는 더욱 쇠퇴할 전망이어서 문제가 심각하다. 대중교통 운행 빈도가 심각하게 적은 상황에서 고령화가 진전된다는 건 교통 약자가 더 많아짐을 뜻한다. 게다가 노인들만 교통 약자가 아니다. 운전면허나 승용차가 없는 아동, 청소년, 여성 등 농촌 대중교통 여건이 미흡해 기본적인 생활 서비스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농촌 생활권 중심지가 보유했던 기능이 소실되고 각종 서비스 기능(시설)이 상위 중심지로 집중되고 있다. 농촌 시군마다 한두 개의 면 소재지를 빼고 나머지 면 소재지들은 대부분 예전처럼 생활중심지로 기능하지 못한다. 생활 서비스 접근 기회가 줄고, 교통비용은 늘어난다는 뜻이다.

농촌 교통없는 지옥 문제 해결을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 부문의 노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수년 전부터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촌형 교통모델 발굴사업’이라는 정책을 펼쳐왔다. 기존 대중교통 수단이 한계에 봉착한 교통여건 취약 지역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 줄 대안적 교통 서비스를 공급해 보자는 취지의 사업이다. 운수사업체, 비영리법인 등 농촌에서 대안적 교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주체에게 차량구입비, 운영비, 인건비 등을 지원한다. 어르신들에게 택시 쿠폰을 제공하는 ‘100원 택시’, ‘1000원 택시’ 등의 사업을 펼치는 농촌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출되고 있다. 학생뿐만 아니라 어르신들도 태우고 다니는 ‘다목적 스쿨버스’, 면장에게 20인승 승합차를 지원해 운송 수요가 많은 장날만이라도 운행하자는 ‘5일장 마을버스’, 승용차가 있는 마을 청장년이 어르신들을 태워다 드릴 수 있게 기름 값을 보조하자는 ‘마을형 우버’ 등등.

아쉬운 건 정책 투입이 불충분하고, 주민-지자체-운수사업자 간의 대화가 부족하고, 법제 정비가 느리다는 점이다. 인구밀도가 낮아 ‘없는 게 많은’ 농촌에서, 열악한 대중교통 상황 때문에 그나마 남아 있는 것에 접근하기도 어려워지는 ‘이중적 사회적 배제’가 심화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농촌 교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때 견지해야 할 관점은 농촌 지역의 교통 수요(demand)가 아니라 농촌 주민의 교통 필요성(needs)을 기준으로 정책을 검토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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