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식품 상생협력 사업이 기업에게는 안정적 물량 확보를, 농가에게는 판로 걱정 없이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상생(相生), 국립국어원에 등록된 ‘상생’의 사전적 의미는 ‘둘 이상이 서로 북돋으며 다 같이 잘 살아간다’로 정의하고 있다. 가속화되고 있는 개방화 시대와 급속한 노령화로 대표되고 있는 우리 농업의 현실에서 ‘상생’은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열악한 소득, 소비감소로 인한 농산물 판매 부진 등 우리 농업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과 기업이 협력을 통해 ‘상생’하자는 시도와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가시적인 성과도 내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식품기업-농업현장 연결 다양하게
농식품상생자문단 구성, 영세 농식품업체 돕기도
경주 황남빵 지역산 팥 사용 상생구조 마련 모범


▲상생협력의 시작=농림축산식품부는 대한상공회의소와 공동으로 2014년 농식품상생협력추진본부를 발족시켰다. 추진본부에는 농식품부, 대한상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협, 농촌진흥청, 지자체 등이 참여해 농업과 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발굴·확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단순 농산물 계약재배 외에 유통·수출·종자·ICT·6차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농업과 기업 간의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농식품 상생협력은 3년의 시간 동안 CJ, SPC, 농심, 대상, 신세계푸드 등 국내 주요 식품기업은 물론 황남빵, 거성푸드, 우리술 등 중소기업들과 농업 현장을 다양한 형태로 연결시킨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상생협력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은 품질 좋은 원재료를 안정되게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판로를 고민하던 농가들에게는 판로 걱정 없이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어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다수의 상생협력 참가 업체들은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점이다. 농민들 입장에서도 판로를 고민하지 않고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 상생협력의 가장 큰 장점이다”고 입을 모은다.

그 결과 상생협약 체결은 2014년 14건에서 2015년 23건, 2016년 25건으로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올해에는 상생협력 체결을 30건으로 늘리는 한편 대기업 임원 등 퇴직 전문가로 구성된 농식품 상생자문단 운영을 통해 영세 농식품 기업에게 경영전략이나 마케팅 및 판로개척 등의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아울러 상생협력 경연대회나 권역별 설명회 등 상생협력의 우수사례를 확산시키는 데에도 주력하고 있다.

황남빵은 지역 팥 농가들이 생산한 팥을 타 지역에 비해 높은 가격에 수매하면서 상생협력의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농가와 기업의 동반 성장 모델=황남빵은 경주를 대표하는 향토기업이다. 1939년에 문을 연 이래 올해로 79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전국의 미식가들과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황남빵에도 상생협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황남빵 맛의 핵심은 팥이다. 그만큼 원재료인 팥의 품질은 중요하다. 이 원재료를 농가와의 상생협력을 통해 조달하고 있다. 황남빵은 2011년부터 지역 팥 재배농가와 계약재배를 통해 원료를 수매하고 있다. 그동안 경주 지역의 팥 재배농가들은 판로가 마땅치 않았지만, 황남빵과의 계약재배로 안정적인 판로가 마련됐다. 여기에 농가에게 지급되는 계약재배 단가는 다른 지역보다 높게 책정돼 농가의 수익도 상승되는 효과를 보고 있다.

또한 황남빵은 직접 원종자를 증식해 보급하는 일도 하고 있다. 종자 보급에 그치지 않고 파종시기나 작황 현황도 직접 파악하거나 파종 시 피복제 지원, 팥을 보관할 수 있는 저온창고도 지원했다. 제품에 사용되는 팥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황남빵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정학구 황남빵 실장은 “사실 다른 지역의 팥을 원료로 사용해도 되지만 황남빵이 지역 향토기업이니까 지역 팥을 써야겠다는 이유 외에는 없었다”며 “농가들에게 종자를 공급하면서 농사를 짓게 하고, 거기에 수매에 유통까지 하다 보니 자부심이 생겼다. 무엇보다 농가들이 왜 양질의 팥 생산을 해야 하는지 농가들이 잘 알고 있어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지역 농가들의 반응도 뜨겁다. 과거 황남빵과 계약재배를 하기 전에는 개별로 판로를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으로 인해 팥 재배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제대로 생산만 하면 황남빵에서 전량 수매를 해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경주시 삼내면에서 팥을 재배하고 있는 권상규(68) 씨는 “6년 전부터 황남빵에서 전량 수매를 하니까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며 “다른 지역에 비해 수매가격도 높게 책정해 줘 고맙다. 경주 지역의 다른 품목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황남빵만의 얘기가 아니다. 농식품 상생협력에 참여한 기업들은 농가와의 계약재배를 통해 안정적인 원료를 중간 유통비용 없이 확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계약재배 단가에 반영하면서 ‘기업은 품질 좋은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농가는 안정된 수익구조’라는 선순환 구조가 확립되고 있는 것이다.

구영모 거성푸드 과장은 “상생협력을 통해 기업은 중간 유통마진을 줄이고, 이 비용을 환원하면서 농가는 수익이 높아지는 구조다”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상생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정용훈 신세계푸드 과장은 “농가들이 소비자가 원하는 트렌드에 공감하면서 사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주체의식이 생겼다”며 “수익을 떠나서 농가와의 공감대 형성을 맺게 되면서 즐겁게 일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질적 성장 도모해야 할 시기=농식품 상생협력 사업은 올해로 4년차를 맞이한다.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협력으로 기업과 농가들이 ‘상생’할 수 있다는 사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따라서 이러한 평가를 유지하고 그동안 협력을 진행했던 기업과 농가들의 애로사항을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해 주려는 노력이 동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정부도 농식품 상생협력 사업의 내실을 다지기 위한 다양한 유인책과 인센티브를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개별 기업들이 하기 힘든 농가교육이나 영농지도, R&D 등에 나설 방침이다. 특히 기업과 상생협력에 참여하는 생산자나 단체의 영농환경 개선, 농산물 품질관리, 재배매뉴얼 개발 및 농가교육 등을 위한 지원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또한 올해부터는 전국의 모든 도 단위 광역 지자체와 세종시에서 농업과 기업의 상생협력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고 중앙정부에서는 이러한 지자체 지원을 통해 상생협력이 지역 사회에서 자율적으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박병홍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관은 “기업들이 상생협력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향후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에 가점을 확대하는 등 인센티브를 강화하거나 우수 업체나 기업의 홍보와 제품개발 등에도 지원을 강화해 나가겠다”며 “특히 상생협력 현장의 애로사항을 발굴해 기업과 농업인들이 필요로 하는 내용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kimym@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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